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수강생’이 ‘신앙의 동지’되는 공부
지난 8년간 기청아 하루찻집+밥집에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는데 올해는 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출산 예정일이 같은 주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지난 9개월 남짓 입덧도 없고, 내 몸이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병원 검사 없이 평화로운 임신기를 보냈다. 아이를 품는 것도 기르는 것도 홀로가 아니기에 어떤 불안함 없이 예정일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 공동체의 벗들이 잉태하고 아이 낳고 기르는 모습을 수 년 동안 지켜본 덕에 길러진 힘이다. 이제 막달이 되니 배가 너무 커져서 몸이 힘들기는 하다. 만삭의 배를 안고, 똥배가 이렇게 많이 나온 아저씨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대학 때 다니던 교회는 학교 사람들로 끈끈하게 이어진 공동체였다. 대학부 일원으로서 정체성도 뚜렷했고 일주일 내내 기도회와 수요찬양 예배, 금요일 대학부 모임, 그리고 주일 예배로 나의 일주일이 채워져있었다. 그러던 관계가 학교를 떠나고서는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대학 졸업 이후에 작은 교회를 개척하는 데 동참하게 되었다. 교회 살림을 꾸려가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고 마음을 내었지만, 매 주일마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고 신앙을 지켜왔는데 왜 교회 생각만 하면 답답한가 싶었다. 한편, 직장생활의 바쁜 일상 속에서 그 답답함을 종종 잊고 지내기도 했다.
서른을 앞두고는 문득 회사를 그만 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선교를 가거나 공동체 방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래 고민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바로 회사를 정리하고 3개월 가량 한 공동체에 머물며 사람들 만나고 철학 공부를 처음 접했다. 무언가 깊이 있는 것을 맛 보긴 한 것 같았지만 집에 돌아온 이후에 만났던 사람들과 관계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백수 생활로 지내던 터라 답답함을 느낄 여지만 늘어났다.
그러다 한 언니에게 교회 다니는게 “답답해"라고 했다가 “기독청년아카데미에 한 번 찾아가봐”라는 권유를 받았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기청아 사이트를 찾고, 한국근현대사 강의를 신청했다. 역사의식이 일천했던 나에게는 내용도 생소했고 같이 모였던 열명 남짓의 수강생들도 낯설었다. 그래도 일단 열심히 나갔다. 두 달 가량 공부하고나니 기청아의 “영성수련의 밤"이라는 행사가 열렸고 또 새로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기청아 다른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모둠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늦은 시간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래 묵은 체증처럼 안고 살던 답답함이 해소되었던 느낌은 지금도 뚜렷하다. 그리고 지금은 친구가 된 사무국 간사님이 나에게 다음 강의로 “성서의 맥"을 들으면 좋겠다고 추천해 주었고, 그게 나의 다음 강의가 되었다.
6개월간의 ‘성서의 맥’ 강의가 12개월의 ‘공동체지도력훈련’으로 이어지면서 나의 답답함은 다 뚫렸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내 마음을 뜨겁게 하는 강의가 길어진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하게, 살아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아 찾아온 이들을 만났다. 물론 그 중에는 “강의를 듣는다고 삶이 바뀌냐”며 현실적인 회의를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강의만 듣는 것이었다면 그 말이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청아는 그저 강의를 듣는 장이 아니었다. 신앙, 진로, 결혼 등 인생의 묵직한 과제 앞에 선 청년들이 6개월, 12개월의 과정 동안 매 주 만나다 보면 누군가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 앞에 있었다. 그 선택의 과정 자체가 토론의 주제이고 공부의 내용이었다. 배움은 관념에 머무르는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에서 써먹기 위한 것임을 자각하는 과정이었다. 그 자각은 공부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사회적 시선, 왜곡된 욕망을 거부하고 배운 바에 일관되게 선택하는 과정을 함께 넘으며 ‘옆자리 수강생’은 ‘신앙의 동지’가 되었다.
기청아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제주 강정마을에 방문했을 때 지금은 폭파된 구럼비 바위를 밟고 왔다 - 2012년 3월
이렇게 만난 신앙의 동지들은 강좌가 끝난 후에도 멀어지지 않았다. 공부의 흐름을 이어 삶의 배치를 바꾸는 자연스러운 단계가 이어졌다. 동지들과 마을 공동체로 함께살게 되었다. 내 마음을 뜨겁게 했던 공부의 열정이 일관되게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부한 것이 내 일상으로 자리잡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사회에 대한 섣부른 열정에 높았던 비판의식으로 이제는 나를 먼저 돌아보며 내가 쓰는 시간과 돈, 에너지에 대해서 더 엄격한 결정을 하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잘 나가고 싶은 가벼운 욕망을 다스리는 힘을 키웠고, 돈 벌고 경력 쌓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직장 생활의 열매임을 배워가고 있다.
때가 되어 생명을 품는 선물을 받고 이제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든다. 몇 년 전 기청아에서 공부한 ‘함께하는 임신출산육아, 아름다운 살림’ 강의가 나에게 소중한 양분으로 준비되었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함께 공부했던 동지들이 공부한 내용을 계속 고민하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지내는 과정을 가까이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도 보냈다. ‘든든하다’라는 표현으로 다 설명될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 아기는 마을 공동체에서 올해 여덟번째 아기, 닭띠 막내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