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명 시인, 신작 시집 『물의 입, 바람의 입』 발간
감각적이면서도 정교한 마음의 빛깔들, 삶의 현장에 밀착한 시어들
하순명 시인의 신작 시집 『물의 입, 바람의 입』이 문학아카데미시선 319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흰 동백> 제2부 <기억의 창고> 제3부 <나한상> 제4부 <세방노을을 기리며>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에는 김종회 평론가(전 경희대 교수)의 해설 「맑은 풍광에 담은 삶의 비의」가 수록되었다. 김종회 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대해 “남녘 진도 땅에서 태어나 학습의 행로를 따라 문학을 익혔기에, 그의 시에는 순후한 남도의 형용이 잠복해 있다. 또 일생을 교육자로서 사명을 다했기에, 그의 거의 모든 시들이 순방향으로서 시의 역할을 추동하고 있다”며 새시집 발간의 의의를 새겼다.
하순명 시의 자연은 그냥 자연이 아니고 우주 또한 그냥 우주가 아니었다. 이는 방대한 교과서이자 잔잔한 타이름이었으며 때로는 엄혹한 죽비 소리였다.
저 남녘 진도 땅에서 태어나 학습의 행로를 따라 문학을 익혔기에, 그의 시에는 순후한 남도의 형용이 잠복해 있다. 또 일생을 교육자로서 사명을 다했기에, 그의 거의 모든 시들이 순방향으로서 시의 역할을 추동하고 있다. 일찍이 독일의 미학이론가 N. 하르트만이 ‘사실주의는 예술의 건전한 경향’이라고 규정한 그 예술적 경향이, 하순명의 시를 견고하게 그리고 빛나게 한다. 삶의 현장에 밀착한 시어들과 더불어, 소박하지만 품격있고 조촐하지만 소중한 시의 세계가 그의 것이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장도(壯途)가 더 크고 넓게 펼쳐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김종회(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프로필: 전남 진도 출생. 광주교육대, 상명여자사범대, 중앙대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1998년 『文藝思潮』 등단. 시집 『산도産道』 『그늘에도 냄새가 있다』 『물의 입, 바람의 입』 등. 교단에세이 『연둣빛 소묘』 등. 한국시문학상, 한국문협서울시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세계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서초문학상, 광주교육대학 자랑스러운동문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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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심장에서 통증이 자랄 때마다
들꽃이 되어
나무가 되어
물의 입으로 말하고
바람의 입으로 말합니다.
쓸쓸함에 기대어
아픔에 기대어
이렇게
시를 안고
세상을 건너갑니다.
다섯 번째 시집을 내보내며
2022년 5월
하순명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흰 동백
18 | 고요를 응시하다
19 | 푸른 꽃, 푸른 물
20 | 한 입
21 | 홍매화 완성
22 | 소요유
23 | 녹색의 그늘
24| 흰 동백
25 | 겨울 숲
26 | 방하착
27 | 석굴암 가을 수채화
28 | 햇살 채색
29 | 수행자
30 | 중악단의 여름
32| 이국의 손님, 고무나무
33 | 말없음표처럼
34 | 억새
35 | 바람의 길은 자유롭다
36 |베이든지 젖든지
제2부 기억의 창고
38 | 여럿이면서 혼자
39 | 겨울 강에서
40 | 봄날, 하루해
41 | 하늘거울
42 | 천방지축
43 | 갈빛 흔들림
44 | 꽃바다에서
45 | 다시 넝쿨장미
46 | 배롱나무 길
47 | 기억의 창고
48 | 핑크 뮬리 언덕
49 | 짧은 호흡
50 | 코로나,목련
51 | 다시,봄
52 | 드라이플라워 한 아름
53 | 만첩홍매
54 | 꽃과 바람의 몸
56 | 청계산 중턱에 앉아
제3부 나한상
58 | 이름값
59 | 나한상
60| 아들에게
61 | 풀숲에서 온 어머니의 당부
62 | 햇살 한 사발
63 | 11월의 오후
64 | 사모곡
66 | 어머니의 밥
67 | 살구꽃 그림자
68 | 수수꽃다리
69 | 경고
70 | 보물이
71 |첫 손녀
72 | 그렇구나
73 | 시가 사는 법
74 | 흘리고 다니는 여자
75 | 공터의 꿈
76 | 귀를 눕히다
제4부 세방노을을 기리며
78 | 순천만 오후
79 | 12월의 기차
80 | 그대는 항상 거기 끝에 있었다
81 | 붉은 유적지
82 |남농의 소나무
84 | 물미역
85 | 세방노을을 기다리며
86 | 나의 진도
88 | 나는 누구인가
89 | 시간의 고해성사
90 | 까보다로까 바람 속에서
91 | 융푸라우
92 | 구름 궁전
93 | 지리산 향기
94 | 기린터널을 지나며
95 | 제주도에서 이중섭을 만나다
96 | 태극기와 동심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
97 | 김종회 해설
맑은 풍광에 담은 삶의 비의秘義
<좋은 시>
<흰 동백>
북적이던 어느 상가喪家에서
적막이 지금 떠나는 중
바람이 불고 조등이 흔들리고
높은 가지에서 한 생生이 아무도 모르게
흰 소리로 내려온다
찰나, 비에 젖다 가는 시간을 전송하며
생애의 울음을 멈추어 버렸다
뒤따르는 슬픔이 떨어진 흰 꽃송이에
눈물처럼 내려 앉는다.
<이름값>
이름값대로 산다고 했다
도장 새기는 사람이 한자 이름 획을 풀더니
나무라고 했다 풀이라 했다
미움도 사랑인 척 가시도 꽃인 척 하는
세상 사람들과 닿으면 상처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풀 곁에 엎드렸다
나무 등에 기대어 나뭇잎이 흔들리는 대로
눈이 따라 다녔다
내가 풀이 되고 나무가 되니
햇살이 찾아오고 파란 하늘이 찾아오고
바람이 오면 그가 하자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렸더니
욕심이 물러나고 내 이름값대로 풀과 나무가
그 자리에 들어왔다.
<나한상>
국립중앙박물관 오백 나한 전시회에서
만 가지 웃음을 만나고 오던 날
집에 오니 우리 집에도 나한 한 분 계신다
그의 등을 바라본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등이 한없이 적막하다
모든 걸 껴안은 듯 모든 걸 마무리지은 듯
깊은 숨소리를 바라본다
그는 등이 얼굴이다
등만 바라보아도 알 수 있는 표정
말하지 않는 침묵이 수많은 말을 하고 있다
눈짓만 해도 말이 통하는 남자
세상에서 무엇보다 제 핏줄을 사랑하는 남자
등에 두른 나이테가
불꽃처럼 살아왔던 시간을 정박하고
붉은 해가 지도록 앞산 흰 구름 한 점 응시한다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자유스러운 적 있었나요
꼭 닮은 나한의 표정 하나가
그의 등에서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