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평생 간다고 한다. 우리가 가슴에 꼬옥 품고 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물놀이. 반딧불 잡기, 잠자리채 들고 들판을 휘젓고 다니기, 겨울이면 썰매타기,
팽이 돌리기, 연못에서 스케이트 타기... 생각만 해도 행복한 그 추억들...
우리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그냥 재미있는 놀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중에 어른이 된
지금도 할 수 있는게 무얼까? 연 날리기... 저 먼 하늘에 꿈날리기 아닐까?
설날이 다가오면 집안 어른들 갖가지 과자며 요리 장만하느라 부산을 떠는 중에도
아이들은 연만들기, 연줄 준비하느라 밤이 깊는 줄도 몰랐다. 드디어 동네의 내노라는
머스마들이 연날리기를 시작하면... 태극연, 가오리연... 우리의 연줄이 끊어질세라
얼마나 애를 태웠던가. 나는 또 그 연이 얼마나 날리고 싶었던가...
훗날 아주 멀리 가서 나는 그 소원을 이루었다. 태평양의 망망대해 수평선을
내려다보는 바닷가 절벽위에서... 어릴 적 연은 변덕많은 바람에 곧잘 툭 떨어져
이웃집 지붕에 걸려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지만 태평양 연안에서는 아무 걸릴데도
바람에 떨어질 일도 없다. 바닷가에 놀러 갈 때마다 나는 연을 날렸다.
꿈을 날리는 그 행복함, 바람을 손끝에 잡고 하늘을 날으는 그 짜릿함이라니!
지난 주에도 태평양 연안에 가서 연을 날렸다. 이번엔 포구의 물을 가두어두는
방파제에 가서 바닷물 한가운데 서서... 순식간에 조용하던 방파제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연을 놓치지 말아요! 아이가 말했다.
연 날리기에 바람이 딱이네요... 어른이 덧붙였다.
갑자기 내 모자가 날려 바닷물에 떨어졌다.
앗, 모자가 떨어졌다! 모두들 우루루 난간으로 몰려와서 내려다 보았다.
잠시 한눈 파는 새에 연도 바닷물에 떨어졌다.
연이 떨어졌어요! Kite in the water! 모두 외치기 시작했다.
모자부터 건져요.
아니, 연부터 건져야지요... 내가 천천히 연줄을 감기 시작하자
해초를 조심해요!
줄이 끊어지겠어요!
서로 손에 땀을 쥐고 난리였다. 드디어 조심조심 건져올렸다.
다행히 요새 연은 너무나 가늘고 가볍고도 튼튼하다.
연을 건졌어요!
연을 건졌대요! 소식이 중계되었다.
모자를... 모자가 가라앉기 시작해요!
모자는 그냥 포기하려 했는데 그 극성에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저만치 낚싯대를 들고 한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오고 있었다.
모자가... 되겠어요?
물론이죠! 그가 뛰어가서 모자 낚시질을 시작했다. 이윽고...
모자도 건졌어요!
모자를 건졌대요~
그 소식이 방파제 끝까지 되풀이 되었다.
와, 실력좋다!
모두 한마디씩 하고는 술렁이던 인파가 잠잠해졌다.
연이란 참 많은 사람들의 꿈 날리기인가...
높이 날던 연 하나가 조용한 방파제를 운동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모두 한패거리가 되어 함께 응원하며... 멋적어진 내가 슬쩍
사라지며 우리가 주고 받은 미소가 있었다. 즐거웠어요!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바다 안개가 자욱했다.
아, 안개구름속에 연을 띄워야지...!
차를 타고 절벽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경치좋고 인적없는 절벽가를 골라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어찌나 좋은지 연줄을 끝까지 다 풀고도
연은 혼자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오리 연이 보일듯 말듯...
지나가는 차들이 이따금 차를 멈추고 연을 쳐다보기도 하고 내게 말도 걸거나
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연아~ 꿈아~ 날아라~~ 멀리 더 멀리~~~
우린 모두의 중얼거림이 들리는듯했다. 어린 내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갑자기 안개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 연이 안개구름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황홀함... 연이 안보이도록 멀리 날리는게 내 꿈이었는데...
이윽고 해가 높이 떠 안개가 다 사라져 연을 내렸다.
연줄을 감다보니 손에 물이 흥건하다.
아니 무슨 물이?
바다 안개였다. 안개 구름이었다. 여름 바다에서 내손으로 감아낸 바다 안개... 안개 구름...
나는 또 평생 안고 살 추억 하나를 만든 것이었다... 추억은 늘 진행중이다...
7월 31일은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타계 1주년... 그는 어릴 적 보릿고개 시절 배가 고프면 종일 연 날리기를 했다고 한다.
"연은 나의 최초의 허기의 얼굴이었다 (수필 "허기진 연" 의 시작)". 이제 선생은 아픔도 허기도 없는 하늘 나라에서
행복한 어린이가 되어 이제는 꿈의 연 날리기를 하고 계시기를 빌며...
( 글, 영상 : jen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