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금부터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 것인가를 법문하겠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의미(뜻)가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마음을 기르는 것입니다.
수행은 마음이 하는 일로서 사람마다 누구나 다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좋은 마음도 있고 나쁜 마음도 있습니다.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 중에서
좋은 마음들과 바른 마음들을 자꾸자꾸 길러나가는 것을 수행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앉아서 어느 한곳에다가 집중만 한다고 해서
그것을 수행한다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집중한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수행한다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수행하는 마음에 바른 마음이 있고 법다운 마음이 있을 때라야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앉아서 집중만을 한다고 해서 수행한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에 탐/진/치로서 수행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하는데 있어서
사띠, 사마디, 위니아, 신심, 지혜, 이 5가지를 키워나가는 것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수행을 했다고 한다면
이전보다도 훨씬 더 마음이 좋아져야 되고 나아져야만 됩니다.
수행 하는 것도 바르게 되어야 할뿐더러,
반드시 이전보다는 좋아져야 되고 바뀌어져야만 됩니다.
수행하는데 있어서 견해가 바른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견해가 어떻게 하면 바르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힘을 쓰거나 억지로 애를 써서 수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너무 힘을 써서 애쓰는 것보다는 지혜롭게 수행하는 것을 원합니다.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2가지 방법이 있는데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그것입니다.
지혜를 얻기 위하여 수행 하는 것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 2가지가 있습니다.
사마타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위빠사나는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을 주목적을 삼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지혜가 나기를 원하는 것인가,
고요해 지기만을 원하는 것인가는 서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견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사마타를 하든,
위빠사나를 하든지 간에 2가지가다 대상 쪽과 마음 쪽을 보는데
사마타는 대상 쪽에 유의를 하는 반면,
위빠사나는 마음 쪽에 유의를 합니다.
사마타는 한 대상에다가 집중을 하지만,
위빠사나는 많은 대상, 여러 대상들을 봐야만 됩니다.
왜냐하면
위빠사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많은 대상을 알아야만이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마타는 되게 하기 위하여 많은 애를 써야 되지만,
위빠사나는 지혜를 내기 위해서 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그냥
단지 일어나는 대로 보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그리고
사마타는 개념적 대상,
즉
빤냐티를 대상으로 봐야 되지만,
위빠사나는 실재로 있는 법의 이치를 보기 위해서 수행하기 때문에
실재로 있는 것을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사띠가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고
‘대상’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대상이란 앎을 당하는 것,
(내가) 알아차려지는 것,
알아지는 것들, 알 수 있는 것들... 이러한 것들을 다 대상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에게 대상은 6가지가 밖에 없습니다.
6가지 이상은 없습니다.
그것은 ‘안이비설신의’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말합니다.
6근에서 일어나는 ‘색성향미촉법’이 대상이 됩니다.
마음에서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이 6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재로 있는 대상입니다.
빤냐티,
개념적인 대상은
마음이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을 해서 만든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이건 무엇이다,
저건 무엇이다라고 이름을 정해 놓은 것들은
빤냐티, 개념적인 대상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대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데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알아둬야만 합니다.
대상이라는 것은 앎을 당하는 것,
(내가) 알아차려지는 것들, 알 수 있는 것들은 다 대상입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고,
앎을 당하는 쪽은 다 대상인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것은
6가지 대상으로 하여금 사띠사마디, 지혜가 생겨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6가지 대상을 통해서 로바, 도사, 모하(탐진치)가 일어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이든,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든지간에
누구나 이 6가지 대상은 다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
즉 수행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사띠사마디, 지혜가 생기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6가지 대상으로 하여금 탐진치가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대상은 키워나갈 필요는 없고,
단지 내가 키워 나아가야할 것은 사띠사마디, 지혜를 키워나가야만 됩니다.
이 6가지 대상들은
내가 키워나갈 필요가 없이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항상 있는 것입니다.
내가 키워나가야 할 것은
아직 좋아지지 않은 사띠,
아직 좋아지지 않은 사마디,
아직 좋아지지 않은 지혜를 키워나아가야만 됩니다.
더욱 좋아지도록 그렇게 키워나가는데 있어서
너무 힘을 써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행하는 시간은
아침에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가
수행하는 시간입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힘을 써서 애를 쓰게 된다면 하루 종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너무 집중하지도 말고,
억제하지도 말고, 되게 하려고도 하지 말고,
억지로 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일어난다고 해서 억지로 만들어서도 안 되며
일어나는 것을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단지
일어나는 것을 일어나는 그대로 알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그냥 단지 일어나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서 지혜가 생겨나도록 하기 위하여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힘을 써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너무 집중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집중을 할 것 같으면 벌써 이미 탐진치가 들어가 버립니다.
그리하여
탐진치로서 수행할까봐서 너무 집중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탐심과 진심으로 수행을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수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원하게 되면 힘을 써서 하게 되고,
원하지 않을 때에는 못마땅하여 억지로 없애려고 합니다.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애를 써서 뭔가 의기소침하고 힘을 얻지 못했을 때에도
그것을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억지로 만들기 위해서...
한국 사람들한테 너무 애써서 집중하지 말라고 하면
그건 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워낙 뭘 했다하면 잘하려고 애를 써서 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차분하고 꾸준하게 그대로만 해 나아가십시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게 수행하지는 마십시오.
수행하는데 있어서 몸과 마음에 힘이 든다면
뭔가 하나 잘못되어 있습니다.
수행하는 것이 편안할 것인가,
괴로울 것인가,
수행을 바르게 한다면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해져야 됩니다.
수행을 해서 몸이나 마음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잘못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어떻게 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나는 것을 배우기 위해,
관찰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와서 수행하는 것이
뭔가 법을 얻기 위해서 수행 하지는 마십시오.
단지 어떻게 수행하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바르게 수행할 줄 알기 위해서
수행을 한다라고 하십시오.
탐심으로 수행할까봐서 내심 걱정이 될 뿐입니다.
바르게 수행하고 있다면
내가 수행하는 만큼은 이미 얻고 있는 것인데
더 자꾸 얻으려고 애쓰지는 마십시오.
수행기간이 짧다고 하여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뭔가 많은걸 얻기 위하여
탐심으로 수행 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금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아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지금 앉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각자가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한가?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줄을 알고 있는가?
그럼 또 다른 건 뭘 알고 있는가?
자기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된 것입니다.
알 것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지금 따뜻하다는 사실을 아는가?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손이 닿아 있고, 엉덩이가 닿아 있고... 이렇게 몸이 닿아 있는 것들을 아는가?
아주 특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보이는 줄을 아는가?
지금 물어보니까 ‘예’ 하고 대답은 하지만,
묻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 보이는데도
보이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아주 많이 있는데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물어보니까
그때서야 내가 알려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사띠를 두었을 때라야 압니다.
‘사띠’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인데,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림 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을
사띠라고 말합니다.
사띠란,
아는 것 하나만을 가지고 사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을 잊지 않는 것,
이 2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바르게 생각 하는 것을 잊지 않고,
바르게 말하는 것과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지,
잘못된 것이나 나쁜 것을 잊지 않는 것을 사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과 바른 것을 잊지 않는 것을
사띠라고 말합니다.
바른 대상을 잊지 않는 것,
몸과 마음,
즉 물질과 정신을 알아차림 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을 사띠라고 합니다.
조금 전에 보이는 줄 알고,
들리는 줄 알고, 닿은 줄 알고...
이렇게 할 때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힘을 써야 했는가,
아니면
애를 써야 했는가,
어려웠던가,
힘들었던가?
그냥 차분하고 편안하게 알 수 있습니다.
힘은 아는 정도의 힘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 정도의 힘으로 하루 종일 꾸준하게 아는 것,
아는 것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힘써서 할 필요는 없고,
계속적으로
꾸준하게 수행해 나가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시간마다 항상 알아차림 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가속도가 붙어서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아도
항상 알아차림을 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데 있어서
너무나 알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만 하면 알아지게 됩니다.
내가 지금 뭘 알고 있지?
뭘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만 할 것 같으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지금 왼쪽 귓밥이 어떤가 하고 생각을 하번 해 보십시오.
그러면 저절로 마음이 귓밥으로 갈 것입니다.
지금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가.
귓밥에 어떤 느낌이 있는가 하고 지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또
지금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가 하고
허리 쪽을 생각하게 되면 마음이 어디에 가 있습니까?
아래 발을 생각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왼쪽 발인가?
오른쪽 발인가?
왼발을 잘 쓰는 사람은 왼쪽으로 마음이 갈 것이고,
오른발을 잘 쓰는 사람은 마음이 오른쪽으로 갈 것입니다.
*
해야 할 것은,
내가 생각만 해 주게 될 것 같으면 사띠가 그리로 갈 것입니다.
그렇게
자주 내 자신이 어디에 뭐가 어떤가 하고 생각을 해 줄 것 같으면
사띠가 저절로 그 쪽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대상은 6가지가 있으니 어느 대상부터 알아차림을 하든지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들숨날숨 할 때 코를 보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배호흡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어디를 보든지 간에 그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을 보면 됩니다.
코가 더 좋든지 배가 더 좋든지 아무것도 좋은 것은 없습니다.
어떤 대상도 다~ 대상일 뿐입니다.
더 좋은 대상은 없습니다.
어떤 대상이든지간에 사띠를 둘 수가 있고
거기서 사띠를 키워 나갈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 한데 가장 쉬운 대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알아차려나가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상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대상을 보도록만 하십시오.
그래서
너무 집중하지 말고 항상 서띠로서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이 2가지를 잘 기억해 둬야만 됩니다.
수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견해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봐야 할 것은 몸과 마음입니다.
그래서
몸에서 일어나는 것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몸에는 덥고, 차갑고, 딱딱하고, 부드럽고... 하는 느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덥고, 차갑고, 딱딱하고, 부드럽다고... 하는 느낌들이 사람입니까?
그것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연의 이치 일 뿐입니다.
그것을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고,
하나의 원리, 법의 성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대상’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앎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다~ 법의 이치, 자연의 이치, 대상이라는 것을...
몸은 몸일 뿐이고,
마음은 마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될 뿐입니다.
이 몸과 마음은 나의 몸도 아니고,
나의 마음도 아닙니다. 그
저 자연의 이치로서 생겨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냥 하나의 대상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그것을
사람이다, 중생이다, 너다, 나다, 개인이다라고 생각 하지 마십시오.
그저 자연의 이치일 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뭔가 속상해 본적이 있습니까?
내가 속상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더욱 속상해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 잘못된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 나의 마음, 내가 속상하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런 것입니다.
마음은 마음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누구나 다 있는 것입니다.
이 몸도 그냥 몸일 뿐입니다.
그것 또한 누구한테나 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일 뿐입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것,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모두 다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할 것 같으면
바른 견해가 됩니다.
어떠한 대상도 나쁜 대상은 없습니다.
그저 다 법의 이치에 속할 뿐입니다.
어떤 대상이든지간에
사띠사마디, 지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른 견해가 됩니다.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견해가 바르게 되면 저절로 고요해집니다.
그럼
소리가 방해되는 것인가?
소리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소리는 단지 대상일 뿐이고 자연의 이치일 뿐입니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좋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쁘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좋다고 생각할 것 같으면 내가 좋아하게 되니까 자꾸 집착을 할 것이고,
나쁘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자꾸 밀쳐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대상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소리가 전혀 없다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소리가 크게 나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소리가 크게 나면 나쁘고
조용하다면 좋은 것인가?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면
좌선할 때마다 항상 도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소리가 크게 나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고 사람들 한데 물어보면,
어떤 사람들은 좋아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두렵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 소리가 아주 싫어서 내치고 싶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밀쳐낼 것도 아니고,
싫어할 것도 아니라는 이치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단지 시끄러운 소리일 뿐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으면 될 뿐입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많이 일어나거나 적게 일어나거나 하는 것도
좋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생각은 생각일 뿐입니다.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큰 소리가 나거나
생각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생각이 많고 적은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을 적어지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그것을 알면 될 뿐입니다.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이 적을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생각이 많이 일어나는구나하고 안다면
그것은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제 일을 제가 하느라고 일어나는 것이고,
나는 내 일을 하면 될 뿐입니다.
알아차리는 일...
그렇다면
생각이 많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속상해 할 것인가,
아니면
아는 것에 대해서 기뻐할 것인가?
생각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내가 과거에 지어 놓은 것의 결과로서 나온 다는 것일 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어나는 것을 안 일어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르게 생각하여 사띠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바른 견해로서 생각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에 대해 알아차릴 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서
소리나 생각. 통증, 아픈 것도 다 자연의 이치다,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예를들어
다리가 아플 때에도
아픈 것이 사라지면 다리까지도 없어지던가요?
없어지지 않는다면
다리가 아프다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픈 것은 아픈 것일 뿐이고 다리는 다리일 뿐입니다.
그것은 서로 별개의 것입니다.
더욱이 거기에다가 내 다리가 아프다고 할 것 같으면
더 못 견디게 됩니다.
조금 전에 바른 견해로서 생각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픈 것은 아픈 것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아픈 것도 알 수 있는 것이고
아프지 않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아픈 것이든 아프지 않은 것이든 다 자연의 이치이다,
대상일 뿐이다라고 생각하십시오.
*
*
_(통역:청현스님/정리:사사나스님/워드:지정스님)_
|
첫댓글 위의 사야도법문이 다소 길지만, 처음수행하려고 하는 여러~분들이나, 쉐우민센터에 가서 수행하려는 분들께서는 한번이상 숙지하고 가시면 매우 유익할 듯 싶습니다. ~~^ ^*
감사합니다.......꾸벅
감사합니다..... 두손모음..()..
고맙습니다 아픈것은 아픈것이고 다리는 다리다 가슴에 확 들어 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두~사두~사두
~~!!
_()_
감사합니다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