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의 국‧검정 논쟁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중점 둬야
자율교육학부모연대 상임대표 조진형
최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결정되자 역사교사․교수 및 역사학회 등이 친일 독재 회귀라는 선정적인 슬로건을 내세우며 날선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야당까지 이를 정치 쟁점화하는 모습에서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의 혼란 장면이 오버랩되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표면적으로는 국정교과서 체제로의 전환인가, 현행 8종의 검정 교과서 발행 체제 유지인가를 놓고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근현대사 서술내용을 놓고 좌파-우파 진영간의 치열한 이념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무엇이 이같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가?
우리 국민은 지난 100년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일제식민지 시대와 민족상잔의 6.25 전쟁, 전후 복구 및 산업화 과정에서의 정치적 독재와 민주화를 이뤄내는 엄청난 격변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 격변의 역사 속에 일제와 정치적 독재의 트라우마도 있고, 국가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장애를 입은 국가유공자들의 자긍심도 있으며,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타국에서 청춘을 보낸 산업 역군의 보람과, 무모하다시피한 도전으로 세계적 기업을 일궈낸 유능한 경제인들의 자긍심이 혼재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족적을 균형감있게 우리의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교과서에 충실히 담아내었다면 오늘과 같은 국론분열의 양상으로까지 교과서논쟁이 격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 교과서의 국‧검정 논쟁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중점 둬야
그러나 현재의 검정교과서들의 근현대사 서술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차마 싣지 못하는 좌편향적 가치관을 주입시키려는 집필진들의 의지가 교사용지도서에 버젓이 지침으로 제시되어있는 것을 보면 이들 집필진들이 학자적 양심은 커녕 교육자로서의 기본적인 윤리조차 저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고생들이 학교의 근현대사 교육을 통해 김일성‧김정일‧이완용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한국 근현대사 인물 중 Worst 1위로 인식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은 자기 부정․자기 비하의 한국사교육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반증하고 있다. 더욱이 이같은 편향적 서술에 대해서 집필진들이 자발적인 수정 노력은 커녕, 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교육부의 수정명령 조차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검정교과서 집필진들 스스로 검정발행체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역사 교육이 가정의 영역에서 부모와 자녀 세대 간에 역사 문화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고 국가 사회적 관점에서 사회통합적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부터 해방 이전까지 한국사의 주체가 민족이었으나,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민족이 아닌 국가 중심의 서술이 이뤄져야 하는 역사적 비극이 교육현장에서 이념논쟁으로 재현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특히 아직 가치관 형성이 미숙한 청소년들에게 학교현장에서 일부 교사들에 의해 이념 편향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폐해가 실증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근현대사는 국가가 한국사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교육 목표, 가치와 배치되지 않도록 가치중립적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사 교과서 논쟁은 발행체계보다는 무엇을 위한 누구의 역사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하는 내용 서술의 균형을 찾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학문적 가치가 달라야 한다.
한편 대학 또는 역사학자들의 강학적 역사 담론과 고등학교 학생들의 한국사 교육에서의 역사 서술의 내용과 추구하고자 하는 학문적 가치도 달라야 한다. 역사학에서는 다양한 역사적 해석 담론이 창의적인 학문적 연구 성과로 인정될 수 있을 수 있으나, 특정한 역사 담론이 역사학의 영역을 넘어 역사 교육의 교육수단인 한국사 교과서에 온전히 녹아든다면 이념 편향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역사 교육이 단순히 나열된 과거의 역사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해석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정 관점의 역사 담론으로 역사 교과서가 서술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점은 국정전환이 이뤄진다 해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서술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역사학의 한 중요한 직능으로서의 역사 교육에 있어서, 특정 역사 담론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남북한 분단 상태에서 근현대사를 기술하는 것은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고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기념일로 할 것인지를 놓고도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사관에 따라 각기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서 다양한 객관적 사료의 제시 없이 집필진의 주관적 역사 담론만으로 서술한다면 사회갈등과 분열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 사회 통합의 봉합사 기능으로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필요
한국사 교육이 정치 권력의 지배 담론의 영향을 받거나 반대로 사회구성원, 특히 청소년들의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진보적 가치의 실천적 과제를 역사에서 찾으려 집착할 때 한국사 교과서, 한국사 교육은 역사교육 담론이 아닌 정치담론으로 변질되고 만다는 사실을 현행 검정교과서 집필진들이 증명했다.
따라서 검정교과서 집필진들은 자신들의 이념 편향적 서술로 인한 자업자득의 결과물인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에 대해서, 자신들의 이제까지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회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역사 서술이 담긴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오히려 검정 체제보다 더 적극적으로 올바른 국사교과서 편찬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만일 검정교과서 집필진들이 현재와 같이 진영논리에 빠져 아직 출간되지 않은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친일 독재회귀 교과서로 매도하면서 이를 배척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당파이자, 지적 오만이고, 집착일 뿐이다. 이제 양식있는 역사교육학자들이 더 이상의 극단적인 이념 논쟁을 멈추고 교육자의 양심으로 ‘국정화’ 라는 봉합사로 분열된 국론을 봉합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역사교육의 다양성은 Text가 아닌 교사의 창의융합적인 교수학습법에 달려
국정화 반대 논거의 하나로 역사교육의 다양성 침해를 주장하곤 하는데, 진정한 창의적인 교육은 교과서의 Text 자체보다는 텍스트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역사 교사의 융합적 사고력과 창의적 교수 학습법에 의해서 이뤄진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역사적 사색과 사유를 통해 문화 창조 역량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역사교육학계가 주장하는 다양성 존중 가치보다, 국가가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역사 교육의 목표가 갖는 본질적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특정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해석은 역사학의 영역이다. 역사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정체성 확립에 있음을 부정하고 진영 논리에 빠져 이념적 잣대로 역사교육을 정치투쟁 도구화하는 오류를 계속한다면 우리는 역사교육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다.
양심 있고 지각 있는 역사학자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이제는 국사교과서의 발행 형태를 놓고 논쟁하는 것을 그치고, 한국사 교육시간을 통해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재미있게 역사적 사색과 사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발전적 토론과 협력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