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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5. 대민(주일낮:맥추감사]
*인애를 베푸실 것(신7:12-16)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고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책입니다. 놀라운 약속들이 성경전체를 수놓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 너무너무 좋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수없이 파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더불어 맺으신 그 약속에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리켜서 약속의 책이라고 하는 까닭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를 지킬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저주의 길로 가는 사람을 복주시마 약속하셨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속에 실재로 이루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으면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람의 약속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약속을 어길 수 있으며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약속을 믿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으면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의심이 많습니다. 지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전혀 의심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긍정적인 의심 곧 무엇을 창조하는 의심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파괴하는 의심은 피해야 합니다. 무조건 불신하는 자세는 위험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자라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을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상이십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가 허상입니다. 하나님만이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역사를 주장하시는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안 보이지만 실상인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믿음이 없다’ ‘나는 믿음이 약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보고 믿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팔이 없는 사람에게 팔을 들으라고 하는 것과 같고,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중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늘과 땅에 속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인애”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애”는 ‘형편을 통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인애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명하신 법도를 듣고 행하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는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인애를 베풀어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복에 인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사람들이 생활에서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두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해서 받지 못할 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대로 행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본절에서 "지켜"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약속을 지키시지 않겠다는 강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지켜야 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그것이 삶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은 깨달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대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명령은 듣고 지켜 행함으로 복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굳게 맺은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지켜야 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만 충성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순종과 충성이 없이는 계약이 깨어집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율례와 법도는 광야에서도 지켜야 할 규칙이지만 앞으로 가나안에서 오래오래 살며 지켜야 할 법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때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합니다. 전에 나를 다스리고 나를 이끌었던 세상의 원리가 아니라 이제부터 나를 새롭게 이끌어갈 하나님의 법이 내 앞에 놓여있습니다.
경외와 순종은 동전의 앞뒤면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편112편1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시편34편7-9절에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선지자의 말을 순종하므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마지막 양식을 바치라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으로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과 불신의 도시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했고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의심치 않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자손 대대 복을 받았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던지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고 하며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의 고기를 잡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인격적으로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는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면 우리는 그 다름으로 해서 힘들어합니다. 순종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예수님이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 순종이 우리의 생활 속에 적용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좋은 일만 일어납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막강한 군사력과 위대한 전략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온 세계를 파죽지세로 정복하여 나갈 때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더 왕이 몇 명 안 되는 작은 군사를 이끌고 거대한 성을 침략하였습니다. 아주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성앞에서 성안의 왕을 불려 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성과 네 군사를 내게 바치라. 싸운 후 피해를 보지 말고 미리 항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안의 왕은 큰소리로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작은 군대로 무슨 싸움을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항복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자기와 그의 군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더는 군대를 일렬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명령하였습니다. “저기 보이는 낭떠러지의 꼭대기를 향해 행진!” 알렉산더의 병사들은 낭떨어지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알렉산더는 다시 명령하였습니다. “낭떨어지에서 거꾸로 떨어져라.” 알렉산더 군사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그리고 거침이 없이 한 사람씩 낭떠러지로 거꾸로 몸을 던졌습니다. 열 명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10명이 죽은 후 알렉산더 왕은 그만 떨어질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성안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과 군사들은 벌벌 떨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저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의 명령에 따르는 군사들에게는 아무리 강한 요새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견디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무조건적인 순종이 살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에게 약속하신 인애를 베푸십니다.
2.너를 사랑하사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13-15)
“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14]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15]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번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번성은 내가 번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축복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평생을 자기가 번성하게 하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갖 돈과 물질과 시간과 젊음을 투자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삶을번성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번성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먼저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은혜는 희브리어로 바락크 라는 말인데 이 뜻은 축복하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무릎꿇다’ 하나님을‘송축하다’ 찬양하다, 경배하다, 감사하다 그런 뜻입니다.
사실 우리의 자녀가 돈도 잘 벌고, 좋은 직업도 가지고, 사업도 잘하고, 뭐든지 잘 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복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은 진정으로 내 자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찬양, 경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곧 이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요,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자녀에게 최고의 복은 하나님 잘 섬기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내 자식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는 것이 부모에게도 복이고,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다음은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여 법도를 잘 지켜 행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의 자녀에게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직장과 사업장에도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농사를 지으면 농사가 잘 되게 하시고 목축을 하면 목축이 잘 되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같은 농작물을 풍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에게 물질의 복이 주어집니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이 곧 물질의 복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재물을 모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자신이 노력한다고 다 복을 받지 못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회사가 부도나서 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는데 뜻하지 않는 일로 많은 돈을 써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127편2절에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수고의 떡을 먹게 하는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의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사실 재물이라는 것은 내 것이기 전에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하나님 앞에는 다 동등한 존재입니다. 부자는 하나님의 것을 좀 더 많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물질관에서 차이가 납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은 다 내 것이라고 하지만 신자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잘 사용해야 합니다.
다음은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시편144편13절에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족장 시대에는 양이나 소, 염소 등 축산물로 재산을 평가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셔서 창성케 하시므로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다고 하셨으며(창 24:35), 이삭도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창 26:12-14)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야곱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까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욥은 양이 칠천 마리, 약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 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았습니다(욥 1:3). 그런데 욥이 믿음의 시험에서 승리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갑절로 축복해 주셨으니 정말로 큰 거부 였음에 틀립 없습니다.
다음은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는 우선 자기 자신이 잘 되고, 자녀들이 잘되고, 농장의 작물이 잘되어 많은 열매를 맺고, 그 가정에 속한 사람들과 짐승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시는데, 세상의 만민보다 훨씬 더 큰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매력적인 말은...“세상의 만민보다 훨씬 더 큰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경쟁사회에서 같은 정도 비슷비슷한 정도 가지고는 요즘 세상에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빼어 난 것, 특출한 정도가 매우 격차가 클 때 그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도무지 남이 발 벗고도 따라 잡을 수 없는 정도가 돼야 성공한 사람이라고 우러러 봅니다.
다음으로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질병이 우리에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는 성도에게는 그러한 질병들을 멀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액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모세시대에 하나님외에 이방신들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이방 신들을 만나고 살았습니다. 심지어 모세의 형 아론까지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신들이 얼마나 많았든지 하나님께서 십계명중에 제일계명으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신들이 있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신을 만나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 그들의 신은 애굽의 여러 신들을 가리킵니다. 당시는 왕이 바로 신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신들이 생명을 지켜줄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으로 내려오는 북한의 왕조는 신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그들 왕조가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준다고 실제로 믿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자본이 신입니다. 경제 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큰 일 날 것처럼 불안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본을 키우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아닌 위엄의 존재에게 절하고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야곱의 삼촌 라반의 집에도 드라빔이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우상숭배와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를 들여와서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옛날 로마신화에도 풍요의 신 ‘옵스’가 있는데 신을 섬겨야 풍요롭게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섬겼습니다. 옛날 헬라에는 ‘아데미’라는 신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다이아나’ 신에 해당되는 신인데 다산을 상징하는 모신(母神)입니다. 여인상에 가슴을 많이 만들어 놓은 여신이 바로 아데미입니다. 우리 민족도 우상숭배에 아주 능숙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섬기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천 가지 만 가지 죄는 용서할 수가 있어도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합니다.
우리들은 우상에 절하는 죄의 빗장도 뽑아내야 합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나는 금이나 돌로 만든 우상에 절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탐심과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우상 숭배가 됩니다. 자신의 분수를 뛰어 넘어 욕심을 부리고 탐심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우상 숭배를 피해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우상도 숭배한다면, 그는 이미 성도가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원래 우상 숭배의 죄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 부르고 인정할 때, 그리고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도 그러한 인식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노엽게 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예 우상 숭배의 근처에도 안 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피하라는 말은 도망쳐라, 멀리 떨어져 라는 말입니다. 괜히 용감한 척하여 귀신에게 이용당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스러운 것은 아예 피하고 허용될 수 있는 경계선상에 머뭇거리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질투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괴적인 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예수님의 피 주고 사신 백성을 사랑하시되 질투하시며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하나님과 직접 관계되는 것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은 그 무엇과도 아예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인들을 멸하지 않고 함께 살다 보면 자신들도 모르게 우상을 섬기고 점점 불신앙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미리, 그 민족을 진멸하여 쫓아내고 온전한 신앙을 지킬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면 올무가 되어 징계를 받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으니 철저히 경계하며 하나님만 섬기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인애를 받으며 복 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12)
2.너를 사랑하사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13-15)
3.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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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