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숨의 선물- 가족
첫 브리딩 후 1년 9개월의 트숨의 과정 그리고 지금 내 삶은 180도 뒤집어졌다. 나와 내 주변은 그때와 변함없이 똑같은데, 변하건 오직 나, 타인, 세상에 대한 관점일 뿐인데 말이다. 트숨이 안내한 무의식의 지혜, 치유 지성은 나-타인-세상 속에서 ‘관계 맺는 나’를 중심으로 한 땀 한 땀,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내가 보아야 할 것들을 안내했다. 긴 시간 짙은 안갯속에 검은색으로 채색됐던 나 자신, 사람들, 날 둘러싼 공간이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다.
트숨의 과정은 참 신기하다. 이 과정은 정확하고 빈틈이 없는 것 같다. ‘이대로 끝이 났구나!’ 싶으면 다음 차례로 기다렸다는 듯이 날 안내했다. 내 아픈 손가락인 아빠를 예로 들면 1년 9개월 동안 아빠는 ‘내 아빠’에서 나를 뺀 ‘아빠’로, 그런 아빠에서 다시 ‘아빠’를 뺀 ‘존재로서의 그’로, 그리고 깊은 그림자를 지닌 ‘사람으로서의 그’로. 나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로 긴 시간 삶 속에서 채색되어 있던 내가 생각하던 ‘칙칙한 나’에서, 그냥 ‘나’로, 그리고 ‘존재로서의 나’로 그러다 다시 요즘 그림자를 지닌 ‘사람으로서의 나’로. 주어만 바뀌어졌을뿐인데 눈꺼풀을 벗겨낸 이유만으로 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고통이 사랑이다.’라는 투박한 책속의 말들을, ‘그림자와 빛이 같다.’는 어렴풋이 저항해온 말들을 난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조금 빠져나와 내 바로 옆을 보니, 언제나 머물러있던 사랑이 옆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려주었기에. 고통을 통해 사랑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더 이상 날 아프지 않게, 자유롭게, 사랑스럽게 하기에. 칙칙한 과거 어둠의 시간을 고통이 아니라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있기에 긍정할 수밖에 없다.
아빠를 예로 들면 긴 시간 동안 내게 그는 알코올중독자, ‘죽어버리겠다!’는 말로 위협을 주는, 언제 어떻게 야수가 될지 모르는 우리에게 상처만 주는 폭도였다. 트숨 초반 그런 아빠를 어린 시절의 딸로서 만나며 그를 깊이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던 마음을 만났었다. 트숨에서 “사과해”를 뱉으며 절규하고 나니, 이상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거밖에 한 게 없는 아기인 나를 향해 그만의 방식으로 바로 옆에서 내게 베풀었던 사랑의 장면들을 기억 속에서 펼쳐 보여주었다. 그건 생각보다 많았다. 내 그림 숙제를 도와주던 것, 오토바이 뒤에 태워 동네 구경을 시켜주던 것,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던 것, 숲속에서 캠핑 하던 것들. 참 희한할 일이다.
그래서 이젠 좀 괜찮아지려 하니 몇 개월이 지나, 트숨 장면에서 우리 아빠는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떠올랐다. 순수하고 해맑은 소년으로. 이어진 장면에서는 아빠를 아빠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그가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겪어온 삶의 과정들을 보여주었다. 내 수치심의 깊은 원인이었던 아빠의 일과 그의 주변 사람들. 오랜 시간 천박하다며 부끄러워했던 아빠의 일들이 한 인간으로서 그가 살아가기 위한 수많은 일이었음을 이해시켰고, 초등학교 때 그 자신의 아빠를 여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영화를 보면 제일 먼저 우는 가슴을 품은 그가, 지금의 내가 여기에 있기까지 날 살린 우리 집의 중심이었음을. 지금껏 줄곧 받기만 하면서 오랜 시간 그를 수치스럽게 여겼던 마음에 철철 날 울리며 아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선물처럼 있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지 사회가 규정한 틀과 규범 속에 그를 깔아뭉겠는지 그러며 이런 아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수치스러워하던 나와 그에게 미안해졌다.
내겐 엄마도 이와 마찬가지로 유사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는 ‘여성성’이라는 테마와 함께 겹쳐지며 흥미롭게 펼쳐진다. 내 성기에서 꽃이 피는 장면, 성기에 숨어있던 검붉은 거미들이 세상을 향해 퍼지는 장면, 큰 젖가슴으로부터 우유를 받아먹던 여러 장면들을 시작으로, 먼저 삶 속에서 억압해둔 내 안의 여성으로서의 욕구들을 만나게 했다. 그러고 나니 엄마를 만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내게 엄마는 우리 집을 일으키는 여전사였고 우리 집의 빛이었는데. 그런 엄마를 오랫동안 미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랐다.
처음엔 여자아이로서 아빠에 대해 갖게 되는 이성적인 감정을 만나게 됐고 그럼으로부터 엄마로부터 '아빠를 빼앗긴 것'에 대한 엄마에 대한 깊은 미움의 감정들을 만나게 된 순간이 있었다. 내 욕구를 인정하고 나니 이를 시작으로 여성으로서 갖게 되는 미와 아름다움의 권리들을 찾아가는 것 같았고 이와 동시에 존재로서의 엄마를 만나기 시작했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소녀, 여인, 엄마, 끝엔 존재로서 마주하며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조금씩 분리가 되고 있다. 여전사인 '내 엄마'에서 사람으로서의 연약함을 지닌 그녀 자신으로. 엄마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죽는 것과도 같이 느껴졌다. 트숨 속 '나의 엄마'와 이별하는 지난 장면에서 '가지마..-' 애원하듯 매달렸고 내 엄마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나니 이와 동시에 선물처럼 다가왔던 것은 한 존재로서의 그녀가, 나와 같이 인간으로서 연약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단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삶 속에서 변함없이 베풀었던 신성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고. 많이 울게 된 순간이 더러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신의 사랑이 있었구나-’라면서.
트숨은 이런 식으로 참 밀당이 심하다! 여성성을 만나는 과정에서 엄마에 이어 할머니도 트숨을 하며 알았다. 초등학교 때까지 내 주요 양육자는 친할머니였다는 것을. 난 기억을 삭제할 정도로 할머니를 깊게 미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우중충한 우리 집안에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 보았기에.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트숨 장면에서 마고신으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이 장면은 ‘내 미운 할머니’에서 '나'를 떨구고 존재로서의 할머니를 만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할머니의 역사를 곱씹어 보며 인간의 삶에서 할머니를 보고 난 다시 울었다. 일찍이 남편과 큰아들을 여읜 한 삶. 그렇게 또 됐다 싶었지만 트숨은 또 집요하게! 할머니가 내게 주었던 사랑은 인정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콕 다시 집어내, 할머니가 내게 베푼 사랑들까지 찾게 하고 인정하게 하고 나서야 난 할머니의 사랑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아픈 사람의 손엔 사랑이 더 얹어져 더 따듯하다는 사실을 난 알았고 내 어린 시절 긴 시간 동안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받아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니 이 사랑이 다시 내 것이 되는 것까지. 트숨은 참 아름답다. 이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난 긴 시간 동안 아빠, 엄마, 할머니에게 그저 ‘나’라는 이유로 바로 옆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이것도 모르고 그들을 미워하던 내 오만함과 교만함에 고개를 숙였다.
트숨이 내게 주는 통찰은 ‘사랑’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어떤 역할, 어떤 대상인지에 대해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고 분화되는 사랑들을 배우고 통합해 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몰랐기에 혹은 경험적으로 소외시키고 넘어갈 수 없던 부분들에 대해 차근차근 만나고 다시 주워 담고 이로 인해 알아가는 무한 반복들의 과정들을 부딪히며 겪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난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그토록 밉던 나 자신이었는데 트숨에서 만났던 ‘난 아빠, 엄마의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한 문장이 내 뿌리를 세웠고 가족이 미워 저 먼 곳을 10년간 도망치며 살아왔던 곳이었는데 이곳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내 존재가 피어나는 우주의 기지였음을 가슴이 가리키니 난 다시 이 땅에서 손, 팔, 다리를 갖게 되었다.
내게 이런 삶이 왔다니! 오랜 시간을 고개를 숙이며 도망쳐왔는데 말이다. 나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너무 이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는지 모르겠다. :) 거울 속 내 모습이 보기 싫어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불을 끄고 들어가던 나였는데. 지금을 만들어준 지독한 과거의 시간들에 경배를 하게 되다니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 나의 지금을 긍정하고 있는 나를 통해 그리고 점점 편해지는 주위의 사람들을 보며 기적 같은 시간이 펼쳐진 지금에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 트숨의 과정에서 뒤통수를 맞아가며 또다시 발견할 사랑들에 벌써 즐겁다! 이 길을 만들어주신 몰라와 아리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Sol, 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