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사물이 얽히고 얽힌 시편
최도선 (시인)
배우식 시선집 『낙타』
시선사
시선집은 연만한 시인들이 오랜 기간 출간해온 시집들에서 대표되는 시를 선별하여 선집으로 묶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배우식 시인의 이번 시선집도 시조집에서 선별하여 4부로 편집해 총 76편을 담았다.
배우식 시인은 “내가 사물을 넘고 사물이 나를 넘는다”라고 시인의 말에 밝히고 있다. 시인들은 사물을 통해 내 감정을 빗대어 표현하거나 일반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내며 그것을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 기본바탕을 전제로 하기에 배 시인도 나와 사물이 얽히고설킨다 고 한 것 같다.
나보다 열 배는 더 오래 사는 어른 한 분
가지로 허공에다
무언가 쓰고 있다
저렇게
지우고 쓰는 걸
평생 동안 반복한다 /
아직도 서책 한 권 내지 않고 저리하는
저 분 앞에 가만 엎드려
한 문장 배우고 싶다
내 손은
저 분을 따라
한 자, 한 자씩 쓰고 쓴다
―「오래된 느티나무」 전문
한 편의 작품을 지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좋은 작품을 쏟아놓고 싶은 것이 작가들의 가장 큰 소망이기에 시인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도 사물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느티나무를 소재로 한 좋은 작품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이 나무를 소재로 쓰기는 쉽지 않을 일이건만 배 시인은 자기만의 시각으로 잘 건져 올렸다. <오래된> 느티나무이어야만 했다. 나의 시 세계가 그렇게 농익고 싶은 심정을 뚜벅뚜벅 배우며 가리란 의도를 빗대어 빚었다. 그런 갈망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 한 편을 더 소개한다.
몸에다 상상으로 투명한 창문 내고/ 안쪽엔 찻물 담긴 다완 하나 놓아둔다 // 달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어느 밤에 // 저 상상이 이루어져 안으로 들어온 달/다완 속 가만 앉아 누추한 삶 비추고 있다 // 비어서/비울 것도 없는 텅 빈 생이 고요하다 // 오로지 날갯짓하는 시어들만 빼곡하다/ 거기서 솟아오르며 피어나는 달맞이꽃 // 내 몸에/피어오르는 시 달빛 가득 안고 있다
―「달맞이꽃의 시」 전문
삶이 검박하더라도 그 삶에 시어들만 그득 차기를 바라는 순수한 절대 시인의 정서가 아름답다. 사물은 내가 되고 나는 한 사물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시편들로 잔잔히 독자들 가슴에 폭 안기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