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우리시”를 재밌게 읽는 나의 방법...
1)
저는 시를 좋아하는 월간 “우리시” 독자입니다.
홍해리 시인님의 " 치매행" 시집을 읽고서 2018년 7월부터 월간 “우리시”의 독자가 되었으니 벌써 18개월이 흘렀습니다. 처음 “우리시”를 받아보고 참 기뻤습니다. 집으로 배달된 책을 열면 맛있는 과일이 가득 찬 詩바구니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권두시로부터 한시한담까지 꼼꼼하게 읽으며 늘 가까이 두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시에 대한 사랑도 식어갔는지, 어떤 달은 건성으로 읽고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여 처음처럼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 나름의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해 보는 것입니다. 12월에 실린 시인들의 시를 내 기준으로 뽑았습니다. ( 소시집 등 특집 제외) 그리고 그중에서 세 편을 선정하고, 그런 후에 세편 중에서 한 편을 선택하여 보다 깊이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1) 시가 내게 감명을 주는가
2) 시가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가
이러한 생각으로 시를 읽다 보면 좋아하는 시가 드러납니다. 좋아하는 시를 뽑고 보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시인과 시에 대하여 관심을 더 갖게 됩니다. 이런 관심이 내게 시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에는 지금 내가 외면했던 나를 낯설게 하던 어려운 시도 가까이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2)
12월호 우리시에서 김순일 시인님의 <땀에 절은 그 속이> 그리고 이화인 시인님의 <터럭> 그리고 홍인우 시인님의 < 초겨울 일기>를 뽑았습니다. 편의상 전문을 옮기겠습니다.
땀에 절은 그 속이 / 김순일
서산용현리마애삼존상 앞에서 빈다
부처님!
미소 좀 떼어 먹게 하여 주십시오
물끄러미 나의 얼굴을 내려다보시며
집에 돌아가 거울 앞에 서서
네 얼굴이 다 닳을 때까지
들여다보라고 하신다
30분을 버티지 못하고
거울을 집어던진
나는
땟국물 흐르는 서산 장터로 나가
시장바닥 사람들의 얼굴 속으로 들어갔다
땀에 절은 그 속이
따뜻하게 웃으며 반겼다.
♣김순일 시인님께서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상을 찾아 아름다운 그 미소를 좀 나눠줄 수 없냐고 떼를 씁니다. 마애불은 너의 얼굴이 닳을 때까지 들여다보라고 합니다. 시인은 결국 30분도 버티지 못하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서산 장터 시장바닥에서 마애삼존상의 미소를 찾습니다. 활발발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이 바로 마애불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도 미소를 짓습니다. 감동이 묻어납니다. 나는 이런 시를 좋아합니다. 시인이 만난 사물 속에서 느낀 진솔한 감동을 시로 표현한....이 시를 읽으면서 김종삼 시인이 생각납니다. 그분의 시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다시 읽으며 “마음이 따뜻한 시인들은 서로 통하는가 보다” 고 생각했습니다.
초겨울 일기 / 홍인우
구절초 꽃밭 만들어준 당신에게
매양 나는 새벽 찬 서리 같았지
사시사철 내리는 서릿발에
낙담으로 채워진 낮과
허전함에 등 시린 당신의 밤이 거듭 되었으리
그해 겨울
계절 넘긴 꽃처럼 당신 홀연히 떠나니
소문은 햇빛 아래 이삿짐처럼 구차히 떠돌고
당신의 골목은 순식간에 망망히 넓어지더라
12월이면
홀로 별이 된 당신
옅게 밝히는 새벽마다
선잠 끝 가슴을 찔리는 나는
너무 늦게 당신의 안부를 묻곤 한다
♣홍인우 시인님의 “초겨울 일기” 시를 읽으며 누구를 위한 사랑인가?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관심을 갖고 보니 나와 시인이 2018년 여름 시인학교에 함께 참석했던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때 백일장에서 시인은 “차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제목은 <바람결에 쓰리다> 2016년 섣달 그믐밤에 별세하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또다시 겨울이 오고 한 해의 끝이 돌아올 즈음엔 언제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떠오를 것입니다. 아버지...당신이 죽고 나서야 더욱 크게 느껴지는 당신의 빈자리입니다. 시인의 효심과 그리움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느덧 아버지의 삼년상도 지났으니 이제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길 바랍니다. 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 이화인 시인님의 <터럭>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터럭>을 선택한 것은 이 시를 읽으며 독자인 나도 시인과 동병상련을 느꼈나 봅니다.
터럭/ 이화인
소소한 일로 부부싸움에 밤새 잠 못 들고
뒤척이던 아내를 바라본다
돌이켜보니, 원인은 나였다
문득, 아내 속가슴에 박혀 있는 터럭 하나
전생에 심어놓고 미처 뽑어주지 못한
아내의 생살을 먹고 자란 작은 터럭 하나
먼 훗날 가시가 되고 날 선 비수가 될
다음 생에서 들보만큼 자랄 터럭 하나
(이상 출처: 월간 우리시 12월호 )
“ 아내 속가슴에 박혀 있는 터럭 하나” 이 작은 터럭 하나 제대로 뽑아주지 못한 남편이 크게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은 터럭 하나가 아내에게 평생의 비수가 되고 다음 생까지 이어가는 그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시인의 후회입니다. 시인의 걱정과 후회를 독자인 내가 공유합니다.
이 부부의 연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누구라도 오랜 부부생활 동안 부부의 갈등이나 싸움이 없을 수 없겠지요 연애시절 그리고 신혼시절의 달콤한 사랑이 지나고 나면 무덤덤한 4, 50대를 지나서 어느덧 아내가 갱년기에 이를 즈음 부부는 커다란 계기를 만나게 됩니다. 어느 날 남편은 새로운 사람으로 변해있는 아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자연스런 변화이지만 미처 대처하지 못한 남편은 이때쯤이면 매우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대부분 남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비교적 젊은 시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미숙한 나의 행동들이 은연중에 아내에게 상처를 남겼고 이것이 작은 터럭이 되어 시간이 지나 아내의 속병이 됩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이혼을 할 정도의 큰 문제는 아니기에 아내는 더욱 속만 타는 게지요.
아내는 갱년기를 맞아 몸과 정신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아내는 산전수전 다 겪은 아주머니가 되었는데 남편은 아직도 내재된 부부간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 못하고 있다면 부부는 언제라도 터질 활화산을 안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부부가 지니고 사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3)
여기 또 한 사람의 시인이 있습니다. 이 분도 아내의 세심한 마음을 외면하고 살다가 늦게서야 아내의 빗살무늬 상처를 알고 미안해 하고 있나 봅니다. 매일경제에 연재된 시평으로 대신합니다.
빗살무뉘 상처에 대한 보고서 / 우대식
아내의 가슴에서
못 자국 두 개와 일곱 개 선명한 선이
발견되었다
못 자국 두 개의 출처는 내 분명히 알거니
빗살무늬 상처는 진정 알지 못한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가 해변에서 보낸
나날들의 기록인가 생각해보았다
혹 주막에서 보낸 내 생을
일이 년 단위로 가슴 깊이 간직한 탓이라고도
생각해보았다
매일매일 생의 싸움터를 헤매인 것은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왜 저의 가슴에 저토록 선명한 상처의 보고서가
남아 있는가
나 바다에서 죽음을 꿈꾸었을 때
그는 지상에서 죽어갔던 것
그리 현실적이지 못했던 중년의 시인은 아내에게 향하는 미안한 마음을 시에 옮겼다. 감동적이다. 아내가 감내해야 했던 세월은 빗살무늬 상처로 남았다. 그 상처는 시가 됐고 이상을 꿈 꾼 시인에게는 방황과 미안함이 남았다. 시인은 바다에서 아내는 지상에서 살아야 했던 날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이다. 이 시를 쓴 시인과 그의 아내가 행복하기를…( 매일경제 2008.1.28. 허연기자 (시인) ♣
그러나 문제 많은 중년의 부부를 넘어서 아름다운 삶을 사는 이런 노부부도 있습니다.
구상시인은 힘들었던 때를 지나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老夫婦 / 구상
아름다운 오해로
출발하여
참담(慘憺)한 이해에
도달했을까!
우리는 이제
자신보다도 상대방을
더 잘 안다
그리고 오히려
無言으로 말하고
말로써 침묵한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야금야금 시시해지고
데데해져서
아주 초라해진 지금
두 사람은 안팎이
몹시 닮았다.
오가는 정이야 그저
해묵은 된장맛......
하지만 이제사
우리의 만남은
영원에 이어졌다.
“ 아름다운 오해로 출발하여 참담(慘憺)한 이해에 도달했을까!” ....
서로 착각 속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 이런저런 다툼과 사랑 속에서 결국 노부부가 되었을 때에야 서로 깊은 이해에 이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노부부가 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타고난 온화한 성품과 끝없는 배려가 필요한 부부관계입니다. 나같이 불같은 성품을 타고난 사람은 참으로 지난한 과제입니다. 그래도 인생의 성공을 원한다면 끝까지 노력해야 할 과제입니다. 만약 어떤 남자가 세상의 권세와 부귀 그리고 명예를 다 얻었다 하여도 마지막으로 그의 아내에게 존경을 받을 수 없다면 그의 인생은 결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내 곁에서 나의 속마음까지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웃이자 비평가입니다. 남편의 지난 삶이 바른지 바르지 않았는지도 훤히 알며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는 겉모습보다 냄새나는 내 속 모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에게 인정받기보다 아내에게 인정받기가 엄청 힘든 것입니다.
하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그것이 바로 부부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애증의 관계를 끝까지 잘 이끌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은 성공적이라고 평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성공적이지 못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그런 내게 구상 시인의 시 “老夫婦”는 내가 바라는 부부 모습입니다. 오늘 아내의 카톡에다 “老夫婦” 시를 보내며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끄럽지만 저의 습작시 < 칼과 숫돌>로 마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부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칼과 숫돌
아내를 위해 칼을 갈았다
숫돌은 자기 살을 베이면서
칼날은 자기 몸이 깎이면서
서로 갈려져야 끝이 난다
칼날이 끊임없이 저항하지만
숫돌이 묵묵히 참고 벼린다
이제 요리하기 편해졌는지
아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 첨언:
2019년 우리시 송년회에 초대해 주신 임채우 이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송년회를 통하여 뵙고 싶었던 여러 시인님들을 만나 함께 한 시간,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홍인우 시인님과의 개인적 만남 또한 기쁨이었습니다.
저는 “우리시” 독자로서 참석하였는데 송년시낭송회에서 제게도 기회를 주셔서 고맙고 과분한 자리였습니다. 송년 시 낭송회에서 언급했던 말씀을 정리하여서 “우리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올렸습니다만, 시인 文士들 앞에 나서는 제 모습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버리니 벼리어지는 것이 칼인가 봅니다.ㅎ
오명현 사무국장님 고맙습니다.
도은 선생님 반갑습니다. 우리시 독자의 편지가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겨울밤입니다.
고맙습니다!
나병춘 시인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