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연이에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늘이가 자는 시간을 틈타 독후감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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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회사에서는 야근을 하게될까?
성과급제는 과연 필요할까?
회사의 주요 결정은 소수의 경영진이 하는게 맞나?
신기술은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나?
자본주의에서의 국가의 역할이란?'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는 책을 보며, 논리적인 설명에 통쾌감을 느끼다가 이내 씁쓸해졌습니다. 예전에 비해 지금 인간의 삶은 더 나아졌다고 말할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원숭이도 이해한 자본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쉽게 풀어쓴 책입니다.
<자본론>에서는 자본주의의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 특히 잉여노동에서 발생된다고 설명합니다. 봉건주의 이후 자본주의에 들어와 땅을 빼앗긴 농노들은 도시빈민이 됩니다. 순식간에 산업예비군으로 전락한 노동자는 처음부터 자본가에 비해 열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시작합니다. 노동자에게 과거 각종 채찍으로 부터 현재 성과급이니, 야근수당이니, 신기술이니 하는 당근으로 자본주의는 자기몸을 불려왔습니다. 그렇게 자본가는 살이 찌고, 노동자는 야위어가 양극화가 생겼다고 책은 말합니다. 더 나아가 중립적이라고 여기는 국가의 역할은 사실 자본가의 편이었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수호할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현시대를 사는 우리가 노예제도가 있었던 시절, 여성을 제외하고 사람숫자를 세었던 시절, 지위에 따른 사회계급이 있었던 시절 (양반이나 귀족과 같은)을 떠올리면 그저 고개를 젓게됩니다. 말도 안된다 생각하고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가슴을 쓰러내립니다. 그러나 이런 정서는 미래세대가 현재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시대를 역사속에서 평가할때 느끼는 감정일 지도 모릅니다.
책 중간에 인간의 진화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는 기본적인 속성으로 모든 생물은 식욕과 성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인간이 다른 종과 달리 가지고 있는 욕망은 '인정욕'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자와 같은 강한이빨, 토끼와 같은 빠른 발이 없는 인간이 홀로 살아남기가 힘들기 때문에 공동체를 지향하게 되었고,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음으로써 생존하기 유리하기에 인정욕이 인간에게 생긴것이라고 말이죠.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불의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이정도면 그래도 살만해'라며 체념하게 되는 지점은 자본이 조작된 식욕, 성욕, 인정욕으로 우리가 일정의 만족감을 느낄때인것 같습니다. 이런 욕망은 결국 생명이 지향하는 생명평화(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속성은 생명평화에 담긴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목적에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수단은 목적을 상실하고 욕망을 욕망하게 합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시대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며 생명의 목적에 대해 다시금 떠올립니다. 인간이 생존, 생존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했던 방식이 바로 이웃과 한몸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작 백년정도의 역사를 가진-인류의 실험적 사회인 셈이죠-개인주의에 비하면 인류 태초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삶의 지혜가 더불어사는 마을, 공동체, 한몸된 삶입니다. 이런 가치를 곳곳에 일구는 사회가 새시대가 아닐까 짐작해보며 더불어사는 삶에 가치를 다시금 다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