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전, 페이스북 공지를 보고 신청할까 말까 한참 망설였다. 공지가 너무 자주 올라오기에 신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나 하고... 주최자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1/3, 작년에 서서울 ivf가 주최한 사회선교학교에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 1/3, 대학교 휴학생 신분으로도 게으름에 현장에 방문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의 게으름이 나를 얼마나 팍팍한 사람으로 만들까 하는 걱정 1/3로 비교적 늦게, 충동적으로 신청하게 되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장이 욱신거리고 음식물 소화를 잘 못 시키는데, 이때는 사회선교학교를 통해 얼마나 심장이 욱신거릴지, 소화불량이 일어날지 몰랐다.
42일 전, 파인텍 노동자들을 방문하였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들으면서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가슴이 뭉클했다. 이들이 2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투쟁하는 동안, 나는 스크린 밖에서 분노하며 시청자로서 주인공을 응원하고 ‘악역’에 대해 분노하기만 했었다. 이들은 연극하는 배우가 아니라 삶의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가족의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호소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가족이 되지 못하고 기득권의 보호아래 있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나의 작은 외침과 공유가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이 작은 응원들이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빛들은 더 아름답게 느껴지며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35일 전, 기독교 반 성폭력 센터를 방문하였다. 파인텍 노동자들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적극적으로 교회 내 성차별적 문화에 대항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지만, 죄책감보다는 분노라는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 다녀온 후기를 공유하고, 불과 7일의 시간이지만 노동자들의 아픔에 대한 감수성이 커지면서, 마치 내가 그들의 가족이 된 것처럼 착각하며 사회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했다. 사건들에 대해서 항목 별로 옳고 그름을 따지던 노력들이 ‘분노’라는 감정에 묻히고 한 진영에 편에 서서 나의 분노가 거룩하기라도 한 마냥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편 가르기 문화에 대해 경계하는 척 가면을 쓰고 최대한 논리적이게 주변사람들을 설득했지만, 마음은 그들과 동일하게 다른 의견에 대해 수용하려 하지 않고 내가 진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28일 전, 스텔라데이지호 선원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사회적 약자들의 가족인 척 하지만 가족이 아니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광화문 서명 부스를 지키는 데 동참해달라는 그들의 외침에 뭔가 내가 가면 어색할 것 같고, 내가 가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핑계를 대가며 함께하지 않았다. 물론 항상 사회선교학교 전에 아침부터 병원, 약속 등 여러 일정들이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다면 그 시간을 비워두고 어색하지만 3시간을 함께하는 용기를 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다. 나의 일상적인 평화, 일상적인 책임 가운데 그들의 가족이 되는 일은 제외시켰다. 나의 일상적 책임의 경계를 지음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속에서 정당화가 되지 않을 때는 나는 원래 무심하고 무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난하며 책임에서 도망쳤다.
7일 전, 공익법센터 어필을 방문하였다. IVF 친구들과 함께 가서 즐거웠다. 변호사님께서 IVF 선배님이라는 사실에 더 신났던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정의는 얼마나 다른가. 이 나라를 공동체의 이상으로 다시 저작하자고 함께 촛불혁명을 일으켰지만, 촛불을 들고 일어난 사람들이 모두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를 환대하는 국가를 저작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함께 해서였을까, 무기력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좁은 길을 걷고 계신 선배님이 존경스러웠고, 크기는 작지만 교집합이 큰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사회선교학교를 통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예수님의 친구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를 해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적 평화를 지켰기에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이전에는 게으른 자의 온화함이라도 가졌던 나는,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고, 숨어있는 것이 비겁한 것이라고 외치며 내 입장을 주장하게 되면서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고려하지 않고 비판 먼저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원래도 살기 싫었던 세상이 더 살기 싫어졌다. 심장이 계속 욱신거리고 소화불량도 늘었다. 원래 공감뿐인 공감, 행동 없는 기도만 잘하는 나에게 딱 맞는 증상이었다.
그러나 어두운 밤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존재하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씨앗이 언젠가는 커다란 나무가 될 수 있듯이 내 안에 생긴 변변찮은 변화들의 가능성을 믿어보려고 한다. 냉소적인 태도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선교학교를 입학하면서 내 삶에 생긴 변화들이다.
- 파인텍 노동자들께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작은 금액이지만 텀블벅 후원도 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투쟁하시는 노동자들의 감정을 부족하게나마 전할 수 있게 되었다.
-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내딛는 한 걸음에 텀블벅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 스텔라데이지호 팔찌와 리본이 나의 손목과 가방에 달리게 되었다.
- 공익법센터 어필 후원을 시작하였고, 친구와 함께 20일에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포럼에 참석하기로 했다.
아직 너무 부족하고 비겁하고 소심하고 내 일상의 평화를 깨지 않는 실천들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 예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정의감이 아닌 사랑으로 사회 선교를 실천하는 날이 오면 빈 뜰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예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까 싶다.
첫댓글 탐방에 그치지 않고 후속 행동을 해주셔서 넘 고마워요. 종종 현장에서 만나요.
우울을 벗어나 평안을 맞이하길
그대는 이미 실천가!!!
오다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