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아우라
배우식(시인·문학평론가)
홍사성 시집 『샹그릴라를 찾아서』
책만드는집
홍사성 시인은 절제와 그만의 독특한 시적 기법을 통해 고요해지는 시를 우리에게 펼쳐놓는다. 홍사성 시인의 시는 고요에서 돋아난 언어의 무늬들에서 그 의미가 중층으로 번져나간다.
합파설산 비탈길 내려오다
발길 멈추고 바라본
작은 풀꽃
입술 앙증맞게 붉다
숱한 꽃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무슨 인연으로 여기서
만났을까
그도 오랜 숙연이 놀라운지
살짝, 고개 돌려
쳐다보았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눈 맞춤
- 「눈 맞춤」 전문
홍사성 시인의 시적 공간은 고요하다. 그의 시적 공간은 충만해서 고요하고, 고요해서 충만하다. “눈 맞춤”이 존재하는 이 시의 시적 공간은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것보다 그 뜻이 훨씬 넓고 깊다. “합파설산 비탈길 내려오다/발길 멈추고” 가만히 “작은 풀꽃” 바라보는 화자의 모습이 실제로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제3연에서 화자는 “무슨 인연으로 여기서/만났을까”라고 “인연”을 강조한다. 인연은 연기와 같은 말이며, 상의상관(相依相關)적 발생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현상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성립한다는 것을 말한다. 화자는 “작은 풀꽃”하나를 만나는 것조차도 우연성에 기대지 않고 “무슨 인연”이 있음을 진술한다. 제4연에서도 “작은 풀꽃”을 의인화하여 “그도 오랜 숙연”을 강조함으로써 제3연에서와 함께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풀꽃”인 그가 “살짝, 고개 돌려/쳐다보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연하다. 이 회화의 기법은 홍사성 시인의 시적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연의 “아무도 모르는/우리 둘만의 눈 맞춤”이다. 이 시구(詩句)는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선(禪)을 전하는 장면을 불러오게 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러한 행위는 이심전심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에게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 하여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고 하는데 선종에서는 이를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인 ‘영산회상염화미소(靈山會上拈花微笑)’ 혹은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다가 꽃 한 송이를 집어 들어 보이자 그 뜻을 알아차리고 가섭 존자만이 홀로 고요히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다. “둘만의 눈 맞춤” 역시 이 ‘삼처전심(三處傳心)’과 깊이 닿아있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는/우리 둘만의 눈 맞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의 뜻을 마음으로 고요히 전하는 이심전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고요의 아우라’를 빛처럼 뿜어내는 시 「눈 맞춤」에서 홍사성 시인은 허식을 지워버린 묘사와 단문의 구성, 그리고 회화의 어법 등을 통해 고요의 시적 공간을 창출한다. 홍사성 시인은 마음의 고요한 무늬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그 순간의 솟구침을 시선으로 그려낼 수 있다고 믿으며 「눈 맞춤」 같은 좋은 시를 쓰는 유명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