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숙 시인, 신작 시집 『그 역에 가고 싶다』 발간
물아일체와 예술체험의 결정結晶, 동화적 상상력과 삶의 향기
이보숙 시인의 신작 시집 『그 역에 가고 싶다』가 문학아카데미시선 320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꽃무릇 사진찍기> 제2부 <아 저 흰 두루미좀 봐> 제3부 <버킷리스트> 제4부 <그 역에 가고 싶다>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에는 윤정구 시인의 해설 「동화적 상상력과 삶의 향기」가 수록되었다. 박제천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시인의 따듯한 시를 읽다보면 봄을 보여주는 나무의 눈과 같은 시인의 푸른 시에는 세잔의 그림처럼 한없이 깊은 색채의 세계가 펼쳐지고. 바흐의 음악처럼 가만히 소리내어 읽을 수록 우리 영혼의 메아리가 번져나가는 음절의 깊은 파동이 물결친다. 물아일체와 예술체험의 결정(結晶)이 콜라보된 이보숙 시학의 매력”이라며 새시집 발간의 의의를 새겼다.
시의 한 경지에 이른 훌륭한 시를 쓰는 시인은 누구일까? 그는 아마도 세상의 슬픔과 기쁨과 허무를 읽어내는 밝은 눈과 귀와 순정한 마음을 간직한 시인이며, 그 슬픔과 기쁨을 걸러 승화시켜 맑은 하늘에 닿게 하는 지성의 그물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 아닐까. 이보숙 시인은 그런 우리의 바람을 채워주는 시인의 모범일지도 모른다.
1992년에 등단한 이보숙 시인이 『새들이 사는 세상』 『코코넛 게』 『목련나무 어린 백로』 『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 등 주옥같은 시집을 상재한 데 이어, 다섯 번째 시집 『그 역에 가고 싶다』를 펴낸다. “상처뿐인 삶, 허무뿐인 삶의 상처와 허무까지 본능적으로 따듯하게 껴안을 수 있는 모성적 상상력이 이보숙 시의 장점”이라는 방산 선생님과 “진실한 언어로 독자의 내면에 다가서는 이보숙의 시는 슬픔을 뛰어넘는 예술, 자연, 인간의 조화를 이뤄낸 숙성된 삶의 향기가 가득하다”는 권온의 서술을 상기하며 시집을 연다.
. ―윤정구(시인)
이보숙 시인의 시는 따듯하다. 시인의 따듯한 시를 읽다보면 맑고 투명한 샘물의 바닥은 얼마나 깊을까 궁금할 정도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자연과의 친화력에 잠겨든다. 봄을 보여주는 나무의 눈과 같은 시인의 푸른 시에는 세잔의 그림처럼 한없이 깊은 색채의 세계가 펼쳐지고. 바흐의 음악처럼 가만히 소리내어 읽을 수록 우리 영혼의 메아리가 번져나가는 음절의 깊은 파동이 물결친다. 물아일체와 예술체험의 결정(結晶)이 콜라보된 이보숙 시학의 매력이리라.
―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프로필: 서울 출생, 1992년 『문예사조』 등단, 경희대 영문과, 시집: 『새들이 사는 세상』 『코코넛 게』 『목련나무 어린 백로』 『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 등. 2010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 2016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고교 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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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란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로써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으나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된다.
표현한다는 욕심을 품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임을 느끼면서
감히 이 시들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내어 놓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글로 써보고 싶은 소원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2022년 유월 어느 좋은날
이보숙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꽃무릇 사진찍기
18 | 동백
19 | 꽃무릇 사진찍기
20 | 무성영화 한 편 보러 가요
21 | 백일홍 추억
22 | 봄소식
23 | 사랑의 묘약
24 | 장미나무에게 보내는 편지
25 | 은행나무 실록
26 | 나팔꽃 노래
27 | 신神의 열정
28 | 소나무와 시詩
29 | 아카시아 꽃향기 날리며
30 | 어린 새들의 편지
31| 월정리역에서
32 | 겨울정원
34 | 전나무숲길을 걷다가
36 | 헬리코니아꽃과 벌새
제2부 아 저 흰 두루미좀 봐
38 | 봄, 트럼펫
39 | 천사의 나팔꽃
40 | 목단꽃 추억의 길
41 | 십자가, 어머니
42 | 아 저 흰 두루미좀 봐
44 | 부모님께 드리는 봄날의 기도
45 | 산골 마을에서
46 | 나는 서핑 선수
48 | 고양이 한 마리가
49| 고추잠자리
50| 가을 길목
51| 가문비나무의 노래
52 | 1950년 9월 28일 일기
54| 홍시와 참새
55 | 쪽빛 하늘
56| 소리나는 그림
57 | 푸른 여우
58 | 비정한 세계
제3부 버킷리스트
60 | 가야로의 여행
61| 가을 추상화
62 | 네모의 세계속으로
63 | 메아리가 그립다
64 | 버킷 리스트 1
65 | 버킷 리스트 2
66 | 버킷 리스트 3
68 | 비단나비섬에 가다
70 | 내가 버린 말씀의 집
71 | 석파정石坡亭에 가다
72 | 섬에 가면 신을 만난다
73 | 트레비 분수 앞에서
74 | 아름다운 지구
75 | 코스타 델 솔*
76| 그 무덤 뒤편에서
77 | 싸이클 타는 사람들
78 | 아이들의 하늘
제4부 그 역에 가고 싶다
80 | 흑조의 꿈
81 | 겨울무지개
82 | 그 역에 가고 싶다
83 | 바닷가에 서서 그대를 그려본다
84 | 되새의 외출
85 | 느티나무 그늘
86 | 도시의 개구리
87 | 방울새
88 | 보초병의 실수
89 | 빈 우체통
90 | 빈집 가꾸기
91 | 사파이어 사랑
92 | 새 모이 주는 여자
93 | 새알 같은 생각
94 | 오늘은 우리 밝게 웃자
95 | 여름숲
96 | 은행 두 알
97 | 천군만마
<좋은 시>
<그 역에 가고싶다>
그 역으로 가는 길에는 철따라 많은 꽃이 피었지
철길 옆 신작로에 봄에 피는 살구꽃,
꽃이 피려면 먼저 연두빛
어린 싹이 돋아났지, 노란 꾀꼬리들이 와서 우짖곤 했어
무엇이라고 하는 말인지 궁금해서 귀를 기울이곤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어
내가 일생 기다리는 너라는 간이역,
가을이 되면 끝내 초록들이
모두 바래서 갈색 물이 들더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을 닮았나봐,
네가 떠나버린 그 역에는 사람이 보이질 않더구나
다 어디로 갔을까?
언젠가는 모두 떠나는 게 역이라는 이름일까?
이제 출발하려는 기차의 기적 소리만 길게 울리고 있구나
네가 연주하던 피아노선율도 간간이 들리는구나
삶이 환상이었나, 그 소리들을 따라
나도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구나.
그곳에 ‘너’라는 간이역 간판이 달려 있네.
<꽃무릇 사진찍기>
그 꽃을 사진에 담으려면
몸을 낮추어야 하지요
아니 아주 땅에 엎디거나 누워서 찍어야 해요
얼굴에 흙을 묻혀야 꽃무릇의
얼굴을 담을 수 있어요
진한 주홍빛 꽃봉오리들을 한가운데 모아놓고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주홍빛 날개가 하늘 향해
곧 날아갈 듯 하네요
멀리 님을 보려고 안간힘을 다해 용을 쓰는 날개들,
가을이 눈물을 글썽이네요
그러는 동안 사진사는 꽃들에게서
겸손을 배워가지요.
<헬리코니아꽃과 벌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헬리코니아꽃에게로 달려가
꿀을 얻기 위해 낫부리벌새는
1초 동안 칠팔십 번 날갯짓을 해야 한다
흰색 크림색 보라색의 아름다운 깃털이 있지만
동전만큼의 몸통밖에 안되는 벌새는
부리가 낫처럼 생겼다는 무기 외에는
별 수가 없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굶어 죽는 수밖에,
그래서 우리가 다 아는 k군은 있는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하다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까?
기계들 따라가면
헬리코니아꽃이 피었으리라 생각했을까?
그는 흰색 크림색 보라색의 어여쁜 젊음이 있었음에도
쉼 없는 날갯짓을 하다가 사라져갔다
없어져버린 그의 영혼을 찾으며 울부짖는 혈육,
그 눈물을 우리 모두 모른 체하며 살아간다
오늘도 해는 세상을 비추고 기계는 하염없이 돌아가고
다음 벌새는?
헬리코니아꽃은 여전히 붉은 빛으로 유혹하며 피어난다.
<푸른 여우>
새벽이면 나타나던 푸른 여우
요즘 보이지 않는다
서늘한 바람 속 수선화들 머리를 조아리는 숲길을 돌아
조용히 와서 두리번거리다가
수선화 꽃잎에 토를 박고 킁킁대며
무언가를 찾는 듯 미련 가득하던 눈망울
연신 뒤쪽을 살피며 돌아갈 땐
탐스럽게 흔들리던 꼬리 뒤로
외로운 그림자 길게 따라가더니
이제 오지 않는 푸른 여우,
돌아가 오지 않는 내 안의 그 무엇,
기다리다 그리워하다 내가 가야 할 저 오솔길
푸른 새벽이면 창 밖으로 슬며시
수선화 노란 꽃잎 눈을 뜨는
미명의 숲길을 살핀다.
<섬에 가면 신을 만난다>
섬의 길은 높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파도를 닮아서인가보다
그것이 사람의 길이라고
까만 염소가 하얀 뿔을 빛내며 에에에 우짖는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낯설어서일까?
전망이 좋다는 약과봉에 오른다
내가 하늘과 아주 가깝다
뛰어 오르면 신을 만날 듯, 두 손을 펴 든다
바다와 숲과 언덕들이 내 안에 가득 찬다
저 아래 두고 온 열망들이 푸른 안개로 떠돌다 사라진다
가슴에 묻었던 꿈들이 튀어나와 맴을 돌다
파도 속에 묻힌다
바닥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혜가
하늘 가까이 가면 생기나보다
섬처럼 다시 내려 가야한다
그것이 사람의 길이라고 까만 염소가 또 우짖는다
욕지도 섬에서 내가 한 뼘 자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