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맑고 아름다운 시의 탑 지으시길
시 쓰기를 탑 쌓기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절한 석재를 골라 기단부터 상륜부까지 차곡차곡 탑을 쌓듯이 시 또한 적절한 시어들을 골라 언어의 탑을 세운다고 할 수 있다. 천년을 지탱할 탑을 쌓기 위해서는 탑의 몸이 될 적절한 석재를 고르는 안목과 다듬는 기술, 배치와 균형감각 등 석공의 자질과 숙련된 솜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기백 개 안팎의 어휘로 쌓아 올린 언어의 탑이긴 하지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후세에 길이 남을 문화재급의 탑을 쌓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몇 년 가지도 못할 보잘것없는 탑을 쌓느라 허송세월하기도 한다.
이번 《우리詩》신인상 추천 대상작으로 박도신 스님의「네거리 여인숙」외 4편을 골랐다. 그는 수행 중인 불제자다. 그의 시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이며, 중생을 위무하는 자비행이며 또한 설법이기도 하다. 한편 무상한 삶에 허덕이는 중생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도신 스님은 시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노래의 삶’을 체험했다. 노래를 통해 스스로의 번민을 벗어나고 중생들을 즐겁게 하는 보시행을 체득한 바 있다. 사실 시와 노래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 시원이 하나이며 그 기능이 또한 다르지 않다. 노래가 가락에 더 기운다면 시는 생각에 더 의존할 따름이다. 도신 스님의 시에 대한 관심은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해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시「네거리 여인숙」은 세속적 삶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다. 구도자로서 화자의 과거사를 방황을 뜻하는 네거리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여인숙과 허울뿐인 이름을 나타내는 낡은 간판에 비유하여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라고 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구도자의 굳은 심지가 나타나 있으나 그 바탕에는 옅은 페이소스가 깔려 있다. 시「천장암 가는 길」에서는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처, 깨달음의 세계를 ‘천장암’에 비유하고 있다. 그 구도행의 처음을 시「동자와 달」에서 느끼게도 한
다. 달이 없는 날 동자의 목탁이 울었다는 표현에도 어떤 막막한 슬픔이 감지된다. 시「능쟁이」에서는 갯벌에 능쟁이가 가는 길을 구도자의 길로 비유하고 있으며, 그것이 생사 초월의 무심한 길이라는 적막감이 시적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시「산벚꽃」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도반에 대한 그리움을 산벚꽃으로 비유하여 이미지가 겹치는 수법으로 시적 대상을 드러내고 있다. 위의 네 편과는 달리 절문 안에서도 조촐한 인간 냄새가 승한 시편이다.
시인들이 추구하는 언어는 천 갈래 만 갈래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소리의 빛깔만큼이나 다양하다. 도신 스님의 언어는 불제자로서 그 세계 안에 있음이 당연하다. 다만, 피안, 중생, 무상, 무위, 인연 등등 불가에서 많이 거론되는 언어들을 환유의 수법으로 반복 사용하여 언어적 지향은 강화할 수 있으나 도식성에 떨어질 염려가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비한 시적 분위기의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이에 있다.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듯 중생들의 망상을 단숨에 깨뜨리는 참신한 언어를 스님께 기대하는 바다.
서두에서 거론한 것처럼 시를 쓰는 일은 탑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긴 생명을 지닌 맑고 아름다운 언어의 탑을 쌓아 가기를 바란다. 거듭《우리詩》 신인상 수상을 축하하며 문운을 빈다.
심사위원 : 임보, 홍해리, 임채우, 나병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