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소명 두 번째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강의 주제는 “월급 산출 공식의 결론, 누구를 위해 일하나?” 였습니다.
직장이 어떤 구조로 운영되어 있는지, 급여의 주체가 누구인지, 고객과 급여의 상관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눴지요.
기업의 손익계산서를 보며 설명들었는데요,
이런 것을 어느 누구나 인터넷에서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급여는 손익계산서에서 매출액의 원가 항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은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구입하는 고객으로 인해 원가를 메우고, 더 나아가 이익을 냅니다.
그렇게 고객으로 인해 기업이 운영되고, 그 기업에서 급여가 나오지요.
결국 고객이 내 급여의 주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 급여를 올리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세 가지로 요약해주셨는데요.
첫째, 상품의 가치를 높입니다. 브랜드화 하는 것이죠.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적은 인원으로 많이 생산/판매 하게 합니다. 똑같은 양의 상품을 만든다면, 5명이 만드는 것보다는 3명이 만드는 것이 급여를 높이는데 유리하겠죠. 물론 그만큼 한 사람이 일해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셋째, 기업의 이윤을 낮춥니다. 이윤을 좀 더 직원들에게 주는 것이지요.
당연히 일반적으로 두 번째 방식은 회사가, 세 번째 방식은 직원이 원하겠지요.
그러나 둘 다 길게 보면 함께 망하게 되는 길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기업은 첫 번째 방식을 강화하려 합니다. 연구개발하고, 마케팅 하고 등등.
그런데 고객은 지불능력이 높은 고객과 낮은 고객이 있습니다.
기업이 당연히 하게 되는 첫 번째 노력은 지불능력이 높은 고객을 향해 있습니다.
따라서 지불능력이 낮은 고객에 대해서는 품질저하를 가져오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건 일반 기업의 내용이고요.
지불능력이 낮은 고객을 대상으로 하거나 불특정 다수가 고객이 되는 직업도 있습니다.
지불능력이 낮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이나, 공기업, 복지서비스 제공 기관 등이 되겠지요.
이런 직업들은 급여가 기업의 이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지원금이나 후원금 등에서 오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래도 일반 기업에 비해 낮은 급여를 받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지불능력이 높은 고객을 위해 일하는 직업보다는 일에서 의미를 찾거나 보람을 찾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됩니다.
불특정 다수가 고객인 경우의 대표적인 예는 공무원입니다.
이런 일은 지불능력에 따라 고객을 차별하지 말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습니다.
고객이 돈이 많든 적든 차별하지 말고 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거둬 급여를 주지요.
이러한 직장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직장은 어떤 성격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지불 능력이 낮은 고객을 대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왜 나는 급여가 이렇게 작을까 생각하는 것은 결국 불만만 쌓이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자신이 높은 급여를 받고 싶다면 그런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이 되지요.
반대로 지불능력이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지불고객이 낮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부채감을 갖고 있거나, 자신이 지금 의미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허무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둘 다 자신이 있는 직장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곳인지에 대한 이해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겠지요.
이것을 분명히 하고, 그 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그 괴리를 인정하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던지, 혹은 괴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럼 이런 고민 가운데 나는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이 되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닿게 됩니다.
지불능력이 많은 고객을 만날 것인가, 반대의 고객을 만날 것인가를 선택하려면
그럼 나는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합니다.
소득은 소비와 연결될텐데요,
‘소득 수준에 맞춰 소비하는 것’과 ‘소비 수준에 맞춰 소득 수준을 정하는 것’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흔희 말하는 ‘청부론’, 후자는 ‘청빈론’과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부분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춰 소비하는 것을 자연스럽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번 만큼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앙의 관점에서보면 소비 수준에 맞춰 소득 수준을 정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것 일부를 떼놓고 나머지는 내 것이되고,
후자는 나의 것 일부를 떼어놓고 나머지는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즉 전자는 많이 벌수록 내가 많이 가지지만, 후자는 나에게 필요한 것 외에는 전부 하나님의 것으로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에게 필요한 정도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필요한 돈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점검해보는 것인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잘 알지 못하면, 이것은 막연한 두려움의 근거가 된다고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에 돈을 지나치게 더 벌려고 하거나, 모으려고 합니다. 혹은 낭비하게 되죠.
나에게 필요한 소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점검해보고, 그것에 기반 하여 더 벌거나, 더 나누거나 분명히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이야기와 함께 우리 나라의 직업군별로 평균 연봉과 만족도를 확인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여기서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로 인상적인 것은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인데도, 한 직업군은 연봉과 만족도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대학교 정교수와 시간 강사였습니다. 분명히 학생이라는 고객은 동일한데...
대학교 정교수는 연봉도 높고 만족도도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러나 시간강사는 그 반대였죠.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직업군이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합니다.
두 번째로는 기업총수, 전문경영인 등 평균보다 엄청나게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주요 기업 총수의 연봉이 엄청난데, 연봉상승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연봉이 줄어들지는 않고, 상승하거나 유지됩니다.
그런데 영업이익을 보면 굉장히 손해를 본 곳도 있고, 실적이 저조한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이들의 연봉은 높아지거나 유지됩니다.
과연 이들의 연봉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받는만큼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요.
이 두 가지는 우리를 씁쓸하게 하기도 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사회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눌 것 같은데요.
소감 나누며 기대하는 마음들이 커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