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기까지 임보
뜸부기가 북을 치고 있었다
제 몸보다 큰 북을 어깨에 메고
느릅나무 언덕 위에 올라앉아
들판을 울리고 있었다
흐르는 북소리에 서천 하늘이
수박 속처럼 벌겋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청개구리가
호박넝쿨에 매달려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던
청개구리가 펄쩍 뛰어내리더니
두 손으로 입을 쥐어짜면서
나발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위틈에서 귀를 쫑그리고 있던 귀뚜라미도
방울을 흔들며 뛰쳐나오고
명아주 잎새에 코를 박고 잠자던 여치도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해금을 뜯었다
왕벌들은 머루넝쿨 주위를 빙빙 돌면서
젓대를 불어대고
참새들도 지지배배 달려와서
가죽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혼성합창을 시작했다
달팽이가 뿔을 흔들면서 느릿느릿 걸어나와
불평을 했다
지휘를 해야겠는데 악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러자 누군가
동쪽 하늘 위에 둥근 등을 하나 밀어 올렸다
밝은 보름달이었다.
*임보 시집<자연학교>(고요아침,2004)
첫댓글 아름다운 목소리에 실리니 졸시가 그래도 괜찮아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수선화님의 영상이 낭송을 우러르 셨습니다.
오래전 영상이지만 다시 듣고 싶어 올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