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초 전주에 눈이 많이 내린 날 천양정에도 눈이 많이 쌓였는데,
이른아침 출정 나오신 천양정 사원들이 과녁에 살포시 내린 눈을
화살로 맞추어 떨어뜨리는 장면을 찍어둔 적이 있습니다.
바빠서 올리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올려 봅니다.
일부러 고전막사 옆에까지 가서 추운데 오돌오돌 떨면서 찍은 여러 컷 중에
세발 연속으로 맞은 장면이 그 중 제일 볼만 해서 여기에 올렸으니 즐감하세요.
상단에만 남은 눈을 떨어뜨린다고 다섯 명이 한꺼번에 활을
연거푸 쏘아대기도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그 장면은 담지 못하였으니,
왜냐하면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
시인 김광균은 밤에 눈오는 소리를 ‘어느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비유했었는데,
천양정 사원들은 '옷 벗기는 소리'(?)라는 특이한 논리로써
서로 먼저 맞추어 과녁의 눈을 털어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한편 낭만적이기도 하고 한편 유치찬란하기도 하여
휴대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 많이 웃었습니다. ^*^!
<설야> 김광균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곳의 여인의 옷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올겨울이다 가기 전에 천양정 과녁에 또 이렇게 얌전한 새벽눈이 쌓일 일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 활 내시는 분들만
맛볼 수 있는 이 기막힌 여운을 많은 분들이 함께 느낄 수 있으면 합니다.
글쓴이 능파 서문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