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범 시인이 제1 시집을 내고 제2 시집을 내기까지, 36년이라는 세월이 강처럼 흘렀다. 물론 거기에는 목회자로서의 수행 기간이 있었지만, 인생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이 작품 「해질녘 강가에 앉아」는 이번 시선집의 표제작이다. 많은 시 제목 중에 유독 이 작품으로 시선집 제목으로 삼은 데서 시인의 요즘 시적 태도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제1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참여시 위주의 창작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반추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물의 저쪽에는 민중, 참여, 저항이 도사리고 있다면, 강물의 이쪽에는 그리움,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 인생에 대한 어떤 신앙적 각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류재엽 (문학평론가)
김창범은 바람의 시인이다. 젊어서는 민중의 가슴에 바람의 불을 지피고, 오랜 침잠기에는 가슴속 신앙과 서정의 샘물을 길어올려 아수라의 감옥에 갇힌 탈북민들의 횃불을 태워 자유를 구가해온 행동의 시인이다. 노년기의 시인이 보여주는 각성과 명상은 온천지를 내 몸 삼아 껴안으며 저 바닥의 어둠, 얼음 속 추위를 데워내는 대광명이자 일진 청풍을 불러일으키는 본지풍광으로 여여하게 살자는 다짐이다. 가슴 속 저 바닥모를 깊이에서 힘차게 솟아올라 하늘을 뒤덮는 용오름의 바람이다. 197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소년시인이 역사의 질곡을 겪어오면서 반세기에 걸쳐 응축해낸 바람의 문법, 바람의 신앙 , 바람의 피로 직조한 서정시학의 본체, 미학적 상상력의 결정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