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만 가만가만 움직여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더운 날입니다. 밖에서 활동하기는 힘든 날씨지만, 꿈터 식구들이 뜨거운 여름을 책을 읽으며 뜻 깊게 보내 보자 마음 모았습니다. 7월 20일 쇠날(금) 회현역 근처에서 《중용, 인간의 맛》 1장을 읽고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1장이 가장 중요한 장인데, 가장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작은 깨달음이라도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달고도 달았습니다.
우리는 “중용을 지키라”라는 말을 일상에서도 종종 합니다. 근데 중용이 뭐냐고 물으면 설명을 잘하지는 못합니다. 책에서도 중용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오해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용”에 대한 가장 큰 일반인들의 오해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자세에 있어서 어떤 행동규범상의 “가운데”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는 근거없는 통념에 관한 것이다. ... 그러한 “중용”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문제의 핵심을 도피하거나, 적당한 타협을 유도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머뭇거림의 비겁한 방편을 제시하는 그런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 대개 그러한 “중용”의 개념은 서양철학에서 온 것이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언어에 대한 피상적 이해로부터 온 것이다.
중용은 양 극단이 아닌 중간이라기보다는,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했는데 그것이 상황에나 각자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장 현명한 판단이어서 감탄하게 되는 경우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굉장히 예리하고 공정하게 내려지는 지혜로운 판단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또 같이 나누면서, 중용의 개념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세계관(자사의 성性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중용의 첫 구절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은 'human nature'(인간 본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천지”(天地)를 의미하고 천지와 끊임없이 상호교섭하는 과정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김용옥 선생님의 EBS 중용 강의 3강 참고).
또한 한때는 총기 있었던 지도자가 총기를 잃고 소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을 보면서 느낀 안타까움과 분노와 슬픔을 나누면서 아래의 구절이 더욱 마음에 깊이 남았음을 나누었습니다.
주체의 심화는 고독의 과정이다. 고독은 수신의 대전제이다. 하나님은 나의 고독 속에서만 온전하게 발현된다. ... 이것이 “신독愼獨”이다. 신독은 고독이지만 폐쇄가 아닌 개방이다. ... 신독은 영원한 개방이다. 신독은 고독의 심연에서 하느님을 끊임없이 개방적으로 해후하는 것이다. 숨어 있는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처럼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밖에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은밀하게 탄식하게 되는 지점에서 붙잡은 구절들이 있었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믿는 바를 더 힘 있게 나누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생각이 머문 구절들이 있었습니다.
중용의 총론을 함께 읽으면서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 펼쳐질 내용들을 기대하며 모임을 잘 마쳤습니다.
다음 모임은 8월 3일 쇠날(금) 있습니다. 8장까지 읽고 나눕니다.
8월 3일에 반갑게 만나요~
새로운 모임 장소에서 바라본 남산 풍경. 기쁜 마음으로 장소를 제공해주신 분께 고마운 마음 안고 모임했습니다. 끊임없는 공부 통해 우리의 마음도 밝고 탁 트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숨어 있는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처럼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저도 이 구절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어요. 뜨거운 여름 뜨겁게 공부하며 마음의 열매 키워 가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