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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표절』에 담긴 천민자본주의와 『知 테크』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황 장 수
1. 박사논문표절로 총선 판을 달군 문대성이 결국 새누리당을 사실상 강제 출당되다시피 나갔다. 박 비대위원장은 어제 이 일에 대해 국민들에 사과를 했다.
2000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돌려차기로 국민의 히어로가 된 문대성은 이후 IOC 선수위원, 동아대 교수, 국회의원 당선까지 승승장구를 달려오다 박사논문표절 한 건으로 급전 직하로 추락했다.
사실 그 개인으로서는 사회적 관행(?)에 대해 본인이 지나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다.
이번 문대성의 논문표절 사건은 우리 사회 중상류층 전반의 박사학위와 관련된 천민자본주의적 속성과 지식과 학위마저 일종의 신분과 지위, 소득유지로 여기는 행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실 그는 박사학위 취득에 몰두하는 수많은 중상류층 중에 지독히 재수 나쁜 한 사람일 뿐인 것이다.
2. 60~70년대 우리 사회에서 해외 박사학위는 매우 드물었고 그 자체가 신분과 지위, 명예를 입증했다.
요즘도 그런 사람이 많지만 그때 해외 박사학위는 명함과 집 거실을 장식한 상류층 훈장이었다.
특히 그 당시 해외 박사학위는 초 상류층들만이 가능한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에 해방되고 돈의 걱정에서 벗어난 집안의 자제들만이 가능한 특권이었다.
따라서 유학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국내 박사를 땄지만 국내 박사는 어디까지나 이류인생으로 취급 받았으며 대학 교수로도 취업이 쉽지 않았다.
당시의 해외 박사 학위는 사실상 아무나 올라갈 수 없는 신분과 명예, 특권의 상징이었으며 간혹 스스로 돈 없이 유학 가서 갖은 고생 끝에 독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인간승리로 간주되었다.
80년대 이후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중산 층이 확대되자 해외박사도 대폭 늘어났고 국내 박사는 길거리 돌멩이만큼 흔해졌다.
해외 유명대학 박사학위로도 교수 취업이 불가능해지고 환경미화원 모집에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줄을 섰으며 지방 삼류 사립대학에는 박사학위를 따서 교수가 된 사람이 학교 건설 현장이나 운동장 청소에 동원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사 학위가 사회적 명예나 취업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도 못하는 상황에도 박사학위를 향한 열풍은 끝이 없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최근 주변을 보면 고위, 중견 공무원, 회사 중간 간부, 기자, 정치권 브로커, 건설 시행업자까지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자 마자 죄다 박사 과정에 등록해 다니고 있다. 골프 다음은 박사취득이 목표인 것이다.
박사 학위에 중산층 이상이 이렇게 몰두하는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와 과시적 이유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조기퇴직 시대를 맞아 퇴직 후 교수 등으로 제2의 인생을 이어가기 위한 용도이다. 그러나 30~40대 유명 외국대학 박사학위 소지자도 무한대기 하고 있는 상황에 국내 2~3곳 대학 학위 소지 50대 은퇴자를 위한 교수자리는 극소수 일 것이다.
이 케이스는 고위 정부관료, 사정기관 관계자, 고액 기부자 등 극소수 권력층 출신에 한정된 예일 것이다.
문대성의 예는 고위 관료출신은 아니지만 극소수 스포츠 스타에게 주어진 홍보 목적의 교수직을 꿰어 찬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3. 실제로 다수가 박사학위에 몰두하는 이유는 지위 과시, 허영, 명예욕 때문이 대부분이다.
『베블렌』이 언급한 자본주의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행태가 지식 분야의 박사학위 취득에서도 중산층, 상류층 하부 등에서 『명품 bag』 구매행태처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교수가 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박사학위에 몰두하는 것은 결국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이 상류층의 life style을 모방하여 소비하고 재테크 하는 것처럼, 학위 또한 신분상승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자기 만족의 도구가 되며 『知 테크』로 인식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런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돈, 노력이 들어간다.
돈과 시간은 어떻게 한다고 하더라도 노력의 결과물인 『논문』은 진정으로 학문적 욕구에서 하는 것이 아닌 마당에 쉽게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논문 대필이나 표절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이번 사건도 생긴 것이다.
4. 미국의 19세기 초ㆍ중반의 작가 스콧 피츠제랄드가 쓴 대표작 중에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이 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 내용은 1차 대전 후 물질적 성공, 과시적 소비, 사치와 퇴폐적 향락 등이 『인간의 가치』 척도가 되어가던 시대의 상류층의 자화상 즉 변질된 『american dream』을 냉소적으로 풍자한 소설이다.
1차 대전 직후인 1920년 황금만능 시대에서 당시에 유행하던 투기, 불법, 부패 등의 방법으로 갑작스레 부를 축적해 성공한 갯츠비가 주인공이다.
이 신흥부자 젊은이가 기성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 행동, 문화, 취향 등을 따라 잡으며 애쓰고 상류층 여인을 흠모하지만 결국 그들을 따라 잡지 못하고 파멸하는 스토리이다.
한마디로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다 가랑이 찢어진』 이야기인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미국의 1920년대는 대공황 직전의 투기, 마피아, 부패, 양극화, 사치가 극단적으로 활개치던 황금만능 시대였다.
나는 이 소설을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영화로도 나왔는데 나는 이 소설과 영화를 보며 개츠비가 그토록 따라 하려던 초 상류 계급의 우아함, 고상함, 품위, 에티켓, 취향 등이 과연 진정한 그럴만한 가치를 가진 실체였는지 의문을 느꼈다.
사람의 고상, 우아, 품위가 『부』 그리고 그 속에서 축적된 『문화자본』 때문이라고 느낀 개츠비의 한계는 오늘날 중산층 이상의 한국국민 대다수가 느끼고 있는 갈등과 한계이다.
강남에 거주하고 사교육을 시키고, 강남 친구를 사귀게 하는 그들만의 생활방식 하에 조기유학이나 아이비리그 유학을 보내고 학위를 따고 미국 유학 문화를 강남에서 재생산 시키고 그들끼리 결혼하며 신분의 세습과 재생산을 이어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 상류층의 지배적 문화풍토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아내의 자격』이란 드라마는 강남 도곡동을 소재로 사교육, 사치, 허영에 물든 그 사회의 이면을 노골적으로 풍자하여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1920년대 상류층의 투기 부패, 향락, 탐욕이 대공황을 불러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당시의 상류층이 미국 사회에 기여한 것은 투기 양극화와 향락과 과시적 소비에 대한 미국 사회의 몰락뿐이다.
이 후유증은 2차 대전으로 겨우 수습되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한국 강남 상류층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것은 투기, 탐욕, 양극화, 탈세 그리고 사교육, 유학, 학위 등 그들만의 life-style 뿐인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는 없는 이러한 천민 자본주의 최상층의 행태가 그 밑의 중산층에 남긴 퇴행적 따라하기 중 하나가 박사학위, 사교육, 조기 유학 등이다.
진정한 상류층은 자신의 삶이, 자신의 학위가, 사회에 기여되고 모범이 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5. 나는 진정으로 공부가 더 하고 싶어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 했지만 당시 석ㆍ박사 과정의 풍토에 환멸을 느껴 포기했다.
이후 시간이 남을 때 박사학위라도 받을까 생각도 했지만 모두가 하는 삶의 행태를 모방하는 것 같아 포기한 바 있다.
이번 문대성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판정과 탈당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그는 개츠비처럼 여러 번 행운이 깃든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끝없이 추구하다 몰락했다.
행운의 돌려차기 한방으로 수 많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에서도 『독보적 스타』가 된 그는 이후 IOC 선수위원에 당선되었다. 이것만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고 석-박사를 따고 동아대 교수까지 따 내었으며 결국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당선까지 되었다. 동아대 교수까지에 만족했다면 그는 그것만으로도 평생 부, 명예, 지위에서 남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검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정치에 발을 디뎠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평생 운동만 해온 그가 장시간 연구 노력이 필요한 박사학위를 스스로 취득하기는 무리였을지 모른다.
그는 수많은 그와 유사한 방식의 박사학위 소지자 중에 정치에 진출했기에 들통이 난 재수없는 인물일 뿐이다. 나는 그에게서 『개츠비』를 본다.
여기서 문제는 그의 박사학위를 심사하고 논문을 준 대학이나 그의 박사학위와 경력을 걸고 교수직을 준 대학은 뭘 했냐는 것이다.
박사학위 심의와 교수심의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단지 거수기에 불과했기에 모든 것이 무사통과가 된 것이다.
대학들은 그의 성공한 경력을 보고 학위와 교수직을 준 것이지 그의 논문을 보고 준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어려운 부산 새누리 공천 또한 그의 spec이 주어지게 한 것이지 다른 어떤 것도 고려나 검증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올림픽 금메달- IOC 선수위원 –석박사- 대학교수- 공천- 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spec이 또 다른 spec을 낳으며 그는 끝없이 신분이 상승하다 파멸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박사학위는 그 이후 주어진 각종 지위 획득을 위한 훌륭한 들러리 역할을 했다.
스포츠 영웅에게는 표절도 대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천민자본주의의 일상적 『知테크』 풍토가 부른 파멸이다.
6. 현재 한국의 박사학위 소지자는 총 17만 명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최근 급증해 2010년 이후 매년 1만 명 이상의 학위 소지자가 양산되고 있다.
2011년의 경우 국내외에서 13,000명 가량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5000만 국민에서 17만 명이 넘는 박사가 있고 매년 13,000명이 학위를 취득하는 이 나라에서, 돌려차기 영웅 문대성이 학위를 표절했다고 그에게만 돌을 던지는 사회풍토는 운동선수에 대한 또 다른 사회적 『디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5000명 중 1인이 매년 박사를 취득하는 나라에서 표절 대필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여야당 각기 이번 총선 당선자 중에 추가 표절 의혹자가 있다고 사퇴와 검증을 촉구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장식, 과시, 경력, 명예용으로 박사학위를 하는 정치인, 사업가, 공무원 중 제대로 공부해서 논문 쓰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고 매우 드물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경력에 과시용 스펙으로 한 줄을 넣기 위해 그들은 비싼 등록금, 시간, 로비 등을 지불하고 학위를 대가로 취득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펙을 겸임교수, 객원교수, 석좌교수, 초빙교수라는 이름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그러면서 스펙은 또 다른 스펙을 위한 도구가 되면서 지위와 신분을 장식해간다.
매년 1100명 정도의 외국박사 취득자에 비해 그 열 배인 11,000명이 넘는 매년 증가하는 국내 박사 취득자의 숫자가 『가르치는 일』과 무관한 spec 장식과 과시로서 학위취득을 여실히 보여준다.
7. 천민자본주의에서 외관만 상류층인 졸부의 생활양식이 마치 『문화자본』인 것처럼 포장된다.
그들의 교육, 유학, 학위, 라이프스타일, 사치, 투기, 향락, 부의 세습과정을 본뜨고 따라 하는 노력이 중산층 이상의 삶의 지배적 행태가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사학위 조차 『知테크』라는 명분하에 갖춰야 될 과시물 등의 하나가 되고 그 과정에서 돌려차기 영웅은 희생양이 되었다.
나는 매년 12,000명 가까이 배출되는, 진짜 박사가 아닌 자격증만 박사들 중에 표절에서 자유로운, 아니면 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가 될지 의문이다.
그들 중 죄 없는 이들만이 문대성에 돌을 던져야 한다.
만약 『베블렌』이 21세기 한국 천민자본주의와 『知테크』현상을 보았더라면 그의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이론은 더욱 정교해졌을 것이다.
그나저나 기왕 문대성이 표절이면 이 기회에 국회의원 중 박사학위 소지자 전원의 논문을 검증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