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서 내일을 본다
한규동(시인)
이경교 시집 『나는 죽은 사람이다』
걷는 사람 시인선
이경교 시인과는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났다. 돌이켜보면 그를 처음 봤을 때 시인, 교수보다는 철학자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또 그의 수업에선 詩論보다는 칼 세이건의 우주과학, 니체 사상, 그리고 자연, 동양의 노장 사상 이야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경교 시인은 어느덧 퇴직을 일 년 앞두고 있다. 이번 시집은 교수직에 있으면서 펴내는 마지막 시집일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그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2의 인생에 있어선 내가 선배다. 나는 3년 전 일찌감치 퇴직을 했기 때문이다. 퇴직 선배로서 조언 아닌 조언을 하며, 온실 속에 있는 선비 같은 이경교 교수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이제 변해야 한다”고. 니체가 말하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인식이라고.
문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의,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의 변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시집에 우연찮게 ‘낙타와 나’가 등장한다. 그동안 서로의 삶을 속속들이 이야기하며 지내온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시집 『나는 죽은 사람이다』는 참 낯설게 내 안에 들어왔다. 자신의 시집에 아버지를 소환했고 가족사와 친구, 당숙모까지 불러들인다.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드라막틱한 한 편의 흑백 무선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역사의 흐름속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물결의 무늬를 자신의 몸 안에 새기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무늬를 완성해 가며 살아왔다”는 박형준 시인의 말을 되새기게 되었다.
시집은 1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2부 ‘나는 네 아비의 혼령이다’, 3부 ‘나는 분명 이곳을자나간 적이 있다’, 4부 ‘울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경교 시인의 시와 문학작품에는 모래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시집 『모래의 시』에서도 그랬고, 이번 시집에도 ‘모래산’ ‘낙타와 나’와 같이 모래와 연관된 시가 있다.
낙타 한 마리 사막을 간다 그의 둥근 눈망울 안에 지평선이 길게 그어진다 칼날보다 날카로운 사막의 지평선, 낙타의 두 귀는 악기처럼 모래 울음을 퍼 나른다 제 몸 안에 사막보다 더 큰 모래밭을 품고, 낙타는 긴 속눈 썹 하나로 모래 폭풍을 건너간다 물주머니 수도꼭지처럼 걸어 잠그고 꿈을 꾸면서도 낙타는 물을 마신다 모래의 지평선 넘어 낙타는 한 세기를 넘어간다
긴 담장 길 지날 때, 갈증으로 입술 부르튼 낙타가 비틀거린다 모래 폭풍에 떠밀리며 내가 건널목을 건넌다 내 몸 안에 담장보다 더 긴 사막을 품고, 밤마다 나는 모래 울음소리를 듣는다 빌딩 숲에 갇힌 스카이라인이 사막처럼 내 눈동자에 새겨진다 사막에서 담장까지 지평선 하나 길게 그어진다
―「낙타와 나」 전문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의 삶을 내리 누르는 무거운 짐을 니체는 낙타에 비유 했다. “낙타 한 마리 사막을 간다”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역사와 함께 물결처럼 흘러간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 낙타 눈에 무비카메라 앵글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둥근 눈망울 안에 지평선이 길게 그어진다 칼날보다 날카로운 사막의 지평선” 낙타 눈망울에 비친 지평선 넘어 다가올 미래의 세기를 꿈꾼다
그에게 있어서 모래는 슬픔이다. 그래서 “낙타의 두 귀는 악기처럼 모래 울음을 퍼 나른다”. 그리고 갈증을 느낀다. “꿈을 꾸면서”까지 타오르는 갈증. 일단 그렇게 갈증을 안고서 “모래의 지평선 넘어 낙타는 한 세기를 넘어간다”. “한 세기를 넘어”가면 갈증은 가라앉을 것인가. 시에선 그렇지 못하다. 빌딩 가득한 도시에서 “갈증으로 입술 부르튼 낙타가 비틀거린다”.
그렇다면 현실의 그는 어떨까. 그는 요즘 갈증을 많이 느낄까. ‘퇴직 일 년’을 넘어가면 큰 변화가 기다릴 텐데. 혹 그가 일 년 뒤 안착하지 못하고 비틀거린다면 나는 그의 어깨를 부축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또 조언하리라. “이제 변해야 한다”고.
이경교 시인은 충남 서산에서 나고, 동국대 및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중국 CIT 대학 교환교수를 역임했으며, KBS1 라디오 <책 마을 산책>과 PBC TV <열려라, 영상시대> 등을 진행하였다. 시집으로 이용 평전」 『꽃이 피는 이유』 『달의 뼈』 『수상하다, 모퉁이』 『모래의 시』 『목련을 읽는 순서』 『장미도 월식을 아는가』, 저서로 『한국현대시 정신사』 『현대시 이해와 감상』 즐거운 식사』 『푸르른 정원』 『북한문학 강의』 『예술, 철학, 문학』 『문학길 순례』 수상록으로 『향기로운 결림』 『화가와 시인』 『낯선 느낌들』 『지상의 곁길』 『청춘서간』 『장강유랑』 번역서로 『은 주발에 담은 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