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시인, 신작 시집 『유목의 시간』 발간
본지풍광과 노마드의 사유, 한덩이 해처럼 빛나는 우리의 미학정신
김진명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 『유목의 시간』이 문학아카데미시선 321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집은 제1부 <나비춤을 추다> 제2부 <갈대의 기도> 제3부 <물안개명상> 제4부 <항아리 시>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에는 박제천 시인의 해설 「본지풍광과 노마드의 사유」가 수록되었다. 박제천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김진명의 시는 때로 니체의 글처럼 잠언풍으로 나타나지만, 그 글에서 유목의 사유를 찾아 읽는 들뢰즈처럼 우리 역시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안개가 깊게 내린 계곡과 그 계곡을 환히 읽을 수 있는 “하늘거울”을 통해 낯선 시간을 타고 마침내 “너”에게 도달하는 유목민의 꿈과 마주친다. 김진명의 시를 나지막히 소리내어 읽어보자. 음절과 음절 사이의 침묵을 음미해 보자. 우리는 어느덧 유목의 사유 속에 깊이 가라앉아 한덩이 해처럼 빛나는 우리의 미학정신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새시집 발간의 의의를 새겼다.
김진명 시집 『유목의 시간』은 우리 삶에 어느새 깊이 자리한 노마드의 자유를 노래한다. 시인의 노마드는 정착민을 벗어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저곳으로 옮겨사는 이주민의 것도 아니다. 삶은 한곳에 머물러 살되 정신은 자유 분방하게 사막을 돌아다닌다. 들뢰즈가 말하는 유목의 사유다. 시인의 정신은 집시처럼 바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아다닌다. 익숙한 얼굴과 매일 만나는 삶이지만, 시인의 정신은 수억광년의 별을 지나서라도 너를 만날 때까지 너를 찾아나선다. 노마드의 삶은 외로움이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 한 점 구름처럼 멀어져” 가지만 “수억 광년 전의 별”처럼 시간을 타고 다시 찾아온다. 그때까지 시인은 “매일 유목민이 된다.” 김진명의 시는 때로 니체의 글처럼 잠언풍으로 나타나지만, 그 글에서 유목의 사유를 찾아 읽는 들뢰즈처럼 우리 역시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안개가 깊게 내린 계곡과 그 계곡을 환히 읽을 수 있는 “하늘거울”을 통해 낯선 시간을 타고 마침내 “너”에게 도달하는 유목민의 꿈과 마주친다. 김진명의 시를 나지막히 소리내어 읽어보자. 음절과 음절 사이의 침묵을 음미해 보자. 우리는 어느덧 유목의 사유 속에 깊이 가라앉아 한덩이 해처럼 빛나는 우리의 미학정신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프로필: 2022년 현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재학 중2017년 『한국문학예술』 시 등단. 2021년 『월간문학』 소설 등단. 시집: 『빙벽』 『너에게 쓰러지고 싶다』 『유목의 시간』 수상: 제1회 전국시낭송대회 금상, 타고르문학상 시 부문 작품상, 윤동주 탄생 105주년 기념 문학상.한국강남문학상 등
▶연락처: 06185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959-34 101호 전)010-8148-3585
E메일: jinmyung3585@daum.net
▶문학아카데미: 03084 서울시 종로구 동숭4가길 21, 낙산빌라 101호
tel) 764-5057 fax) 745-8516 ▶B5판·반양장 108쪽/ 값 10,000원
<시인의 말>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가는 ‘유목의 시간’을 통해
경계에 대한 고정관념의 시간을 털어내고
나는 지금, 자유로운 생명의 궤적을 따라
초원으로 향하는 중이다
인간이 설정한 시간과 공간을 철저히 무시하고
길이 없는 길을 내고 새로운 초원에 눕는다
결핍과 풍요 사이 화해할 수 없는 모순도 결코 나를 넘을 수는 없다
이미 ‘유목의 시간’은 나를 포기할 수 없는 시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자연과 유목의 풍광이 나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첫 시집 『빙벽』 두 번째 시집 『너에게 쓰러지고 싶다』에 이은 세 번째 시집 『유목의 시간』은
자연과 문명에 대한 나의 성찰이다
가축이 길을 내면 내가 그 길을 따라가는 ‘유목의 시간’처럼
나는 지금, 자연의 교리를 따라가는 중이다.
2022년 초여름, 햇살 눈부신 날 김진명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나비춤을 추다
19 | 흔들리는 부레
20 | 쓰나미 피아노
21 | 이중섭 산책로
22 | 흔들리는 걸작
23 | 하늘은 시인이다
24 | 걸어가는 사람
25 | 나비춤을 추다
26 | 번개 도장
27 | 부활
28 | 시 콘체르토
29 | 유목의 시간
30 | 적벽
31 | 전원교향곡
32 | 태고의 소리
제2부 갈대의 기도
35 | 낙타가시나무
36 |얼음새꽃, 복수초
37 | 꽃잔디
38 | 갈대의 기도
39 | 사라지지 않는 별 하나
40 | 상생
41 | 씨앗 도서관
42 | 유월의 수국
43 | 무늬 아단소니
44 | 빈 집의 시학
45| 태초의 아침이 열리며
46 | 생존법칙
48 | 황토현의 새벽
49 | 자목련과의 탱고
제3부 물안개 명상
53 | 방하착
54 | 부처가 연못 속에
55 | 묵언 수행
56 | 삼보일배
57 | 삼색제비꽃 화석
58 | 숲의 수도자
59 | 연화머리초 그리기
60 | 오
61 | 심지
62 | 대추나무 팽이
63 | 물안개 명상
64 | 민둥산
65 | 바다의 맨살
66 | 바위틈
67 | 천년을 자고 있는 돌
68 | 지하철 환승역
제4부 항아리 시
71 | 0.2프로 소설가
72 | 항아리 시
74 | 트라이앵글 가족
75 | 댕댕이 덩굴
76 | 땅에도 귀가 있다
77 | 미스 김 라일락
78 | 밥알을 세며
79 | 비사벌 초가집
80 | 봄바람 최면
81 | 사행소곡
82 | 에베레스트
83 | 위대한 등
84 | 오누이 조약돌
85 | 당랑거철
제5부 시인의 에스프리
87 | 박제천 해설
본지풍광과 노마드의 사유
<김진명 좋은시>
이중섭 산책로
제주 솔동산 문화의 거리, 이중섭 산책로를 걷는다 마치 흰 소가 길섶에서 튀어오를 것 같다
두 아들과 게를 잡던 자구리해변 그 바람 그 하늘 그 바다가 행복이었던 그 시절 여전히 그리운 바다가 하얗게 물거품을 부순다 문섬과 섭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범섬을 불러 본다 삼형제 바위가 정다운 제주도. 두 눈 가득 찬란한 제주 바다를 보며 거친 바위틈에서 가장 큰 외로움을 그린 그 사람 오늘따라 철썩철썩 바다가 사람 같다.
나비춤을 추다
시선은 코끝을 향한 채 나비춤을 춘다
흰색 장삼에 황색 청색 녹색으로 여섯 개 대령을 드리고
메마른 땅에 물이 스미듯 나비춤을 춘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을 양손에 든 날개짓으로
나비 한 마리가 몸으로 공양을 올린다
방하착放下著 방하착放下著
마음속의 집착을 내려놓으니
텅 빈 허공이 나비가 된다
양발은 고무래 정丁자로 돌며
범패梵唄 음악에 맞춰
손을 모으고, 팔을 벌리고,
앉으면서 어르고, 앉아서 연꽃치기를 하고
불탑 닮은 고깔을 쓴 채 양팔을 펴들고 하늘하늘 앉았다
일어서며 반신요배半身搖拜를 하니
한의 절벽에서 생각이 끊기고
그 경계에 나비가 집착을 내려놓으니
나비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유목의 시간
나는 유목민, 기타 한 대 둘러메고 하루를 열고 먼지를 풀풀 내며 자유로운 집시가 된다 낙엽화석이 되기 전 그저 한 점 바람이 된다 매일 저녁 어깨엔 노을의 손이 갈래꽃처럼 위로가 된다 주머니에는 익숙한 얼굴 겨우 몇 장만이 사진 속에서 웃을 뿐이다 또 하루가 간다 외로운 길 굽이굽이 바람이 달려간다 안개가 깊게 내리니 계곡은 하늘거울을 마주한 채 오늘을 비춰 본다 내가 만난 사람,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이 한 점 구름처럼 멀어져 간다 바람이 서럽다 바람이 서성이며 수억 광년 전 별도 매일 시간을 탄다 너를 만날 때 까지 매일 유목민이 된다.
꽃잔디
사람이 무심코 밟고 가도
잔디는 어금니를 꽉 문다
길섶에 살아가는
잡초의 삶이 그러하듯
밟혀도 다시 피는 꽃잔디
밑바닥을 기면서도
어깨동무하며 피는 꽃잔디
웃으며 돌담을 넘는다.
갈대의 기도*
쓰러질 듯 쓰러질 듯하다가
바람이 한눈을 파는 사이
갈대는 노을을 삼기며 기도한다
바람에 갇힌 구름을 보아도
구름에 갇힌 바람을 보아도
씨줄 날줄로 만난 인연들
일제히 석양을 향해 경배한다
해 저문 강가에 감사기도 올리는 것이
어디 갈대뿐이랴
어스름 둥지에 깃든 새들
그림자 거두며 깊어진 산들
생명의 젖줄 물리던 강들
온 세상 잠든 밤에도
갈대의 기도는 잠들지 않는다.
*타고르 기념문학상 작품상 수상 (2021년 3월)
항아리 시*
어머니 비밀정원의 성소
보기만 해도 배부른 항아리
퍼 주어도 퍼 주어도 마르지 않는
소금 항아리가 비를 맞는다
어머니의 삭힌 눈물이 고인다
갈라진 손끝의 시린 맛이다
항아리 같은 어머니
어머니 같은 항아리
북간도 빗물이 가득 찰 수록
아들의 슬픈 등을 닮은 항아리
생각만 해도 괜히 눈시울 젖는
어머니는 막막하고 캄캄한 날이면
항아리의 눈물을 닦아주셨으리라
멀리서 바람과 함께 따라온 홀씨가
장독대 돌 틈에 꽃 한 송이 피워 올린다
사람도 꽃처럼 봄날 다시 올 수는 없을까
어머니의 비밀 정원 장독대
채워도 채워도 밑이 빠진 항아리는
나를 적시는 쓰라린 항아리 시 한 편
내 가슴 속에 별이 된다
그 별은 어머니 머리칼향이 난다
그림자 하나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