기포의 새벽 편지1073
의상조사법성게73
동봉
고향가는 길(3)
그러므로 수행자가 본고향에 가려거든
망상일랑 쉬지않곤 아무것도 못얻으리
조건없는 선교방편 생각대로 가져다가
집에갈제 분수따라 먹을양식 삼을지라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파식망상필부득叵息忘想必不得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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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 알다시피 '돌아가다'라는 말의 뜻은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바로 이 곳에서
앞서 떠나왔던 곳으로 향해 되돌아감이고
'돌아오다'는 출발지가 어디든 관계없이
현재 내가 머무는 곳으로 되돌아옴이다
따라서《법성게》에서의 '환본제還本際'는
그가 언제 어느 곳에 살고있든 관계없이
가야할 본래 자리 본고향으로 돌아감이다
그럼《법성게》환본제의 뜻은 무엇일까
'집이 있는 데로 돌아가歸다'가 맞을까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오還다'가 맞을까
'돌아가다'는 '서방정토 시스템'이고
'돌아오다'는 '유심정토 시스템'이다
'돌아가다'에서 보면 아내에게 돌아감이고
'돌아오다'는 어머니에게로 돌아옴이다
가정帚으로 돌아감이 되돌아감이고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옴이 되돌아옴이다
하지만 이는 말장난일뿐일지 모른다
귀歸와 환還은 결국 다 같은 뜻일 터이다
가령 전세계 어느 곳에 흩어져 있더라도
돌아갈 곳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면
우리나라가 본제㮺際요 본고향이다
나는 의상조사《법성게》를 강의하면서
출가出家를 '집나옴'으로 보지 않고
내 고향 내 집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였다
43년 전 나는 내가 세세생생 살아왔던
나의 본고향 내 본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부처님 머무시는 곳이 내 집이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내내 살던 집이다
가령 '부모미생전'을 직역하면
'부모父母님이 아직未 낳生기 전前'이다
부모님께서 누구를 낳기 전이실까
으레 '나'라는 존재를 낳기 전이시다
'부모님'이 주어主語고 '낳다'가 동사다
불교는 나를 낳은 이를 누구로 칠까
분명히 구분하거니와 육신의 '부모님'이다
내가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기 전
과연 어떤 존재로 어디에 어떻게 있었을까
생물학적으로 나 이전 나는 무엇이었을까
생물학적이라면 곧 육신을 지닌 '나'다
손을 저으면 뭔가 손에 와닿는 존재다
손에 와닿는 존재라면 부피가 있을 것이고
부피가 있다면 으레 무게가 있을 것이다
무게質와 부피量를 지니고 있다면
크고 무거우면 크고 무거운대로
작고 가벼우면 작고 가벼운대로
반드시 어떤 빛깔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무게와 부피와 빛깔을 지녔다면
반드시 부딪쳤을 때 소리가 있을 것이고
그 소리에는 높거나 낮거나
세거나 여리거나 또는 짧거나 길거나
잔향殘響reverberation이 있을 것이다
어디 잔향뿐이겠는가
그것이 어떤 소재로 되었느냐에 따라
반드시 어떤 향기나 냄새를 지녔을 것이다
만에 하나 질량을 지닌 존재라고 한다면
오감五感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반드시 느낌을 줄 것이다
그 때 그 무엇인가를 '나'로 인식할 것이다
이처럼 뭔가 인식될 수 있는 존재 이전
이를 '나'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아무튼 존재로 느껴지기 전의 그 '나'를
우리는 '부모미생전'이라 하는데
그처럼 부모미생전의 '내'가 머물던 곳이
의상조사《법성게》에서의 '본제楍際'다
내 수행이 부족함을 분명 느끼면서도
부처님 도량이 정말 포근하게 다가옴은
무한한 전생부터 살아 온 곳이기 때문이다
돌아갈 귀歸 자를 한 번 볼까
이는 이 '돌아갈 귀帰' 자의 본자夲字다
쫒을 추追 자의 변형과 더불어
머무름의 뜻을 지닌 그칠 지止 자와 함께
지어미 부婦 자의 생략형省略形인
빗자루 추帚 자로 이루어진 글자가 귀歸다
옛날에는 남자가 먼저 장가를 들면
장가丈家/妻家에서 일정 동안을 살다가
첫아이가 태어나 걸음을 뗄 때 쯤 되면
아이를 걸리고 제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용어가 '처가妻家'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 살았던 가정을
일반적으로 우리는 '처가'라고 부르는데
이는 완벽하게 잘못된 용어다
처가妻家는 글자 그대로 '아내妻 집家'이다
아내의 집은 다른 데가 아닌 '내 집'이다
장인 장모님이 계시는 장가丈家가 아니다
처음 장가 들 때는 '장가丈家'라 하고
장가의 따님이 내게 와 내 아내가 되었는데
계속해서 장가를 처가라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렇다却說'치고 ㅡ
돌아올 환還 자에 담긴 뜻이 꽤 다양하다
대개 동사거나 형용사로 '돌아오다'인데
돌아보다, 돌려 보내다, 물러나다, 빠르다
눈동자를 굴리다, 갚다, 다시 따위와
도리어, 돌다, 물이 돌며 흐르다, 회전하다
원을 그리다, 굴곡을 이루다, 굽다, 둥글다
두르다, 빠르다, 구슬, 옥 따위가 있고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행동거지와
오줌, 소변, 오히려, 갑자기, 조금 등
매우 다양한 뜻을 환還 자는 지니고 있다
여기서 어디로 간다거나
또는 어디에서 이리로 온다거나
일방적 오감이 아닌
여기서 어디로 되돌아간다거나
다른 데서 여기로 되돌아온다거나 하는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삶生의 길을 걷는 나그네에게 있어서
돌아감과 돌아옴은 전혀 또 다른 세계다
되돌아감과 되돌아옴도 또한 마찬가지다
'되'가 반복의 뜻이고 말만 다를 뿐이다
1차 적으로 돌아갈 곳이라고 했을 때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듯싶지만
어느 전생에선가 살아본 적이 있는 곳이다
그곳을 본고향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내다보는 본고향夲際의 뜻은 다르다
과거생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더라도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 시공간이 중요하다
이 시공간을 본고향으로 삼지 않는 본제는
어떤 경우도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타향도 정 들이면 고향이 되는 법이다
불교의 천도의식 가운데 마지막 부분
봉송편奉送篇을 여기 싣는다
'봉송게奉送偈'와 '행보게行步偈'다
조용히 음미할 만한 가치가 담겨 있다
봉송게奉送偈
봉송고혼계유정奉送孤魂繫有情
지옥아귀급방생地獄餓鬼及傍生
아어타일건도량我於他日建道場
불위본서환래부不違本誓還來赴
고혼이여 유정이여 지옥아귀 중생이여
무지렁이 방생이여 함께봉송 하옵나니
내가만일 다른날에 불도량을 세우거든
본래서원 생각하여 이도량에 오옵소서
행보게行步偈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
귀도정망도정방歸途情忘到淨邦
삼업투성삼보례三業投誠三寶禮
성범동회법왕궁聖凡同會法王宮
떠나는길 천리만리 허공중에 가득하나
가는길에 정잊으면 그대로가 정토로다
행동언어 마음으로 삼보님께 절하오니
성인범부 할것없이 법왕궁에 모이소서
그러기에 내가 세간의 집을 떠나
부처님 도량으로 옴은 출가出家가 아니고
본래의 내고향夲際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영원히 머물 곳은 부처님 집이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란 시에
인간의 삶의 시공간은 소풍이었고
영원히 '돌아갈 곳'이 하늘이라 했지만
내 머물 본고향으로 나는 돌아온 것이다
이미 삶을 마감하였거나 지금 살아있거나
'돌아올 곳'은 부처님佛의 마음집家이다
[겨울 나무는 겨울 흔적을 남긴다/동봉]
12/21/2017
종로 대각사 '검찾는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