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주인공 이재명
<이재명과 윤석열>
고등학교 때 문학 교과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을 기억할 것이다. 그중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요즘 화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71년 8월 10일에 일어난 광주대단지 사건이기 때문이다. 광주대단지는 지금의 성남시이다.
오늘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을 만났다. 바로 이재명 후보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한 이재명 후보를 통해 소설 속의 권씨가 이재명 후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평생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유독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기억에 남았는데 그 주인공을 만나다니 기쁘다, 그리고 슬프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서술자인 ‘나’는 경기도 성남에 자리한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성남의 주택가에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월급만으로는 부족해 집안 살림에 보태 볼 생각으로 방 하나를 세놓게 되었는데 그 방에 세든 사람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권 씨의 가족이다. 아내와 두 명의 아이 그리고 아내의 뱃속에 든 아이까지 모두 네 명의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권 씨는 대학을 나와 한때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닥까지 떨어지고 만 불행한 사람이다. 집을 장만하려고 철거민 입주권을 구해 광주 대단지에 땅을 분양받았으나 그 땅에 자기 집을 지어 올리기는커녕, ‘광주대단지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특이한 버릇이 있는데 자신이 가진 여러 켤레의 구두를 아주 소중하게 여겨서 언제나 공 들여 닦아 신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권 씨의 아내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한 권 씨는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나’는 거절한다. “그렇다. 끼니조차 감당 못 하는 주제에 막벌이 아니면 어쩌다 간간이 얻어걸리는 출판사 싸구려 번역일 가지고 어느 해에 빚을 갚을 것인가. 책임이 따르는 동정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기왕 피할 바엔 저쪽에서 감히 두말을 못 하도록 야멸치게 굴 필요가 있었다.”라는 생각에 이끌려 권 씨의 절박한 처지를 돌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권 씨의 아내가 수술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집을 나갔던 권 씨는 그날 밤 칼을 들고 ‘나’의 방에 들어왔으나 ‘나’에게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자 “그 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권 씨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아홉 켤레의 구두를 발견한다.‘ -위키백과에서
이 소설은 1971년 8월 10일에 벌어진 ‘광주대단지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자존감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권씨의 아내 수술비를 몰래 대주는 집 주인 오씨, 그것도 모르고 강도로 변해 주인집에 들어간 권씨의 모습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권씨가 “나 이래봬도 대학 나온 사람이요.” 하고 말한 것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슬프다. 영화 <타짜>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하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변두리 인생으로 전락한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당대 사회가 지닌 현실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소설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이재명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13세까지 고향 안동에서 살다가 지금의 성남으로 이사를 와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공장을 다니며 주경야독을 했다. 그러다가 프레스기에 팔이 끼어 장애를 입었다. 그 기억이 오늘날 이재명 대선 후보를 만드는 데 정신적으로 기여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은 산업화 되면서 지방에서 살던 사람들이 서울 주변 혹은 부산, 마산, 울산 등지의 공단으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떠났는데, 이재명 후보의 가족도 그러했다.
주경야독을 해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재명은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을 가 만 23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편한 판, 검사의 길을 걷지 않고 변호사가 되었다. 당시 이재명 후보에게 충격을 준 것은 바로 1980년 5월에 일어난 5.18이었다. 당시 이재명은 5.18이 폭동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며 그 실상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재명의 운명이 달라졌다. 이재명이 판, 검사의 길을 걷지 않고 인권 변호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재명은 사법연수원 시절 강사로 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는 강의를 듣고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변호사를 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해 좌중을 웃겼다고 한다.
“왜 성남시 중고등학생에게 무료로 교복을 주었습니까?” 패널의 질문에 이재명 후보는 약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그때 학교도 못 가고 공장에 다니는데 멀리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지나갔는데, 교복이 그렇게 입고 싶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 슬픈 기억이 적어도 교복만큼은 정부가, 시가 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한 것이다.
“성남 의료원은 왜 건립했습니까?”
“가난해서 아이를 낳다가 죽는 사람들을 보다가 적어도 소중한 생명이 탄생하는 일만큼은 정부가, 시가 해야 한다는 마음에 그랬습니다.”
“청년 기본금은?”
“그때 청년들에게 기본금이 주어졌다면 공장에 다니면서 공부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주경야독하며 보낸 그 시절 때문에 청년들에게 기본금이라도 주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이재명 후보가 시행한 모든 정책은 자신의 삶이 반추된 것이고, 현장에서 느낀 서민들의 아픔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동질감이란 공감의 다른 표현이고, 공감이란 경험의 공유에서 나온 것이니 민중들은 이재명 후보의 삶과 실천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저 구호처럼 외치는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보다 뭔가 자신의 삶이 투영된 삶의 진실 앞에 사람들은 공감하게 되고 겸손해진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영상을 보고 인간 이재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 저게 바로 진실이구나", 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하여 민중들은 이재명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대리만족도 아울러 느끼는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 속에서 주경야독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한 스토리야 많지만, 뭔가 공적인 일을 해 그런 삶에 희망을 주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올챙이 시절을 잊고 좀 더 큰집에서 좀 더 큰 차를 몰고 다니며 허세를 부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재명은 달랐다. 기득권자들의 무수한 공격과 비난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온 저면에는 가난에 쓰러지는 이웃, 내 가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몸소 겪으며 산 이재명 후보가 국민을 배신할 리 없다. 그 믿음이 대구서문시장에, 울산중앙시장에, 마산어시장에 민심으로 투영된 것이다.
한때 이재명의 본심을 모르고 비판한 적도 있는 필자는 오늘부터 이재명 후보의 열렬한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동질감, 공감, 간철함, 그리고 진실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 주자.
슬픔이 깊은 바다는 어린 강을 껴안는다.
<아, 어머니...>
* coma(유영안: 작가, 서울의 소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