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안내하는 팽나무
누구나 막막한 시절이 있다. 누구나 막막한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지만, 막막한 상황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연다. 누구나 나름대로 길을 찾는다. 옛 사람들은 남쪽이 사는 길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집을 지을 때 남향을 선호한 것도 남쪽이 북쪽보다 살기가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북쪽보다 남쪽을 선호한 것은 음지보다 양지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햇살을 가장 많이 받는 방향이 남쪽이다. 인간은 햇살을 받으면서 희망을 꿈꾼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도 남쪽을 지칭하는 ‘지남(指南)’이다. 그래서 지금도 지남은 ‘안내’, ‘입문서’를 의미한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나뭇가지를 보면서 살길을 찾을 수 있다. 방향만 제대로 파악하면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무의 가지 중 남향의 가지가 가장 길다. 햇살을 가장 많이 받아 성장이 다른 가지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이정표가 없던 시절 나무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나무만큼 표지에 적합한 것도 드물었다. 나무를 이정표로 삼은 것은 나무가 오래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길을 걷다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더운 여름일 경우 나무는 매우 훌륭한 쉼터를 제공한다. 이런 이정표 역할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나무는 적지 않다. 그래서 특정한 나무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나무를 이정표로 활용한 지역의 기후와 토양을 고려하면 활용 가능한 나무는 그렇게 많지 않다. 팽나무는 길을 안내하는 나무로 각광 받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0.4㎞마다 심어 이정표로 삼았다. 일본에서 팽나무를 이정표로 삼은 것은 중국 한나라 때 가로수로 사용한 회화나무가 자생하지 않은데다가 진나라 때 가로수로 삼은 소나무가 개미 때문에 잘 죽었기 때문이다. 또한 팽나무를 이정표로 삼은 것은 이 나무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에서 회화나무와 소나무 대신 팽나무를 이정표로 삼은 것은 이 나무가 일본 땅에 아주 적합했기 때문이다. 나무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기후와 토양이 적합해야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바닷바람에 잘 견디는 나무가 필요하다. 팽나무는 소금기 묻은 바닷바람에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팽나무는 일본인들의 길 안내를 위해 간택된 나무이다.
배로 태어난 팽나무
갈잎 키 큰 팽나무는 느티나무처럼 느릅나뭇과에 속하기 때문에 부모의 장점을 타고 났다. 느릅나무의 재질이 단단한 것처럼 팽나무도 그렇다. 느릅나무로 배를 만들었듯이 팽나무도 배를 만드는 데 아주 적합했다. 흔히 팽나무로 만든 통나무배를 ‘마상이’ 또는 ‘마상’이라 불렀다. 나무로 배를 건조해 사용할 경우 그 나무는 물에 잘 썩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래지 않아 배가 썩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에 잘 썩지도 않고, 아주 단단한 나무는 배를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만 제작은 오히려 어렵다. 요즘처럼 전기로 나무를 깎을 수 없을 경우 아주 단단한 나무로 배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수작업으로 배를 만들려면 제작 기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제작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 특단의 조치란 나무의 일부를 불에 태우는 것이다. 불에 태운 부분은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파내기가 훨씬 쉽다. 배는 고대인들에게 매우 긴요한 수송 수단이었다. 그들은 마상이로 고기를 잡았고, 소금을 날랐다. 특히 물물교환 단계의 사회에서는 배가 원거리 교역의 필수품이었다. 나무로 만든 배가 거의 사라진 요즘 팽나무로 만든 배는 아주 훌륭한 관광 상품일 수 있다. 팽나무로 만든 통나무배로 물건과 사람을 나른다면 얼마나 운치 있을까, 얼마나 재미있을까. 한강에 마상이 몇 척을 띄워 카누처럼 사용한다면 얼마나 신기할까, 고대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할까.
팽나무의 열매와 놀이
마상이가 팽나무의 목재 가치를 중시했다면, 팽나무의 이름은 이 나무의 열매를 강조한 것이다. 이 나무의 열매를 작은 대나무 대롱에 넣고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 공기 압축을 이용해서 탁 치면 ‘팽’하고 날아가는 것을 ‘팽총’이라 한다. 이 나무의 열매가 여기에 쓰인다고 팽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이 나무에 대해 여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열매를 쉽게 볼 수 없다. 작은 콩알처럼 생긴 이 나무의 열매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그루의 나무를 1년 동안 지켜볼 만큼 애정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관찰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여름철 잎에 가려진 팽나무의 열매를 발견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잎 떨어진 나무에는 관심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나무의 열매를 자세하게 볼 기회는 드물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퍼순(Persoon, 1762-1836)이 팽나무의 학명에 이 나무의 열매를 강조한 것도 사람들이 이 나무의 열매에 관심을 가지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학명 중 속명인 ‘셀티스(Celtis)’는 ‘단맛을 가진 열매’에서 온 말이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이 나무를 ‘슈가 베리(Sugar berry)’라 부른다. 팽나무의 학명을 붙인 사람은 이 나무의 원산지를 중국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저패니즈 핵베리(Japanese Hackberry)’, 즉 ‘일본 팽나무’로 표기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엄연히 학명에 등장하는 원산지를 놔두고 일본을 원산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아시아의 대부분 식물을 일본을 통해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을 이해하면서 반드시 원산지를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학명에 원산지를 표기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산지 표기는 한 존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식물에 대한 이해가 단순히 한 그루 나무와 한 포기의 풀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식물이 자라는 국가 전체를 이해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산지에 대한 이해는 결코 간단치 않다. 그래서 팽나무의 원산지를 중국으로 이해하는 것과 일본으로 이해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팽나무의 한자 이름은 박수(朴樹), 박수(樸樹), 박유(樸楡) 등이다. 모두 질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한자는 주로 한방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박유’는 이 나무가 느릅나무의 자식임을 암시한다.
꿈을 주는 팽나무
팽나무는 주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흔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사회관에도 한 그루 팽나무가 살고 있다. 이곳의 팽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돌로 울타리를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이곳의 팽나무는 이 건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야외수업 때 팽나무를 보여줄 때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내가 이곳을 찾는 시기는 봄이다. 내가 굳이 봄철에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늠름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나무의 기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봄철에 사회관의 팽나무를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나무의 생리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은 개나리, 벚꽃 등 화려한 꽃에는 관심을 갖지만, 꽃이 화려하지 않을 경우 꽃이 피는지조차 모른다. 팽나무도 느티나무처럼 사람들에게 꽃으로 이해되는 나무가 아니다. 팽나무꽃도 알고 보면 아주 화려하다. 팽나무꽃도 그 어떤 나무보다 많이 핀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팽나무의 꽃을 기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팽나무꽃을 보여주는 일은 다만 한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팽나무의 꽃을 보여주는 것은 한 생명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의 과정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무의 위대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위대한 삶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정확하게 볼 수 없다면 진정 그 위대성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무의 삶을 낮은 자세로 보지 않고서 그저 입으로만 위대하다고 얘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명에서 강조한 팽나무의 열매를 보려면 우선 이 나무의 꽃을 봐야만 한다. 나는 사회관의 팽나무를 통해 학생들에게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사회관의 팽나무는 학생들에게 꿈을 주는 나무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언제나 꿈을 준다. 내가 봄철마다 이곳의 팽나무를 만나는 것은 학생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발걸음이다.
그리운 팽나무
우리나라 곳곳에 행복을 주는 팽나무가 적지 않다. 어느 팽나무인들 행복을 주지 않을까. 다만 내가 만난 팽나무는 만나지 못한 팽나무보다 행복을 많이 준다. 그래서 한 그루의 팽나무를 만나는 일은 곧 행복을 찾아나서는 길이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많이 만난 천연기념물 제400호 팽나무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의 ‘황목근(黃木根)’이다. 나는 이 나무를 사계절 동안 보았다. 가족과 이 나무를 보았고, ‘나무세기’ 회원들과 이 나무를 안아보았고, 초중등 교사들과 이 나무를 누워서 보았다. 내가 이 나무를 보기 위해 자주 이곳을 찾은 것은 결코 이 나무가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왠지 팽나무를 언급할 때마다 이곳의 나무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내가 예천군 용궁면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예천이 고향인 것처럼 내가 왜 이곳의 팽나무를 예찬하는지 모를 일이다. 구태여 한 가지 이유를 댄다면 이곳의 팽나무를 처음 만날 때 무척 헤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더운 여름 가족과 함께 이 나무를 처음 만났다. 나와 팽나무 모두 낯가림이 심한 탓인지 좀처럼 서로 만날 수 없었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둘은 만날 수 있었다. 예천 용궁면의 팽나무를 만날 때면 나는 결코 곧장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언제나 마지막에 팽나무를 만난다. 나는 팽나무를 만나기 전에 선몽대(仙夢臺)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예천의 명소인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소나무를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을에는 떨어진 은행나무잎으로 한편의 영화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나를 사로잡는 것은 은단풍나무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은단풍나무를 쉽게 볼 수 없다. 그런데 이곳의 은단풍나무는 아주 키가 크고 모습도 우아해서 사람을 압도한다. 특히 강물에 비친 물든 모습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답다. 선몽대에서 회룡포로 가는 시간도 무척 행복하다. 안동 하회마을처럼 생긴 이곳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다. 나는 누른 나락과 함께 펼쳐진 이곳의 풍광을 사랑한다. 더욱이 이곳 모래밭은 아주 넓어서 밤새도록 별을 즐길 수 있다. 새까만 밤에 굽이굽이 흐르는 물과 하늘을 수놓은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천지를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아는 존재다. 회룡포에서 팽나무와의 거리는 아주 짧다. 자동차로 5분이면 도착한다. 그러나 나는 아주 느리게 팽나무를 만나러 간다. 그리운 존재를 그리워하면서 만나기 위해서다. 다른 곳엘 들렀다가 마지막에 이 나무를 만나는 것도 정말 그리워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만나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여운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곳의 팽나무는 들판에 살고 있다. 이곳의 팽나무는 마을의 어귀에 있지 않고 논 중앙에 있는 게 특징이다. 이곳 팽나무는 나무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지주다. 지주의 이름은 황목근이다. 성을 황씨로 삼은 것은 팽나무의 꽃이 황색이기 때문이고, 이름을 목근으로 삼은 것은 ‘근본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쌀을 모아 팽나무 주변의 땅을 사서 나무이름으로 등기 이전했다. 나무가 땅을 소유하고 있으니 당연히 나무가 세금을 낸다. 이곳 마을사람들이 이렇게 낯선 일을 한 것은 팽나무가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천 용궁면 금남리 사람들에게 팽나무는 꿈과 희망의 나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생장 상태로 풍년과 흉년을 예측했다. 팽나무의 싹이 한꺼번에 나오면 풍년,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라 여겼다. 팽나무의 싹이 한꺼번에 나온다면 나무의 기운이 많다는 뜻이고, 그렇지 않으면 기운이 부족하다는 뜻일게다. 나무의 기운 여부는 우주의 기운과 맞물려 있다. 나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온 몸으로 아는 존재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나무의 생장 상태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점쳤던 것이다. 황목근 옆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 있고, 어린 자식도 살고 있다. 어린 팽나무를 심은 것은 혹 황목근이 죽을 경우를 대비한 조치다. 황목근의 건강 상태는 현재 아주 좋은 것은 아니다. 먼 장래를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마음은 고귀하다. 이런 행위는 자신을 위한 것이면서 후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곧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생각하라는 공자 말씀의 실천이다. 내가 본 황목근은 열매가 아주 많이 열린다. 팽나무의 열매는 적갈색이다. 열매가 검게 익는 팽나무도 있다. 그래서 검팽나무라 한다. 특히 나카이가 붙인 검팽나무는 학명 조세니아나(choseniana)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원산이다. 팽나무와 비슷한 풍개나무도 열매가 검게 익는다. 열매가 팽나무보다 크면 왕팽나무, 산에서 자라면 산팽나무라 부른다. 산팽나무는 잎 모양이 팽나무와 다르다. 초겨울 눈 오는 날 황목근을 본 기억이 새롭다. 나무를 안고 서설(瑞雪)을 맞이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누군가를 그리워할 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움은 눈이 세상의 소음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듯, 세상의 절망을 녹여버리고 희망을 잉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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