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사랑
배우식(시인·문학평론가)
신덕룡 시집 『단월』
여우난골
신덕룡 시인은 도시적이고 인공적인 세계의 바깥으로 나아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는 “잠든 어린모들 깨울세라/ 바람결을 밟으며 살금살금 걸어 다”(「성대 아재」)니며, 주체와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시적 세계를 새로운 사유로 새롭게 제시한다.
지난봄에 과일나무 묘목
열 그루를 심었다
텃밭의 일거리나 좀 줄여보자는 심산이었으니
열매를 얻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저 오며 가며 새잎 돋는 것과
수줍게 피어난 꽃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만으로도 뿌듯한 일이었다
봄이 지나면서
꽃을 다 떨궈낸 자리
사과나무 딱 한군데서 손톱만한 열매가 달렸는데
온 세상의 숨결들이 다 그리로 모여들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었다
그 곁을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숨도 죽이고 기도하듯 지나다녔다
자꾸 쳐다보면
내 눈길 때문에 동티가 나지 않을까
기웃거리는 눈길을 걱정 한 끝에 붙들어 매고
한여름을 모른 체하며 보냈다
그 마음을 알아챈 듯
가을이 되자 무럭무럭 어른 주먹보다 커졌는데
아뿔싸, 벌레들이 파먹고 남은
반쪽짜리였다
따서 맛을 보자는 건 아니었지만
느닷없는 행운은 바람이나 거품 같은 게 아니냐고
예수가 허기진 이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다 나눠주고도 넉넉하게 남았다고 하듯
헛농사는 아니라고 위로해보는 것이다
―「다 퍼주고도 남은」 전문
신덕룡 시인은 “창을 두드리는 바람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울리지도 않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기”(「시인의 말」)도 하며 그렇게 양평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이런 전원생활에서 얻은 농경적 감각은 신덕룡 시인의 시의 깊이를 더욱 깊어지게 한다. 시인은 “텃밭”에 “지난봄에 과일나무 묘목/ 열 그루를 심”는다. 시인은 “열매”를 기대하지 않고, 다만 “새잎 돋는 것과/ 수줍게 피어난 꽃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만으로도 뿌듯”하고 만족해한다. 이런 그의 삶의 철학이 투명하게 쏟아져 눈부시다. 또한 “열매”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는 “그 곁을” 시인은 “발소리를 죽이고/ 숨도 죽이고 기도하듯 지나다”닌다.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가 성스럽기까지 하다. 시인은 한 발 더 나아가 “자꾸 쳐다보면” 자신의 “눈길 때문에 동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성자의 마음까지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자 무럭무럭 어른 주먹보다 커졌는데 // 아뿔싸, 벌레들이 파먹고 남은/ 반쪽”만 남았다. 이런 과일을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이 환하게 따뜻하다. 벌레 먹은 과일을 보고 실망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태도임에도 “상처받을 때마다 결의를 다지고 살았던/ 짐승의 시절은 아”(「불편한 동거」)닌 저 너머의 삶의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덕룡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예수가 허기진 이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다 나눠주고도 넉넉하게 남았다고 하듯/ 헛농사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이런 시인에게서 또 다른 예수의 마음을 발견한다. 24행은 예수가 한 소년으로부터 떡(혹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여 5천 명의 군중을 먹이고도 많이 남았다는 기적 중 하나인 오병이어(五餠二魚)를 연상케 한다. 오병이어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의 지극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 역시 오병이어처럼 ‘자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 대상이 ‘가난한 이들’에서 ‘자연’으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신덕룡 시인의 시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다 퍼주고도 남은」 사랑은 진정 ‘헛농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