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계부를 가계사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하루의 지출내역을 순서대로 따라가다보면 그 날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일거수 일투족부터 어떤 비누를 선호하고 무슨 책을 읽는지에 이르기까지 기호를 파악할 수 있다. 한 가정의 살림살이가 총망라된 가계부는 작성자의 과거를 말해준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하루, 일주일, 한달의 수입과 지출내역이 모여 1년, 10년 후의 자산 규모가 결정된다.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도 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부자는 많이 버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제대로 부를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결국 가계 재무관리는 가계부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가계부 쓰기는 부자를 향한 첫걸음이다.
◆ 스트레스 없는 가계부 작성법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처음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들 중 상당수가 가계부를 제대로 기입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수입과 지출 내역의 통계가 확보되지 않아 구체적인 재무 상담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재테크를 말하기 전에 먼저 3개월간 가계부를 꾸준히 작성하고 지출 변화를 비교해보라"고 조언한다.
혹시 지출 내역을 100원, 10원 단위로 적어야 한다는 것때문에 귀찮아서 가계부를 멀리한다면 생각을 달리하자.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록하려고 하면 가계부 작성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가계부는 단지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정해진 수입 대비 지출 내용의 비율을 알고 향후 지출구조를 변화시켜 계획대로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 가계부의 목적이기 때문에 100원 단위대의 지출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무시해도 좋다.
중앙에셋 최성렬 팀장은 "해마다 야심만만하게 가계부 작성을 시작하지만 연말 즈음이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은 기록 자체에 치중하기 때문"이라며 "복잡한 형식이나 세세한 금액까지 정산하지 말고 일단은 항목별 수입과 지출 통계를 단순화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최팀장은 가계부 작성 초짜라면 지출 항목별로 봉투에 일정 금액을 넣어놓고 꺼내 쓴 후 봉투에 기록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가족생활비 항목의 봉투에 20만원을 넣어 놓고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한 돈은 거기서 꺼내어 쓰고 기록하는 방법이다. 이 때 500원이나 1000원 단위의 올림법 등은 원칙을 정해 기록하는 게 좋다.
◆ 온라인에선 손품을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재테크 사이트나 은행 홈페이지에서 무료 가계부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어 가계부 작성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 집집마다 5-6개에 이르는 은행통장과 결제일이 제각각인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관리하는 게 쉽지는 않다. 전자가계부는 이런 수고를 덜어준다.
▲인터넷 가계부 샘플. 지출항목별 분류항이 세분화돼 있고 주간 및 월간 통계를 얻기가 수월하다. 월별 통계가 자동으로 계산되고목표예산 대비 실행수준을 점검할 수 있다.
주부 이혜영씨는(37)는 주거래은행 홈페이지에 각종 계좌번호와 신용카드 번호를 동록시켜 실시간 카드거래 내역을 체크하고 있다. 은행의 가계부 프로그램은 체크카드 사용대금 등 등록된 계좌에서 입출금되는 사항이 날짜별로 자동 입력되고 마이너스 통장이나 대출이 있을 때는 대출금, 이자납입 내용도 정리된다. 여기에 주식연계계좌 잔고 변동까지 기록돼 투자 수익률을 따로 조회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으로 가계부를 대신하고 있다.
이한나씨(30)는 K은행 가계부 프로그램과 재테크 포털의 가계부를 병행하고 있다. 은행 가계부는 주 계좌를 통해 현금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포털의 가계부는 은행으로 입금되지 않고 현금으로 얻는 수입이나 지출까지 기록할 수 있어 세세한 지출과 수입 목록을 적는다. 가계부 쓰면서 스트레스 받느니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자던 남편도 이 씨의 세심한 가계부를 본 후로는 허리띠 졸라매기에 동참하고 있다.
▲달력과 다이어리 기능이 겸비돼 블로그를 업데이트 시키듯 가계부를 업데이트 시킬 수 있다.
지출 뿐 아니라 수입과 저축도 세분화해서 기입한다. 주수입은 급여, 상여, 사업수입으로, 부수입은 이자 및 기타소득, 전월 이월로 나눠 수입원 변동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가계부에 정리된 항목은 엑셀파일로 수입, 지출, 저축, 카드내역을 변환 저장해 월별 폴더를 만들고 연말에 전체 수입, 전체 지출, 전체 저축 등을 정리한다.
◆ 가계부 분석으로 지출 균형 맞추기
이처럼 가계부 작성으로 가계 데이터를 확보했다면 저축, 투자, 보험, 공과금, 아파트 관리비, 대출금 상환 등 매월 고정 지출항목과 변동되는 지출로 나누자. 그리고 지출항목의 중요도에 따라 고정 지출은 유지하면서 변동 지출항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식비 중에서도 식재료비와 외식비등은 구분해서 기록하고, 집집마다 요즘 골칫거리인 통신비도 핸드폰비, 인터넷비, 집전화비 따로 구분해놓으면 좋다.
쓰는 것에 익숙해졌다면 다음 단계는 결산이다. 매주, 매월, 매년 단위로 항목별로 집계해서 지출을 합계하고 변동사항을 체크해보자. 또 이를 모아두면 다음해 예산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기업 실적을 비교하듯 이번 달 가계부를 지난 달(전기), 지난해 같은 달(전년동기)과 비교하는 것이 좋다. 예산의 기준을 잡기가 어렵다면 비슷한 소득과 가족 구성원을 가진 가정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각자 가정마다 사이클을 고려해 지출항목이나 저축비율도 조정해나갈 수 있다. 예를 들면 2년 후 전세자금 증액 2000만원, 결혼, 자녀 입학, 은퇴 등 변동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장기,단기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가계부 작성 7가지 수칙
1) 모든 항목을 완벽하게 적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린다 당신은 회계사가 아니다. 기록이 목적이 아니라 기록 후의 평가가 목적이다.
2) 처음 3개월간 거르지 않고 쓰는 게 중요하다 일기가 매일 쓰는데 의의가 있는 것처럼 가계부도 마찬가지. 3개월간 꾸준히 가계부를 써 보면 지출 통계가 보인다
3) 고정지출과 변동 지출로 나눠라 일단 가계부를 작성했다면 한달간 지출을 고정지출과 변동지출로 나눠라. 추가로 줄일 수 있는 항목이 있는지 점검한다
4) 예산 초과 항목, 예산 초과 시기를 찾아라 절약의지가 약해지는 지출분야, 소비욕구가 극대화되는 시기를 포착한다. 대게 월급날짜를 낀 주에는 소비가 늘어난다.
5) 매월, 각 항목별로 지난달의 가계부, 지난해 같은 달의 가계부와 비교한다 기업 실적도 전기, 전년동기와 비교해애 평가가 가능하다. 가계부 역시 축적된 데이타가 있다면 지난달과, 지난해 같은 달의 자료를 활용하라
6) 비슷한 소득과 가족 구성원을 가진 가정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고한다 가계 자금계획의 기준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른 가정의 예를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상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7) 전자 가계부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전자 가계부는 종이 가계부보다 편리하고 체계적이다. 매일 블로그를 업데이트 시킨다는 생각으로 이용하면 재미를 붙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