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原州金氏는 원래 始祖公原城伯이전 부터 개성을 중심으로 살으셨다. 고려사절요 毅宗 朝실록에 의하면 추밀원부사 金巨公이 시중왕충 참정 김정순 평장사유필등과 같이 개성에서 살으셨다는 기록이 있다. 諱得雨께서도 개성에서 서거하시었고 물론 그 이상의 선대묘소도 개성을 중심으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장공과 대경공형제분께서도 출생지는 개성이시다. 이러한 점은 고려사와 기타 여러 부분으로 보아 우리 원김은 개성을 중심으로 살다가 이태조의 한양도읍으로 인하여 그 당시 諱乙辛 판서공께서 고려말에 진사에 등과한 후 등제하시었다. 판서공께서는 다른 씨족과 마찬가지로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도 장단에 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후 아우 諱克辛
· 泰辛과 차남 대경공 諱連枝 등은 계속하여 장단에 살게 되었고 그 후 판서공께서는 다시 류참찬 허씨부인 친가마을 양천현(현,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터를 마련하여 장남 직장공 諱連宗과 같이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직장공께서는 불행하게도 일찍 서거하시었다. 그 후 진주류씨가 향년 六十三세로 졸하였으나 그 후 바로 세종 十三년에 판서공께서 계림부윤으로 부임하시었다 이로 인하여 세종이 현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된다하였다 판서공께서는 말년에는 웅진(곰나루 현, 강서구 염창동부근)에 정자를 짓고 친지들과 詠詩嘯詠을 하면서 왕래하시니 당시 사람들 뿐아니라 후인들까지도 판서공의 풍류와 문채를 찬양하였다한다. 이로써 우리 原州金氏는 판서공이 양천에 터를 마련한 이후 六百여년간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
[각파의 이동분포상황] |
• 문정공파 원성군계 : |
장단에서 영월 문경 파주 등지로 정착하였고 일부는 이북으로 이주하였다. |
• 문정공파 문의공계 : |
장단에서 문천과 안변으로 이주하였다. |
• 문정공파 현령공계 : |
이천 하남으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이북으로 이주하였다. |
• 대경공파 : |
장단에서 해주로 이주하였고 대부분 장단에 그대로 정착하였으며 일부는 영종도 운남리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
• 병판공파 : |
양천에서 계속 정착하였으며 일부는 양천에서 보령 예산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
• 감찰공파 : |
양천에서 재령으로 이주하면서 일부는 충남아산 등지로 이주하였다. |
• 찬성공파 : |
양천에서 전북남원으로 이주하였다가 일부는 남 원에 그대로 정착하였고 일부는 전남곡성 전북 완주 광주시 광산구 충남금산 전남해남등지로 각각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
• 두암공파 : |
양천에서 충남천안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일부는 황해도 신천으로 이주하였다. |
• 부사공파 : |
양천에서 그대로 정착하였으며 일부는 강원도 춘천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
• 파강공파 : |
양천에서 그대로 정착하기도 하였으며 대부분은 충남보령 예산 공주 서산 당진 경남밀양 전남 구례등지로 각각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황해도 연변으로도 이주하여 거주하였다. |
• 충양공파 : |
후손 대부분이 양천에서 그대로 정착하였다. |
• 휴곡공파 : |
후손 대부분이 양천에서 충남당진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 |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