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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선교학교'를 듣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일이었다. 습관적으로 훑어보던 페이스북에서 홍보 포스팅을 보았다. 페이스북의 홍보 포스팅만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선뜻 결심이 선 것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반복적인 진로고민에 빠져 있었다. 1년 정도 애쓰던 일을 마무리하고, 몇 달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삶의 자리는 어디일까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당시 들었던 말씀 또한 고민을 가중시켰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은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것인데, 내 삶은 과연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한심스럽기만 했다. 그러는 와중에 사회선교학교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타자와 만나는 공부의 자리가 통찰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됐다. 곧 퇴사와 이직을 앞두고 있는 남편에게도 소식을 공유했다. 짧은 공부이지만 우리의 새로운 변곡점에 좋은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네 번의 만남은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깨우치는 시간이었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이어졌던 촛불시위와 탄핵, 새로운 정부 수립을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졌다.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이기도 했고, 새로운 정부에 대한 알 수 없는 안도감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에 드리워진 그늘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 그늘 속에서 고통 받는 자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생활 속에서 나는 그들을 못 본 체하거나 페이스북의 ‘슬퍼요’ 같은 가벼운 반응을 보이곤 지나쳤다. 심지어 <사회선교학교>를 통해 만났던 네 현장은 이전에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곳들이었다. 매 시간 나의 관심이 얼마나 얕고 좁은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약자들의 투쟁과 연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기의 일상을 포기하면서까지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유가족 대표는 이후 다른 배에서 일어날 사고를 걱정하며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얼른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한다고 했다. 굴뚝에 올라간 두 명의 노동자도, 기독교반성폭력센터의 활동가도, 몇 십 년째 기독교 생태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센터장도 거대한 사회악에 맞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사회선교학교를 시작할 때 가졌던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과 ‘가족’에만 몰두했던 눈을 돌려 사회를 끊임없이 바라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가능하다면 인터넷보다는 현장에 가까이 가야겠다고, 내가 속한 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부터 옮겨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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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때문인지 최근 여성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가장 기대가 됐던 현장은 '기독교반성폭력센터'의 활동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교회 내 성폭력의 문제는 사회의 그것보다 더욱 복잡한 이해관계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부장적인 사회 시스템과 남성 중심적이고 수직적인 교회 시스템의 이중적인 어려움이 존재했다. 교회의 공동체성도 문제였다. '덕이 되지 않는다'는 공동체의 귀한 원리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억압이 되었다. 사실 교회 안에는 알게 모르게, 또 크고 작게 신체적, 언어적인 성폭력이 존재한다. 가해자 또한 지극히 '선한'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교회 내에서 해당 문제를 공론화 하기 힘들게 하는 이유가 된다. 공동체가 성차별/성폭력적인 문화를 벗어나 보다 나은 관계로 발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최근 교회 안에서 작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부의 장이 생겼다. 여러 생각들을 듣고 또 교회 안에서 함께 이루어가야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쉽게 체념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지체들과 함께 길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긴 호흡으로 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 다독여야 할 것이다.
첫댓글 교회에서 함께 공부하고 현장 찾아가고!! 사회선교활동 이어가주세요~~~
함께 길을 갈 이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죠.
함국교회 성폭력의 문제는 구조가 변혁 되어야 하는 현상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