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이서화
사북*이라는 말, 접힌 것들이 조용히 쉬고 있는 곳
접린의 힘을 가진 나비는 날갯짓 횟수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 몸을 열어보면 다 풀어진 사북이 들어 있을 것이다.
맨 처음 가위는 풀들이 겹치는 모양에서 본을 따왔을 것이고,
가윗날 지나간 옷감은 그래서 펄럭일 줄 안다.
쉬이 맞물리지 않는 나무들에게서 헐렁한 가위소리가 난다.
접점의 날이 만나면서 툭툭 떨어지는 호두나무 몫의 바람은 날카롭다.
부챗살이 접혔다 펴질 때마다 더위는 종이로 찢어지고 바람은 모두 사북으로 몰려가 있어 떨어지지 않는다.
가을, 들판의 풀은 허리가 겹치면서 늙어간다.
계절에도 키가 있다면 여름에 모두 자랄 것이고 바람을 거둬들이는 즈음을 사북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눈 밟는 소리에 몰려가 있는 사북사북
걸어간 발자국은 양날의 흔적이다 흰 전지(全紙) 한 장을 가르며 지나가는 가웟날의 흔적이다.
화선지 모양의 걸음 문양에 한동안
매운 바람소리가 들어 쉴 것이고
따뜻해지면 그 발자국을 신고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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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의 아랫머리나 가위다리의 교차된 곳에 박아 돌쩌귀처럼 쓰이는 물건을 이르는 말.
⸺계간 《모:든시》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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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화 / 1960년 강원 영월 출생. 2008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굴절을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