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해석은 그 차이가 천지차이다.
위의 내용을 해석하는 경우 대체적으로 국어사전적 의미로 해석함으로 이미 다 알고있는 대로니까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고 결론적으로 정의한다면 국어사전적 해석은 들을 귀가 없는 자의 해석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위의 내용의 전반적인 의미는 7과 12의 설명이다.
그 의미가 두 예화로 설명하는 내용 중 "망대"로 "7'을 설명하시고, "임금님의 전쟁이야기"가 "12"의 설명이 요점이다.
물론 성경의 모든 부분, 특히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 중 거의 해석이 난해한 내용으로 국어사전적이 의미로는 해석이 안되는 내용들이 7과 12에 대한 말씀이고, 특히 7에 대한 말씀이 많은 것이 복음서이다.
( 마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12바구니)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7광주리)을 기억지 못하느냐)
*7=(살아있을 때 완성하는 구원)=77절=초실절=성령=임무감당
*12=(죽은 후 받는 완전한 구원의 영광)=144규빗 성곽=신부
만일 26절 말씀처럼 국어사전적 의미로 해석하여 부모형제를 예수님과 비교할 때 문제가 되어 버려야 한다면 기독교는 지탄받아 마땅한 종교이다.
물론 부모라도 예수님의 일을 할 때 문제가 되면, 일시적으로 관계가 소원해지는 상태로 유지될 수는 있지만, 긍국적으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으로, 이를 범하고는 아무리 큰 일을 했다고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
이 내용의 부모 형제의 의미는 어학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상징적인 언어로서 들을 귀가 있는 자만이 알 수있는 언어로 곧 욕구를 뜻하는데, 26절에서는 두 가지가 빠졌지만 33절에 "모든 소유"로 말씀하시므로 네 가지가 다 들어간 상태로 말씀하시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부모, 자식(4편안욕구) 형제, 자매(2명예욕구) 집(3권력욕구) 전토(1물질욕구)
http://www.god-walk.pe.kr/4대%20욕구.jpg
그러므로 이것들을 버리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일 뿐, 제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방법론이 망대 예화로써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기초(창세기에 있는 상징적인 언어)를 튼튼히 세우고 한단 한단 벽돌를 쌓아 망대를 세우되, 될 수있는 한 높게(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깊은 의미까지(살과 피에서 피까지) 즉, 포도주에 취하듯이 성령에 취함까지 감으로써 7을 완성하는 제자가 되는 길이고
그 다음 임금의 전쟁과 같이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있는 군사를 확보하는 믿음이 완성을 될 때, 어린양혼인잔치의 신부(144)가 될 수있다는 말씀으로써, 바로 들을 귀가 있을 때 이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