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鄭知容)1 1783(정조 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태화(太和)의 6대손으로, 동우(東祐)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경승(李敬勝)의 딸이다. 생원으로서 1813년(순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17년 한권(翰圈)에서 3점을 얻었으나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낙방하고, 다시 2년 뒤에 한권에서 3점을 얻고 이듬해 한림소시에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합격하여 검열이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1824년 겸춘추로 있으면서 사관을 선발하는 한림회권에서 상사와의 충돌로 인하여 중화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홍문록에 올랐으며, 1827년 정자를 거쳐 수찬이 되어 이조원(李肇源)과 함께 역모를 하였다는 혐의로 김기후(金基厚)의 처벌을 상소하였다. 이해에 진전(眞殿) 작헌례(酌獻禮)때 대축(大祝)으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간으로 발탁되었고,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다시 대사간을 지낸 뒤, 이듬해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문장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