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각혈한다
강 서 일
‘청어시인선 352번’으로 발간된『각혈하는 도시』는 1975년『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박청륭 시인의 14번째 시집이다(시선집 1권 포함). 그럼 먼저 표제시를 한 번 살펴보자.
폐부 깊숙이 크고 작은 구멍, 구멍 뚫린 도시는 각혈한다. 두세 집 건너 한 집 상점은 비 고, 크고 작은 빌딩에 나부끼는 전승깃발, 임대광고와 종량제 이후 골목마다 넘쳐나는 쓰 레기 천국. 그들 금고 혈관 벽에 쌓이는 기걸스럽게 먹어치운 기름진 자산, 혈전이 유발시 키는 뇌경색 아니면 심근경색, 눈알 터지고 코피 터지고 근로자들의 데모에도 눈 하나 까 딱 하지 않는 미련한 대식가 CEO들, ‘사회 환원, 사회 환원’ 입으로만 나불거릴 뿐 제 자 식 챙기기에 바쁜 애정불감증 환자들. 어디에도 쓸모없는 구릿빛 번들거리는 그 잘난 귀두 龜頭, 흉상 나부랭이가 비단 붉은 광장에 나둥그러졌던 레닌뿐이겠소. 귀착점도 모른 채 그저 달리기만 하는 아라비아産 암말이던가. 무작위 가리지 않는 차량 강간이나 쾌락 살인 등 아직 밝혀지지 않는 병원체가 창궐하는 도시, 밤새 혼자 놀고 있는 TV 수상기도 아닐 텐데. 백색 줄무늬 환자복을 걸친 나일론들이 밤새 배회하는 유령 도시, 갑자기 밀어닥친 이안류 역조에 휩쓸린 도시는 바다 멀리 떠밀려간다. 탯줄마저 놓쳐버린 우주공간 떠도는 낙장 별똥별이 가끔 일으키는 무호흡증, 돌아갈 궤도도 잡히지 않는다. 세로토민 정맥 주 사에 매료된 오직 행복감만을 추구하는 숙녀, 숙녀 아가씨들이 밤새 로봇 손을 흔들어도 그냥 지나쳐 가는 택시, 택시들만 지나쳐간다. CEO 그들 필생의 역작이라 생각하는 하늘 을 찌른 수백 미터 웅대한 렌드 마크, 길게 늘어진 탐욕의 핏빛 혓바닥이 밤새 넘실대며 피를 토하고 있다.
-「각혈하는 도시」전문
각종의 유수한 연구 지표와 보도에 따르면, 오늘날의 현생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풍요롭고 놀랄만한 성취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인용 시편에서는 문명의 상징적인 도시가 각혈하는 중이다. ‘각혈’이라는 뉘앙스는 보통 ‘피를 토하다’라는 말보다 훨씬 더 위중하고 심각한 병세의 징후를 담고 있다. 화자는 오늘의 현상을 그만큼 비관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에 알맞은 신랄한 어조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어두운 전망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2015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은 그의 저서『The Great Escape』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출은 빈곤과 죽음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아직도 전 세계에 걸쳐 빈곤과 죽음에 시달리는 국가가 많지만, 어쨌든 1세기가 조금 넘는 시기에 평균 수명은 놀랍도록 늘어났으며 도처에서 절대 빈곤으로부터 벗어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든 문명의 진보에는 부작용이 더불어 생성되고, 그에 따른 빛과 그림자는 더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새삼 인간의 탐욕과 사회 발전, 이상 기후 변화,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 부의 재분배, 현대인의 광기, 약물 남용, 인간과 미래 로봇과의 관계 등, 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사회과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하지만 뒤얽힌 제반 사회 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무래도 시인의 본령은 아닌 것 같다. 디지털 세상은 이미 우리들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왔으며 눈부신 진보를 이룬 AI와 메타버스 등, 또 다른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에 따르는 다른 세계관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직접 손을 잡을 수 있는 오프라인 세계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온라인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 이러한 팩트를 무시하고 한가한 목가적 시각으로 문제에 답한다는 것은 자칫 오늘의 현상과 유리될 위험이 크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어지러운 현상에 답하는 자들이 아니라,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것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질문하면서 주위를 환기시키는 크고 작은 등대들인 것이다.
각설하고, 시집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이「각혈하는 도시」라면, 마지막에 실린 작품은 지금 인용하려는「천사 그리고 빨간 자전거」이다.
간밤 폭설 속에 버리고 간
어린 천사의 빨간 자전거가
넓은 운동장 눈 속에 묻혔습니다.
경부 고속도로 상행선
한 순간 졸음을 이기지 못한
코일을 잔뜩 실은 20톤 트럭이
앞서 달리던 승용차를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놀랍게도 앞자리 엄마, 아빠는 멀쩡했지만
뒷자리 안전띠를 메고도 깊이 잠든
아기 수림이가 즉사하고만 것입니다.
새벽녘 파란 달, 슈퍼 문 속에
빨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린 천사 수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사 그리고 빨간 자전거」전문
그러니까 이 시집을 한 편의 영화로 본다면, 비극적인 첫 장면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면까지 비극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전복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집 곳곳에 부정적인 전망, 상실감, 아이러니, 부재감 등으로 가득 차있다. 이것은 살만한 세상의 도래를 원하는 화자의 희망이 그만큼 더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데 시인의 연보를 보니, 놀랍게도 1937년 일본 교토 출생이다. 올해가 2023년, 연나이로 86세다. 이만한 나이이면 보통은 어떤 달관의 자세나 멀리 떨어져서 시적 상관물을 조용히 응시하는 그런 시편들이 많은데, 시인의 열정은 여전히 청년처럼 뜨겁고 그 시선은 전방위적으로 냉철하게 빛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은 ‘시인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겠다; “악의 뿌리는 인간의 뿌리이기 때문에 시(예술)의 영원한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실험적인 시도도 더 계속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없어서 나이가 든다는 말은 참인 것 같다. 신형철 평론가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는다.’라고 했다. 시인의 육성이 담긴 그의 다음 시집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