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귀로 노래하는 봄
김윤하(시인)
최춘희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
천년의 시작
연두색의 표지가 시집 제목과 잘 어울리는 최춘희 시인의 시집을 만났다. ‘푸르른 것이 나는 좋다’(「슬픔의 질량은 우리 몸의 고유한 기록이다」)는 시인의 고백 같은 시편들이다.
시집 제목이 봄에 대한 것임을 알려주듯 4부로 나누어진 시편에는 봄에 관한, 꽃과 봄날 이야기가 많다. 그중 3부에 실린 한 편의 시를 한창 무르익은 창밖의 봄에 귀를 활짝 열고 읽어본다.
너를 찾아 사막의 어디든지 굴러간다 철사처럼 뒤틀어진 팔다리 몸통에 밀어 넣고 개미지옥 파묻혀 생의 경계 지워 버렸다 뜨거운 모래 세포에 저장된 너의 유전자, 타는 목마름 사나운 비를 부르고 죽은 심장 뛰게 만들지 운명적인 너와의 한순간 검붉은 화인火印으로 찍혀 버리지 너를 만나 벼락처럼 사랑을 나누는 신기루 좇아 백 년이 갔다 먹구름 몰려오고 곤두박질쳐 숨을 멈추면 바로 거기, 너 있는 천국이다
마른 가지 숨이 돌고 물웅덩이 뿌리내려 싱싱한 잎으로 살아나는 풀꽃
ㅡ「부활초」 전문
『현대시』로 등단해 30년이 넘는 시력에도 끊임없이 고통과 슬픔을 푸르게 승화시키는 시인은 푸르름이 사막 같은 극한의 건조한 환경에서 견뎌낸 값진 결과라는 걸 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부활초는 종교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양초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부활초는 뛰어난 생명력을 가진 양치식물을 말한다. 이 식물은 짙은 갈색으로 변해 완전히 마른 상태로 몇 년 동안을 생존할 수도 있단다. 사막의 모진 기후 변동 속에서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돌돌 말린 채 지내다가 수분을 만나면 스펀지처럼 빠르게 흡수하여 푸르게 되살아나는 식물이다. 생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식물이다.
화자에게 “개미지옥” 같은 일상에서의 목마름은 “운명적인” “한순간”을 좇는다. “죽은 심장을 뛰게 만들”게 하고 “사나운 비를” 만나기 위해 사막의 어디든 굴러다닌다. 그러다가 숨이 멈추려는 순간 만나는 물, 천국인 것이다. 시인은 부활초와의 유대감과 상상력을 통해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또한 미래가 불투명할지라도 꿈과 희망을 향한 생명을 살려내는 물 같은 시를 만나 눈부시고 아름답게 푸른 몸을 펼치는 식물이 된다. 지워버린 “생의 경계”에서도 “싱싱한 잎으로 살아나는 풀꽃”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이 사막이나 개미지옥 같을지라도, 삶과 죽음이 동전처럼 서로를 껴안고 있을지라도 시인의 삶의 회복을 지향하는 정신은 부활초가 물을 만나 살아나는, 살아내는 강한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근원적 인식으로 부활이 갖는 의미를 통해 매 시편에서 부활초처럼 푸르게 잎을 피워내고 싶은 내재 된 욕망이다. “철사처럼 뒤틀어진 팔다리 몸통에 밀어 넣”은 숨 멈춘 정적인 상태에서 “벼락처럼 사랑을 나누”고 “물웅덩이에 뿌리내”리는 동적인 상태로 옮겨가는 의지의 힘으로 화인을 찍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폭설의 겨울 굳게 문을 닫은 채 다시 봄을 기다리’(「봄을 깁스하다 1」)는 시인은 ‘희망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거라고’(「음음」) 아픈 시어로 투명하게 들려준다.
힘든 시간 속에서 시인의 존재이자 숙명을 부활초를 비유해 상징하는 시인은 내면의 울림으로 영혼의 치유를 위해 잠자는 감각을 깨워 단비 같은 시편을 선사하고 있다. 독자들을 시 멀미에 취하게 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라면 독자도 함께 고통과 슬픔 속에 핀 시를 읽으며 ‘귀를 세우고’(「복사꽃, 봄꿈」), ‘귀 열어 놓고’(「짧은 봄날」), 푸르게 설레는 ‘봄의 귀를’(「춘분」) 푸른 시심으로 흠뻑 적셔야 될 것이다.
걷기를 즐겨한다는 시인의 말대로 시 쓰기도 꾸준한 걷기 같다. 그렇게 시인은 오늘도 걷는 것처럼 사유하고 성찰하며 시를 노래하고 시를 쓰고 있다. 생명들이 저마다 눈부신 봄날, 최춘희 시인의 시탁詩卓에 초대받아 좋은 시의 성찬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