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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2.대민(주일낮)
*힘을 얻기 위한 휴식(시23:1-6)
휴가의 계절입니다. 찌는 듯 한 무더위 가운데 쉼을 가진다는 것은 일을 감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활력소가 됩니다.
오늘날 편리한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혹시 육신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무거운 짐을 지고서 지쳐 쓰러질 지경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휴식이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의 참된 쉼이 필요합니다.
현대인은 한 마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입니다. 사람들마다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피곤한 인생들에게는 참된 휴식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휴식은 은혜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이처럼 피곤한 인생들에게, 휴식이란 것이 우리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하나님을 양떼들을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쉬게 하시는 목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게도 하시지만, 또한 푹 쉬게 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유한한 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불면불휴의 노동이란 불가능합니다.
휴식은 오늘 현재에서 새로운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휴식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휴식을 필요로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가복음6장31절에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쉬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음식도 먹지 못하고 지금 '보고'라는 행동에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자들이 조금 있다가 음식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보고를 서두르다가 탈진할 것은 뻔 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탈진의 징후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하신 것입니다.
휴식은 단순히 일을 중단하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많은 일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충전의 기회가 바로 휴식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시편103편14절에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체질을 아십니다. 우리의 육체가 흙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병들고 시들어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휴식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피곤에 지쳐 있는 제자들에게 잠깐 쉬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적당한 휴식과 수면을 필요로 합니다. 감정이 없는 기계조차도 쉬게 하지 않으면 고장을 일으킵니다. 인간의 육체도 쉬게 하지 않으면 피로가 오고 피로는 작업 능력을 떨어뜨리고 불안과 고민을 불러일으키며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감퇴시킵니다. 피로가 누적되면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되고. 결국 피로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일하면 육체와 정신에 금이 가고 맙니다. 쉴 때는 푹 쉬고 일할 때는 정신을 집중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휴식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휴식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억지로라도 휴식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시간을 가져야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휴식이나 놀이는 재창조(recreation)를 위한 것입니다.
8월을 시작하는 첫 주일에 쉼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바람직한 휴가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1.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도 하십니다.(1-3)
“[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도 2-3절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보살피는 양들은 하루를 살면서 무엇을 먹고 마실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들은 편하게 자고 일어나서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광야에서 목자는 풀이 있는 곳을 미리 찾아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양떼는 풀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미리 풍성한 풀밭과 물이 있는 곳을 찾아두고, 양들을 그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자기의 힘과 지혜로 살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제 능력만 의지해서 살려고 하면 마음에 여유를 가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의 역량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너끈히 감당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에 푸른 초장에서 양들에게 배불리 먹게 합니다. 물가에서는 목마름을 해소하게도 하고 쉬게 하기도 합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양식을 주십시다. 육적으로도 필요한 양식을 주십니다.
시편107편9절에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우리의 마음에 쉽을 주십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마태복음11장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14장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비록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다보면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우울하고 버림받은 마음과 슬픈 마음이 마음에 생깁니다. 그때는 하나님만이 영혼을 소생시켜 마음을 쾌활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위험한 인생길을 걸어갈 때도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인도하고 지켜 주시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내 욕심을 따라 채워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내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다가 많이 시험 들고 하나님을 떠나는 이유가 이것을 오해해서입니다. 올바로 알아야합니다. 오늘 다윗의 고백이 이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필요로 하기 이전에 나를 정말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셔서 나로 하여금 전혀 문제없이 누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요, 그것이 우리가 누려야 할 만족이라는 고차원적인 신앙의 고백입니다.
‘희망의 오페라’의 저자이며, 동양의 파바로티라고 불리는 성악가 조용갑 집사는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술과 도박, 폭력으로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신문배달, 우유배달, 군고구마 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철공소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이 없는 그의 인생에 목자가 되시어 인도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 권유로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레슨 받을 돈이 없어서 성악가들의 음반 테이프를 들으면서 혼자 연습을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14년간의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20여 차례의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고, 300회가 넘는 유럽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고백합니다.“하나님은 거친 파도 앞에 선 저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어 주셨습니다. 드라마틱한 인생의 무대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앞으로 저의 꿈은 희망을 잃은 채 절망 속에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오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도전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니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참으로 비관적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능하고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처럼 무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무지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난관이 있으나 하나님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역경과 난관에서 능히 구원해 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무더운 여름날 휴가를 맞이하여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편안한 쉼을 통해 힘을 얻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2.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안위하십니다.(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세상에 좋은 일도 많지만 인생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야만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고 교만을 깨뜨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사람들은 깨어지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자기의 허약과 무능력을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신앙으로 들어오는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은 지나고 보면 우리에게 굉장한 축복의 길이 열립니다. 사람이 고통당하지 않으면 깨어지지 않습니다. 딱딱한 돌을 정으로 치는 것은 돌이 깨어지게 하기 위해서 치는 것인데 정이 아니라 주먹으로 바위를 쳐서 깨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무엇을 해야 될까요? 사망을 이긴 사람은 역사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죽은 후에 무덤의 문을 박차고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예수님을 찾아야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같이 있겠다”고 말씀하신 후 승천하셨고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공기와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바로 이 자리에도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찾지 아니하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고난에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깨어진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쉽게 깨어지지만 고집이 센 사람은 여간해서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통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깨뜨려 예수님께 순종하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만들어 주는 귀한 축복이 됩니다.
시편 23편 4절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양을 치는 목자들은 낮은 평지에서 양들을 치다가 더 이상 꼴을 먹일 목초지가 없어지면 높은 산지대로 새로운 목초들을 찾아 양들을 이끌고 가는데 그 길이 종종 험하고 가파르기도 하며 또 사나운 산짐승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 해서 양들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들은 양 손에 각각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가는 목자가 눈에 보이는 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발을 잘못 디뎌 골짜기나 가시덤불에 떨어지게 되면 끝이 둥글게 휜 지팡이로 목이나 다리를 걸어 끌어올려 줄 것이고, 맹수가 나타나면 막대기로 물리쳐 줄 것이라고 철저히 믿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목양관습에 따르면 목동이 처음 양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근 숲에 가서 튼튼한 나무에서 싱싱한 가지를 하나 꺾어 그 나뭇가지를 자기의 체격과 팔 길이에 맞게 적당히 자르고 잘 다듬어 막대기를 만든 다음 그것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맹렬한 훈련 끝에 어떤 짐승이나 적수가 나타나도 그 막대기로 능히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무기를 갖춘 후에야 아버지나 형님에게서 양 몇 마리를 물려받아 목자의 일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들에게서 목자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와 막대기는 그들이 절대로 안전할 수 있다는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백성을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목자와도 같은 존재이십니다.
삶의 역경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직면하게 됩니다. 인생의 골짜기에 처할 때에 갑자기 먼 곳에 계신 것처럼 느껴졌던 하나님이 가장 친밀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생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을 때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종교가 인간관계가 됩니다.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것을 말해줍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기진맥진하여 지치고 방황하며 절망에 사로잡히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말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네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듣게 됩니다. 우리는 산꼭대기에 있을 때에, 골짜기에 처할 때에 하나님을 직면하게 됩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제일 가깝게 느낍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 되심을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우리를 지켜 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사는 날 동안만 동행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지켜 줄 수 있겠습니까 ? 법이 지켜 줄 수가 없습니다. 권력이 지켜 줄 수가 없습니다. 돈이 지켜 줄 수가 없습니다. 젊음도 지켜 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켜 줍니다" 사망이 나를 엄습해도 생명 되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이 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삽니다. 근본적으로 소망이 없습니다. 이왕 죽을 목숨이 이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생명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사망이 다스리지를 못합니다. 해로움이 다스리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다 하여도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참으로 어려운 삶의 고비 고비들이 있습니다. 어둠의 골짜기, 눈물의 골짜기, 슬픔의 골짜기의 한복판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그 길을 계속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휴가철에도 하나님의 안위를 받으며 힘 있게 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5-6)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죽음일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이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쳐보지만 결국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달을 오가는 우주선에서 지구를 내려다 볼 때 인간이 만든 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이 만리장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도 죽음이 두려워 불로초를 구하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죽어갔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요,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의 돌보심을 받고 있는 인생은 어떤 일이 생겨도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의 돌보심 아래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시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부모님은 그 아이의 발자국을 따라서 함께 아장아장 걸어가 주십니다. 결코 아이를 앞서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그렇게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오신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한 달이나 두 달 동안만 따라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1년이나 2년이 아닙니다. "내 평생에" 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평생 동안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본문 6절에 “평생”과 “영원”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평생 나를 따르리니”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집”이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사는 동안 나에게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되신 것도 엄청난 복입니다. 그러나 그 뿐 아니라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자나갈 때도 있지만 여호와의 집, 천국에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일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만 영원히 누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장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러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해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처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가는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것이니 최고의 것이 틀림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탕자에게 그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제일 좋은 집에 제일 아름다운 곳에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희망을 마음속에 크게 품을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장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여기에서 현세는 사람이 지은 집에서 사는 것 같고, 내세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에 사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은 집은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 낡고 여기저기 문제가 생깁니다. 여기저기 금도 가고 비도 새고 화재나 지진에 불타거나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현세의 삶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은 완전합니다.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맞이하게 될 내세의 삶, 저 천국의 삶이 그렇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15장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렇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고, 내일 세상 종말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사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도 된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하는 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국보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무너지니 이 나라가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천국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 믿고,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아들 낳고 딸 낳고,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하고, 좋은 집에서 재산을 모으고, 부동산을 사고, 성공하고 출세하며, 친구를 사귀며 살아가지만 이 땅은 영원히 내가 살 영원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 천국으로 돌아가야 할 이방인이요, 나그네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본향 하늘나라 천국에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 이후에 들어가는 천국을 가기 전에는 이 땅에서 은혜의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즉 성도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될 때까지 은혜의 생활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여름휴가를 통하여 은혜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휴식은 힘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휴가를 통해서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1.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도 하십니다.(1-3)
2.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안위하십니다.(4)
3.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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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힘 팍팍얻어 열심히 하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