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들은 진짜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특수효과 수준이 눈부실 정도이지만, 가끔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윌리스 오브라이언과 함께 현대 영화 특수효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들을 보면,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에 의한 결과물이 얼마나 매혹적인가를 느껴볼 수 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레이가 참여한 작품들은 괴수 영화에서 재난, 그리고 신화물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여러 편의 신화물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리스 신화속의 영웅인 프로세우스의 모험담을 그린 <타이탄족의 최후>는 레이의 대표작으로 꼽을 영화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81년에 제작된 영화는 레이의 마법과도 같은 스톱-모션 솜씨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 레이는 은퇴를 했고, 50-60년대 B급 영화들의 활력소였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술 또한 극영화의 메인스트림이 되는 기회가 사라졌다.
<타이탄족의 최후>는 레이가 참여했던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늘 영화를 만든 감독보다 더 빛나는 이름이었고, 영화 역시 드라마의 매력보다는 그의 손길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수많은 몬스터 캐릭터들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이 점이 레이가 참여한 영화들의 단점이면서,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장점이 되기도 했다. 대개의 경우 책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데 반해, 영화에서는 그 이야기가 재미로 연결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거대 문어를 다룬 <그것은 바다로부터 왔다>와 함께 <타이탄족의 최후>는 재미없는 드라마로 쌍벽을 이룬다.
그렇다고 섣부른 실망은 이르다. 머리카락이 뱀으로 되어 있고 눈이 마주치면 돌이 되어 버린다는 메두사, 거대한 전갈 스콜피언스, 두 개의 머리를 지닌 개 디오스킬로스, 하늘을 날 수 있는 말 페가수스, 바다 괴물인 크라켄과 같은 캐릭터들은 밋밋한 드라마의 약점을 충분히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투박스럽긴 해도,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때때로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지곤 한다. 결국 <타이탄족의 멸망>은 레이가 만든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 순간만, 신화물다운 매력을 한껏 쏟아내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치고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늘 그래왔듯 그가 만든 캐릭터가 심심한 예는 한 번도 없었다.
DVD 타이틀의 화질과 음향은 기존에 발매된 레이 해리하우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색채감과 선명도가 떨어진다. 때문에 <신밧드 3부작>과 같은 퀄리티는 기대 않는 것이 좋겠다. 음향 역시 명료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귀에 익은 스코어는 듣기 좋다. 부록은 해리하우젠과 출연 배우들의 간다한 필모그래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몬스터에 관한 부가 영상이 주목할 만 하다. 레이는 이 코너를 통해 판타지 영화에 대한 설명과 특수효과들, 그리고 간략한 몬스터들의 정보에 대해서 들려준다.
해리하우젠 인터뷰
제작과정 소개 글 김종철(익스트림무비 편집장) 200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