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世. 藝文應敎公 承源
완담지
2006/07/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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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世. 藝文應敎公 承源
구보와 가첩에 모두 고려조에 문과하여 예문응교 知制誥라 했고 처음 이름 毗를 승원으로 고쳤으며 생졸과 사관년대는 미상이고 용궁 팔향조로서 묘가 용궁현 위봉촌 酉坐卯向原(유좌묘향원) 곧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 위봉산에 있고 배위의 성씨는 전함이 없으나 함장이 분명하므로 매년 10월16일의 歲亭에 雙酌을 올린다. 완담사적에 이르되 공이 고려말에 정계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안동의 구담리로 와서 살면서 호적을 안동으로 하기 비롯했다고 고로들이 일러오고 있으며 안동부에 예부터 있던 고려조의 戶籍을 石門公 榮邦(영방)과 鶴洞公 維藩(유번) 도 보았다고 했다.
백관지에서 예문관은 制撰 과 詞命을 맡아보던 관청인데 태조는 태봉의 제도를 이어서 원봉성이라 하다가 학사원으로 고치고 현종이 한림원이라 개칭했으며 1275(충렬1)년에 문한서로 1298년에 사림원으로 1308년에 예문춘추관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1362년(공민11)년 비로소 예문관으로 개칭되며 1389(공양1)년 다시 예문춘추관이 되어 조선조로 이어지며 응교는 거기 딸린 정오품관이고 지제호는 조서,교서등을 지어 바치던 일을 맡은 겸관인데 예문관이나 실문각의 관원이 겸직하면 내지제호라 하고 여타 관청의 관원이 겸직하면 외지제호라 하였고 오십세이만의 문관이 지제호를 거치지 아니하면 예문관으로 하여금 출제케하여 매월 시 삼편과 부 1편을 지어 바치도록 하다가 후기에는 지제호를 시원으로 삼아 선비들의 우열을 가리는 시부를 짓게 하는 제도가 생겼다.
배위의 성씨는 상고할 수 없으나 배위의 묘는 자손 鄭任이 계봉묘하에 세거하고 분명히 합장했다고 대대로 이어 전해 오지만 1579년(만력7 선조12 기묘)년에 남봉상공 芝衍(지연)이 경상관제사로 와서 처음 墓碣을 세울때 부인이 부장된 사실을 말하지 아니했고 改碣 할 때도 예 대로 썻다.
일자를 두었다.
子 諧
墓誌
할아버님의 성은 정씨이고 이름은 비를 고쳐서 승원이며 본관은 동래이고 호장은 지원의 구대손이시다.
호장이 문도를 낳으시니 역시 호장이며 묘가 동래의 화지산에 있고 목을 낳으시니 고려 좌사부이며 아드님 택은 문하검의찬성사이며 그 아드님 자가는 전옥금이며 그 아드님 필은 문과하여 첨사이며 그 아드님 춘로는 주박동정이며 그 아드님 숭은 검교태자첨사이며 그 아드님 지형은 자담사부사인데 이 어른이 아버님 이시다. 할아버님의 묘가 경상도 용궁현 계봉촌 정동향(酉坐卯向)에 있으나 언제 과거하고 벼슬 했는지와 태어나시고 돌아가신 때도 모두 상고할 수 없고 배위 역시 어느 성씨이며 또 어디 묻히신지도 고증할 수 없고 다만 묘표에 “예문응교동래정승원지묘”라 쓰고 처음 이름은 비인데 십대손 지금의 영의정 太和가 일찍 경상도 관찰사일 때 묘갈이 허물어진 것을 마음아파하면서 돌을 다듬어 새로 세우려 하다가 임기가 차서 갈려가고 외십대손으로 의성현령인 안응창이 이어서 이 일을 이루어 순치십사년정유(1657)11월에 세운다“고 했다. 11대손 載崙이 말미를 받아 여기 와서 성묘를 하고 인하여 지석을 묘소의 바른쪽에 묻는다. 할아버님의 내외자손이 매우 번창해서 과거하고 벼슬한 이도 또한 많으므로 파가 다른 이는 쓰지 아니하고 나의 소자출만 자세하게 쓰는 것은 오직 수도 헤아려 기록할 수 없을만큼 많을 뿐만 아니라 지석을 마련하여 묻는 이가 재륜이므로 소명윤의 족보 만드는 법을 본떳을 따름이다. 할아버님의 아드님 判司僕寺事 諧(해)와 배위 용궁 전씨의 묘는 용궁 고현산에 있고 비의 아드님 귀령은 세종 때 결성현감인데 조선조의 어진 관리로 칭송되고 묘는 공궁 마산리에 있고 배위 남산박씨는 묘가 같은 고을 구담리에 있다. 귀령의 셋째 아드님 直提學 賜(사)와 배위 연안이씨의 묘는 용궁현 동면 지보리에 있으며 사의 셋째아드님의 右參贊 蘭宗(난종)이며 난종의 둘째 아드님이 영의정 문익공 光弼이며 광필의 넷째아드님이 강화부사 福謙이며 복겸의 맏아드님이 좌의정 惟吉이며 유길의 아드님이 좌의정 昌衍이며 창연의 맏아드님이 형조판서 廣成이며 광성의 맏아드님은 영의정 익헌공 太和이며 次子는 좌의정 致和(치화)이다. 재륜은 태화의 다섯째아들로 치화의 양자가 되어 효종대왕의 다섯째 왕녀 淑靜公主에게 장가들어 東平尉에 封爵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