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46보> - 중간고사를 포기하고
조선일보 문갑식 선임기자님께!
<빚내서 아내·아이를 미국 보낸 '기러기 아빠'의 허무한 결말>이란 인터넷 기사를 보는 순간, 또 한 명이 고독에 못 이겨 자살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읽는 중에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여보, 기사에 또 낚였다, 낚였어. 자살 뉴스가 아니야. 그냥 글이야 글···. 그런데 너무 멋져부러!"
"기러기 아빠가 또 자살했다는 뉴스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니야. 인간의 욕심에 관한 것이야."
"그래? 방금 중국어 공부 하는 내용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것과 비슷한 거야?"
"무슨 문장?"
내용은 이렇습니다.
중국의 고사 중 춘추시대 월(越)나라 인물 '범여(范蠡)'에 관한 내용인데, 범여는 중국에서 최초의 상인으로서 재물의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만큼 돈을 잘 번다는 것이겠지요. 보통사람들에겐 '토사구팽(兔死狗烹)'이란 유명한 말을 남긴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제(齐)나라의 임금이 그분의 능력을 인정해서 재상으로 모시고자 하니, ‘너무 많이 가지면 분명 좋은 일이 못 된다(得到太多不一定是件好事)’라고 하면서 자기 재산을 이웃에 나누어 주고 그곳을 떠나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한 마디 보탰죠.
"와, 당신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문장을 좋아할까? 그럼, 당신은 '진정한 포기'란 무엇인가도 이해하겠네?"
"아, 그것? 포기하면(버리면) 오히려 더 많은 걸 얻게 된다는 문제?"
집사람도 이 문제를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 시간 수업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자, 게시판으로 달려가 출결상황을 확인하고 있는 학생들.)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어떤 청년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곧 돌아가실 것 같은 노인이고, 또 한 사람은 본인의 목숨을 구해 준 의사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사랑에 빠지고 마는 아주 예쁜 아가씨였습니다.
근데, 차에는 단 한 사람밖에 태울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이 문제의 정답은 자동차 열쇠를 의사한테 줘서 노인을 모시고 병원으로 가게 하고, 본인은 그 아가씨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자동차)을 버리면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원리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였지요.
그래서 제가 집사람한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도사야, 도사! 하산만 하면 되겠어. 우리도 이제 진정 소중한 것을 포기하며 살아보자. 그렇게 하면 우리 이웃들이 참으로 행복해질 거야."
"오케이,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기자가 누구야? 우리한테 느낌이 팍 와 닿는 글을 쓰고 있잖아."
그래서 글쓴이를 확인해 보니 '기자'라는 말 앞에 '선임'이란 접두어가 붙은 조선일보의 '문갑식 선임기자'님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기자 앞에 선임이란 말이 붙어 있으니 이 정도로 감동적인 글을 쓰겠지. 정말 대단한 필력이란 말이야."
제가 칭찬 좀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바로 또 집사람이 칭찬을 해 버리고 맙니다.
너무나 직설적이고, 전투적이고, 자극적인 글이 넘치는 요즘, 차분하게 여러 사례들을 들어 사람을 감동시키는 문 선임기자님의 글에 감사드립니다.
처음엔 제목에 낚여서 읽게 되었지만 느낌 좋은 글이었습니다.
집사람이 옆에서 자꾸 '<기자의 글 더 보기>'가 있네!' 라며 더 읽어 보라고 부추깁니다.
히히.
선임기자님 파이팅!
아, 참. 이 글은 제가 선임기자님의 글을 읽으며 자꾸 칭찬을 하니까, 그렇게 좋은 글이면 댓글이라도 달라고 해서 쓰는 글입니다.
2011년 5월 3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올림.
(제일 밑에 제 이름이 있어요. 결근 한 번 안하고 모범학생이라는 증거가...)
위 줄거리는 지난봄에 제가 조선일보 문 선임기자님께 보낸 편지를 여기에 다시 옮겨 본 것이다.
물론 이 글의 주제가 포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목요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같은 반 학생인 박 여사한테서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김 선생님, 지금 뭐 하세요? 급히 의논할 게 있는데 방문해도 될까요?”
“땅란(当然)! 되지요. 식사 다 하셨으면 지금이라도 바로 오세요.”
옆에 있던 벗씨가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오전 내내 같이 수업을 받아 놓고 또 무슨 할 이야기 있어 이렇게 전화를 주느냐는 의미였으리라.
나도 무척이나 궁금해 하던 차에 박 여사님과 그의 언니가 부리나케 우리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맞이했다.
손에는 수박만 한 유자가 한 덩어리 들려 있었다.
“설마 우리한테 유자 사 주려고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것은 아니겠지요?”
“땅란 아니지요.”
박 여사님은 몰아쉰 숨을 천천히 진정시키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김 선생님, 우리 중간고사 포기하고 놀러나 가요. 진시왕의 병마용이 있는 서안(西安)과 소림사가 있는 낙양(洛阳)으로요. 어차피 우리는 수료증 같은 것 필요 없잖아요?”
갑자기 듣게 된 제안이지만 얼마나 반가운지 모를 지경이었다.
지난 한 주간 마음고생 많이 했다.
이 나이에 중간고사 공부한다고 수업이 끝난 오후와 밤에 낑낑대며 눈이 빠지도록 책을 보곤 했다.
나도 나지만 누구보다도 더 힘들어 하는 사람은 벗씨였다.
벗씨는 이곳에 온 지 벌써 3주가 다 되어 갔다.
그런데 오전에는 기숙사 직원들 눈치 보며 밖으로 나돌아야 했고, 오후와 밤에는 내가 공부한다고 방안에만 죽치고 앉아 있으니 벗씨도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나마 시험공부라도 하고 있어 대행이지만, 학교에 등록하지 못한 벗씨는 얼마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겠는가?
하물며 시험이 있는 한 주를 또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로 정답이 나와 있었다.
“오,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를?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도 단번에 없애 버리고, 벗씨의 행복도 찾아주고, 또한 자유롭게 여행하는 재미도 찾고···. 하하하!”
(중간고사 기간에 시험 안 보고 여행 떠나면 기분이 어떨까? 침대칸 기타표.)
나는 여기에서 공부하면서 또 하나의 고정된 틀을 만들고 있었다.
이왕 공부하러 온 것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틀···.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에는 공부만 해야 하는 줄 알고 책상머리를 떠나본 적이 없고, 또한 회사에 다닐 때에도 한 번이라도 지각하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줄 알고 있었다.
그 후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절대로 융통성 없이 살지는 않겠다고 얼마나 많은 다짐을 해 왔던가?
그런데 여기 와서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나의 딱딱한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 수업시간 때였다.
담임선생님께서 한 장의 종이를 가지고 오더니 게시판에 떡하니 붙이고 있었다.
모두들 헐레벌떡 달려가 확인한 결과 그간의 출결현황이란 걸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26명의 우리 반 학생 중 나를 포함한 5명의 학생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성실히 수업에 참석했다는 결과가 나와 있었다.
게다가 선생님은 또 우리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칭찬을 곁들어 박수까지 보내고 있었다.
이렇듯 나도 모르게 어느새 모범학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중간고사 안 보게 되면 김 선생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이라도 남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결석도 한 번 안 하셨잖아요?”
“메이관씨(没关系, 상관없어요), 메이관씨! 포기하면 얼마나 많은 걸 얻게 되는데요. 지금 당장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왜 진즉에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포기의 미덕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벗씨가 좋으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
“그 나이에 회사 사표 쓰고 중국어 공부하러 온 것 말고 더 큰 포기가 또 있나 보지요?”
우리는 모두 합장대소하고 말았다.
학생이 시험 안 보는 것 말고 더 즐거운 일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자, 중간고사는 포기하고, 서안, 낙양, 그리고 달마대사가 있는 소림사로 한 번 떠나보자! 푸하하!
2011년 11월 7일
베이징에서 멋진욱 서
<참고>
멋진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87-0149-2322
한국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후 86-187-0149-2322-# 하면 됩니다.
제 한국 로밍폰 011-530-1479는 고장이 나서 연결이 안 됩니다. 답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