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기가 고독을 해결하는 것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인가 「혼자 사는 기술」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최고라는 식의 편협한 이분법을 강요하지 않아서 좋다. 이 책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을 지키며 혹은 타인을 침해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관심이 잡혀 있고 ‘혼자’라고 하는 뚜렷한 의식이 나타나있다. ‘혼자’라고 하는 것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필수적인 사회적 조건이나 배경이며, 무엇보다 우선에 놓고 자각하고 의식화되어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이 강요인가, 선택인가의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나든 주변에 독신자들이 넘쳐나고 공동체 내에서도 분명한 개성에 대한 가치와 권리에의 요구가 대두되는 현상을 볼 때 ‘혼자’라고 하는 현상은 막연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되돌리고 싶다고 해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각자 ‘혼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생각은 무슨 특별난 게 아닌 것 같다. 어린아이가 흔히 ‘나 혼자 할거야’라고 부모에게 말하듯이 우리 모두는 그런 과정을 이미 거쳐왔다. 그런데 어른들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실제로 세상에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기도 하다. 그래서 도움을 받고 부모에게 의지하듯 타인에게 의지한 것이 아닌가? 지금 와서 새삼 ‘혼자’를 강조하는 것은 재벌 2세가 자립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미덥지 못할 주장이 아닌가?
「혼자 사는 기술」의 저자 카타리나 침머는 혼자서 극한을 넘나드는 운동선수들을 예로 들며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예찬한다. 영화 ‘지 아이 제인’에 나오는 교관은 D. H 로렌스를 인용하며 ‘얼어서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새조차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타인의 동정이나 도움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혼자만의 세계’가 「혼자 사는 기술」에 나타난다. 너무 빳빳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때로는 고독도 감미롭다는 식의 서술도 단순한 미화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고독이 창조적인 시간이 될 수 있고, 때로는 필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혼자이기 때문에 창조적인 것도 아니고 혼자이기 때문에 고독한 것도 아니다. 과연 고독에 대한 심리치료가 혼자 살아가기의 해법일까. 혼자 살아간다, 자립한다, 자주적으로 산다는 것이 고독에 대한 심리치료로 풀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린아이일 때 ‘나 혼자 할거야’라고 말하지만,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이 제시되고 더구나 학교에 다니면서 혼자 보다는 ‘함께 한다’는 것이 의무가 되고 그것이 교육된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혼자 한다는 것은 점점 더 두려움이 되어가고야 만다. 혼자라는 것은 고난을 뜻하며 ‘나’보다는 ‘우리’를 써야 안심이 되고 점점 더 타인에 의지하는 것-공동체에 숨어버리는 것-이 더 편하게 된다. 공동체는 혼자 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제재를 가하고 함께 하는 것에 상을 준다.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힘을 보태는 경쟁을 시키고 힘을 더 많이 실으면 칭찬하고, 힘을 적게 실은 자는 처벌한다.
이러한 경쟁에서는 모두가 고독하다. 일등도 고독하고(상을 통해 보상받기는 하지만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꼴등도 고독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원래 고독하다고 소리치고 고독을 받아들여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혼자 살아가기가 그저 경쟁의 악순환을 향해 질주하는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진짜 혼자 살아가기가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에 종속되어 있는 개별적 인간들의 파편화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