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불면 외 3편
권분자
새하얀 뱀이
기대와 환상을 목조르기 하는
게임에 빠져있다
풀어놓는 트라우마에는
첫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밤을 하얗게 지새웠거나
여러 부류의 조문객을 만났거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밤의 이야기로
유려해진 등이 등을 바라보며
환희와 좌절의 거리에서
이국의 이상한 전통춤이
왠지 익숙한
절대 돌아서서 마주 보지 않는
그러나 춤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늘 그 자리
자기愛
아플 때
집으로 찾아와주겠다고 말해준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네가
왜 이토록
대하기 어려울까?
난 지금 아픈데
내 안에 네가 있다면서
숱한 사람과 멀어졌듯
우리가 멀어져 있어도
마땅한 관계였다면
나는 왜 네가 이렇게
자주 아프게
떠오를까?
박물관106
103동은 오래된 박물관
기억 점차 잃어가는 노인을 더는 가둘 수 없다
104동의 나는 큰맘 먹고
103동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그곳은 가끔 문을 닫는다
내가 꾸민 허구의 이야기가 행복의 척도여서
회상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는 날에도
과거 지운 노인은 생기발랄했다
104동을 유지해 주는 힘은 103동인 거지
어느 날 훌쩍 곁을 떠난 103동 노인은 106동쯤인
다른 세상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는
뜻밖의 안부를 105동은 철마다 꽃으로 보내온다
활짝 피었다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벚꽃, 라일락, 장미, 쑷부쟁이, 눈꽃
낱장으로 읽는 한 권의 소설책이
만나질 106동을
상상이 자극한다
청동거울
개꿈을 꾸었는데
깨어보니 개가 없다
상상의 끄나풀이 되지 못한
몇 번이나 반복해서
꿈속에서 들여다본 너의 얼굴이
세월에 묻혀
기억조차 없는 얼굴이
녹물빛 저녁 어스름에 둘러싸여
반지름 15센티미터의
난간을 걷다가
주름진 얼음벽 장막 뒤로
임종하는 늙은
개처럼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