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다
(마가 12장 28-34절/ 요한일서 4장 19-21절)
안수경 목사
(강남지역자활센터)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증샷을 찍어오라는 숙제를 내 준다면 어떤 사진을 찍어 오실 건가요?
500년 간 개신교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성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점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물신주의에 맞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선교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국 기독교 언론포럼에서 ‘한국 교회에 대한 언론인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들은 한국 교회의 선결 과제를 ‘세속화 · 물질주의’(44.4%)라고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500년 전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시대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세속화와 물질주의로 인해 종교적 위기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거나 종교 지도자라는 사실은 우리들을 더욱더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욱이 교회를 통해서 희망을 찾아보려고 했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젊은이들이 교회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교회를 떠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세속화와 물질주의라고 하는데 어찌하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신구약성서의 핵심 주제요, 기독교의 최고의 윤리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 가르치고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 계명의 불가분리성을 성서를 통해서 살펴봄으로써 이웃 사랑의 실천, 사회복지 실천을 통한 교회 개혁의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2장 28~34절에서 신명기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서의 ‘마음’, ‘뜻’,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에 ‘목숨’을 추가하셨습니다. 목숨은 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인데 그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 정도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서기관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번제와 다른 희생제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종교적인 예배 행위를 통한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곧 ‘이웃 사랑’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7~18절의 말씀에도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못한다고 했고,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야고보서 2장 17~20절 말씀을 보십시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헛것이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이 온전해 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9~21절 말씀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 사랑을 매우 강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사랑이 무엇인지는 올바로 가르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축복과 성공과 부흥만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본 적이 없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마저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섬기듯이 노래하며 춤추게 된 것입니다(출애굽기 32:4-8).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지 못하여 백성들이 제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오늘 교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종교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증거는 눈에 보이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자체가 봉사이고, 선교이고,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운동이란 몸으로 삶으로 이웃을 섬기는 운동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 사랑으로 인증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구별되거나 나눠질 수 없는 하나의 계명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많은 기독인들은 하나님 사랑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는 하나님 사랑이 먼저이고 이웃 사랑이 나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인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동시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8장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금식은 하나님께로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실천을 보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 말은 곧 형제를,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또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뜻합니다.
교회가 찾아갈 이웃이 누구인지? 지역사회와 함께 발굴하고, 잃어버린 이웃을, 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일을 교회가 앞장서야합니다.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물질의 나눔과 구제도 중요하지만 물질만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섬기고 나누고 배려하고 후원하고 구제해야 할 지역의 이웃을 찾는 것입니다. 내 형편과 사정에 맞는 이웃 사랑의 방법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 사랑의 행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삶으로 표현된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문인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사해 바다와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사해’가 죽은 바다가 된 이유는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못하고 고여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께 받은 그 크신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흘려보내지 못하면 그 사랑은 자기중심적 사랑이 되어 결국에는 자신을 병들게 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많이 이웃과 나누면서 살아가노라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개혁과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희망이 되고 대안이 될 것입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이웃을 향한 존재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믿음 안에서 이웃을 향하는 자유의 그리스도인은 타인에게 동시에 그리스도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나마 예수님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흉내 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고 하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요.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쟁 속에서 빈부 격차로 인한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고, 각종 악성 지표가 최악의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살률, 노인 빈곤율, 이혼율, 저출산율 등이 OECD 35개국 중 35위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개교회주의, 성장주의,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이웃사랑으로 지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품어야합니다.
교회의 사회복지 실천은 기독교의 근본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봉사와 헌신과 나눔과 섬김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 열악한 처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물리적,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양적, 질적으로 완화시키고, 생활상의 곤란을 개선시켜 줌으로써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성서적 정의를 실천하며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려는 기독교인들의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자 가치체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사랑을 교회 내에서만 나누고 실천하는 것을 벗어나 교회의 지평을 지역사회로 확대해 나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복지 선교를 실천하는 거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결단하는 여러분을 통해 교회는 개혁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내 생애 마지막 날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행복했노라고, 예수님처럼 이웃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려고 참 많이 노력했기에 행복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