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에세이
김혜천
에세이(les essais)는 '새로운 시도를 시험적으로 해본다'란
뜻을 지녔다.
사물을 현미경적으로 관찰하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시적 행위는 관찰자의 무의식과의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
그러므로 프랑스 박물학자 뷔퐁(Buffon,1707~1788)이 "문
체는 곧 그 사람이다"라고 한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어떻게 묘
사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묘사되고 있는 대상보다 묘사하고 있는
사람의 의식세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기처럼 찾아가는 풍경이 어떻게 시가 되었나
특별할 것도 없는 운길산역 북한강철교 일원은 필자가 책 한
권 들고 자주 찾는 곳이다. 강을 가로질러 양수리로 건너가는
철교 초입 바람따지에 모 시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라이브 카페
가 있다.
따듯한 불빛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은율이 시적 서정을
일렁이게 하는 곳, 물안개가 길을 지우는 그곳은 무의식 속에서
잠자던 시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수없이 건너던 북한강철교를 단테가 베아뜨리체를 기다리던
몬테베키오로 보고 시에 대한 열망을 이렇게 이렇게 써 보았다.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몬테베키오
베아트리체를 기다리며 수없이 망설이던 곳
그 다리 초입의 거푸집을 지었다
허공의 집
바람의 집
나는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을 잃었다
길은 길 따라 끝이 없고
따라오는 길을 자꾸만 지우는 안개
저 다리를 건너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강물이 강을 버려 바다에 닿듯
나는 무엇을 버려 네게 닿을까
바람이 몸을 풀어 강을 깨우고
수초가 흔들리다 달의 그림자로 눕는 곳
연잎의 물방울이 흘러 물알을 깨고
물의 신들이 춤을 추는 곳
이곳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신곡 한 편 얻을 수 있다면
휑한 거푸집에 남아 스러져도 좋겠다
ㅡ「물詩의 집에서」 전문
강가를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노을, 어스름 저녁에 반사되는 윤슬,
별들이 추락하여 만들어 낸 반짝이는 시의 마을로 들어갈즈음 몽상을
깨우듯 양수리에서 지하철이 들어온다. 하루를 살고 귀가하는 군상들
을 실은 지하철은 몸을 길게 늘이고 기어가는 한마리 자벌레 같았다.
순간 철교에서 노을을 등지고 쉿조각 하나가 강물에 몸을 던지며 파
문을 일으킨다. 필자는 물의 마음을 이렇게 읽었다.
하루의 노동을 껴안고
강가를 붉게 물들인 저물녘
양수리에서 출발한 자벌레
몸을 길게 늘이고
운길산역으로 들어온다
서서히 제 몸의 길이를 재면서
얇아진 뱃가죽의 촉수를 세우고
물의 마음을 읽는다
철교의 쇳조각 하나
강물로 투신하여 파문을 일으킨다
부식된 시간의 파편, 철교는 달리고 싶다
자벌레가 제 몸의 뒷부분을 가슴까지 당겨
고리를 만들고
다시 몸을 늘여나가듯
우리는 만나야 한다
우리는 하나되어 전진하여야 한다
귀환하는 자벌레 어깨를 밤이슬이 껴안는다
ㅡ「멈춰선 레일」 전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분단의 아픔을 품고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만나면서 호소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함께
살자고...
생존을 위해 머물러 있지 않고 끝없이 걸어가는 노마드, 무의식
속에 내제되어 있는 기억을 소환해 끊임없이 재해석 해내는 새로
운 풍경은 詩가 되어 공간 속으로 번진다.
첫댓글 가슴으로 쓰신 글 잘 읽고 갑니다
깜상 님 귀한 발길, 공감 감사합니다.
운길산역 - 수종사 -두물머리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지요.
베아트리체를 만난 단테!!
운명적 만남이겠지요.
멋진 시와 에세이 읽고 갑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
단테의 집엘 가 봤는데 우리집과 다름 없는 작은 집,
누군가를 기다리던 거리와 골목과 냉소했던 베아트리체,
누구나 맘 속에 베아트리체는 숨어 있고,
신곡은 쓰여지고 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명편 한 편 쓸 수 있겠지요~ 고맙습니다_()_
풍경을 그린 글이 아름답습니다. 점 점 발전하는 모습을 뵈어요.
격려 감사드려요.
부단히 달려가나 신기루예요 샘~~
건강과 문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