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리 여인숙 외 4편
박도신
노란 민들레꽃 같은 쥔장의 미소가 떠나버린 네거리 여인숙
눈에 익은 낡은 간판만이 마중 나와 있다
못이 빠져 기울어진 간판은 칠 일 굶은 바보처럼 힘없이 웃고만 있고
세월을 덕지덕지 껴입은 글씨는 땟국에 찌든 채 덜거덕덜거덕 무상함
을 노래한다
가을은 무상으로 지내고 겨울은 발심으로 살며 봄은 화두로 피고 여
름은 무일물에 젖는다는 번뇌
이 또한 내려놓고 발길 돌려 가는데
덜거덕덜거덕 낡은 것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라고 일러 준다.
천장암 가는 길
천장암에 가서 돌아온 자 없다
들어갈 땐 중생의 몸으로 가지만
깨달음을 얻어 피안에 이르니
무위의 배가 있다는 길 끝 천장암
연암산 산신 칼바람 쳐들고
납자들 세워 다시 묻는 길
강 건너 진정한 고향에 이르러
자유자재로 산다지만
그 누구 소식 전해 주는 이 없다
무위의 배는 소문만 무성하고
연암산 산신 칼바람 날 세워 쳐들고
다시 물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천장암 가는 길, 노송잎 부딪는 소리
장로長路에 가득하니
空에 이르러 오지 않아도 되는 자
머무는 마음 없이 마음을 낸다.
능쟁이
늦가을 나그네 능쟁이가
갯벌에 길을 내고 있다
숨은 파도를 따라 물결을 타며
무너진 길을 잇고 또 이어간다
너울이 밀려오면 갯바위로 올라서고
센바람의 날갯짓은 마음에 데려다 앉히고
핑계와 변명이 침몰하는
모래 언덕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삶의 의미는 사는 것으로
죽음의 의미는 죽는 것으로
윤슬의 바다
햇살 조는 백사장에서
생각 잃은 날은
능쟁이 따라 길을 걷는다.
동자와 달
동짓달 새벽
동자의 목탁소리
달그림자 부른다
먹장구름 사이
달 기다리는 앳된 염불
도량에 넘쳐나는데
노 스님 기침소리
고목을 넘어가도
귀 밝은 달은 대답이 없다
달 그림자가 아니어도
동자의 목탁은 울어야 한다
목탁이 우는 소리에
천지만물이 아침을 시작한다.
산벚꽃
평생의 벗이 불현듯 보고 싶어
팔봉산 넘어 무작정 달려왔다
벗은 분주히 어딜 갔는지
태을암엔 인기척이 없다
절마당에 수선화 석양과 놀고 있고
늘어진 강아지는 깊은 잠에 들었다
산 오르다 지치면 등 뒤에서 밀어 주고
내려가다 개울 만나면 손잡아 건네 주는 사람
밀어 주지 못하고 잡아 주지 못해도
그저 환한 산벚꽃처럼 웃어 주는 사람
어디쯤 그 얼굴이 내 온 줄 짐작하고
얼굴 빨개 달려오려나
미소가 흰 구름처럼 푸근하고 인자한 사람
그의 거처에 와 그를 기다린다.
----------------------------------------------------------------------------------------------------
|당선 소감|
시를 좋아하다 보니
박 도 신
작곡도 하고 작사도 하고 노래도 부르다 보니 7집 음반까지 냈습니다. 바둑도 두고 운동도 하면서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렸습니다. 아픔을 아픔인 채로 놓아둘 수는 없었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헤맨 시간들이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부처님 세계의 많은 가르침들이 있지만 업장 많은 중생이 다가가기에는 요원한 일로만 여겨졌습니다. 나를 위한 진정한 위로와 대화를 찾지 못한 채 나를 잊고 살았습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언제부턴가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진정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도 모르고 지내온 것입니다.
우연도 인연이라지만 그 우연이 필연으로 여겨지는 것은 우연이 사연을 이어 가면 정이 깊어지고 정이 깊어지면 나는 그에게서 나를, 그는 나에게서 그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를 만난 것은 우연 같은 필연이었습니다. 그에게서 나를 보았기에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나는 저녁마다 그의 시를 들을 수 있었고, 나는 시를 외워 그에게 들려주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를 한 편씩 외워 공유하고 느낌을 말하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시공을 초월한 두터운 공감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심지어는 전생의 짙은 인연까지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안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시를 듣는 귀가 부족했고, 시를 부어낼 줄 아는 시심이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그 안타까움이 결국은 저로 하여금 시를 가까이하게 하고 시집을 들추게 하였습니다. 아,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음악을 통해서도, 운동을 통해서도 다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행복감이 시집을 들추어 읽고 단 한 자라도 시를 써보는 속에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속에 부처님도 계시고, 어려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동생들, 음악과 노래, 그리움과 삶, 모든 것이 그 속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만들기 위해 노랫말을 끄적거리던 때의 글에 대한 느낌과 완전히 다른 그리하여 그것이 공포로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만난 것입니다. 제가 시를 좋아한다는 것을 찾게 해 준 그는 이미 타 지역으로 떠나고 시의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진정 시를 좋아하다 보니 시 또한 그 깊은 상대가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1집 음반 도신의 국악가요를 내면서 시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평소 늘 존경하는 문학포교원의 원장이신 혜관 스님이셨습니다. 무조건 찾아뵈었습니다. 시의 길을 일러 달라고 거의 생떼를 썼습니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냐고 묻고 묻기를 거듭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다듬어 주기위한 많은 정성을 쏟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애써 공부해도 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저의 한계였으나, 시를 읽고 쓰는 행복은 더해만 갔고 주체할 수 없는 그 불덩이가 저를 응모에까지 이끌고야 말았습니다.
참 부족하고 모자란 작품을 선택해 주시고 추천해 주신《우리詩》의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또한 곁에서 힘을 실어준 저의 사찰 종무소 식구들과 도반 흥법 스님, 저로 하여금 시집을 사게 했던 위재천 님 그리고 시와 더불어 어깨동무 해주신 박옥근 대표님과 시노사 회원 여러분, 문단의 길로 이끌어 주신 채들 선생님과 그 외에 고마우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다 전하자면 지면으로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제가 겸손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인이 되는 것만이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정진할 것을 다짐하며 인사에 가름합니다.
첫댓글 도신 시인님!!
기쁜 마음으로 축하 합니다!!
도의 길도 끝이 없지만
시의 길도 끝이 없지요!!
양 손에 도와 시를 올리셨으니
꼬옥 쥐고 가시길 바랍니다.
도 와 시
모두가 외롭고 힘든 먼 길 입니다!!
함께 북돋으며 한 걸음씩 정진해 갑시다!!
겸손한 자세 잃지 않고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_()_
축하드립니다.
힘을 보태 우리 모두가 신인상을 받을 때까지 노력합시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_()_
축하드립니다.
좋은 글 많이 기대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_()_
도신 스님 축하드립니다.
우리詩 여름시인학교에서 뵙겠습니다.
당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