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앞에서
정순오
쉰을 넘긴 동기 모임에 얼룩말이 걸어왔다
신종유행풍 슈트를 걸친 친구였다
모두들 '예쁜 옷 사 입었네.'라고 하자
'이거, 이만 구 천 원 짜리' 라고 답하는 친구
그의 말 속엔 자신이 팔등신이고
너희들은 모두 등신이라는 우월이 숨겨져 있다
오종종한 석불 같은 칠등신
썰린 돔베기 같은 육등신
오이지 같은 육점오등신 둘러앉아
각각의 앞에 놓인 소주잔엔
모자란 만치 그득그득 소주로 채운다
난데없이 벌떡 일어난 친구
나도 팔등신이라며 제의하는 건배
그러자 술렁거리는 수평의 탁자
나는 손목 등신, 나는 허리 등신, 나는 어깨 등신
심지어는 발등신 까지
칠점오등신에 무릎등신인 상다리를 흔든다
이만 구천 원짜리 슈트가
오만 구천 원으로 정정되는 순간
투명을 빙자한 잔 안의 소주는
출렁이지도 않고 재빨리 목구멍으로 넘어 간다
첫댓글 ㅎ 이만 구천원
오만 구천원으로
생기발랄
음유 詩
잼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