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쉐우민 큰 사야도 법문:
‘씨앗이 나쁘면 나무는 크게 자라지 못하는 법’에 대한
댓글모음입니다.)_
{댓글 Ⓐ}
< '압빠마데나 쌈빠데따'>..
종일 무얼 위해~
누굴 위해~ 바쁠 것인가?
머리에 붙은 불 끄듯이..
경책하는 말씀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매 순간 무엇이
나를 이끌어가고 있는가?
큰 사야도의 주옥같은 법문을 대하는 순간,
그 분의 형형하신 눈빛이 떠오르며
그 공덕에 감사드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_()_
{댓글 Ⓑ}
시장에 팔려나온,
사띠의 가격을 매기면
얼마나 될까요?
()()()...
{댓글 Ⓒ}
가격.. ~^^*
수행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겐
돈을 쥐어주며 사라고 해도 사지 않을 값이고..
수행의 잇점과 필요성이 간절한 이에겐
생/노/병/사의 全일생을 바쳐서라도 求해야 할
진귀한 값어치인 듯하네요.
하지만,
사띠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서 얼마나 좋아요?~^^*
싸면 싼 대로.. 비싸면 비싼 대로..
돈 있는 사람들이 다 사버리게 되면 어떡해요?~^^*
정말 사띠사마디를 위해 하루를 얼마나 투자하며 살아가는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사사나 스님의 답글
ㅎㅎㅎ~~^^*
가격으로나 매길 수 있을까요?
'알아차림(사띠) 하나만 끈질기게 사용하면 마지막엔 열반을 얻는다'고 쉐우민 사야도께서 말씀하셨듯이 열반으로 가는 티켙이라는데..ㅋ
아무나 열반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단지 道果지혜의 원인/결과에 따라 완성되는 것이기에 그저 사띠와 앎의 지혜가 함께 젖가락 2개로 꾸준히 부단 없이 갈고 닦아내야 만이 보여질 수가 있겠지요. 후~!!
'좋다'고 하면 무조건 취착해서 모으고 사두려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있어도 그걸(사띠/열반)팔려고 시장에 내놓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ㅎ
열반을 얻거나 찾을려고 하기 보다는 우선 먼저 아주 적게라도 Asubha(앗수바)부터 통찰적 이해가 도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이나 학문자료 등 사마타적 '不淨觀'만이 아니라 실지로 보고 아는데 있어서 위빠사나적 앗수바-좋다, 좋다라고 보지 않는 것, 뭐든지 모하로서 '좋은 것(로바)'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Dukkha(고)의 진리에 대해 이해되어야만 하는 간절함 같은 거 말입니다.
엊그제 부산엘 다녀왔습니다. 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시내의 모든 것이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깨끗한 거리, 우뚝 솟은 빌딩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Harbor.. 하얀 등대가 방파제 끝에 서있고 거대한 선박들과 갈매기들의 날개 짓이 필히 바다를 위한 무대이거나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순간들이 ‘내’가 붙어서 이미 좋다, 좋다, 좋은 거라고 막무가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영락없는 마라의 편지 글에 나오는 감관적 욕망의 세상 그대로였습니다.
부족한 것은 단 하나도 없는 듯한.. 결코 거기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지 힘들겠구나, 안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좋아, 좋아라고만 하는 '나'는 마라가 쳐놓은 그물망 속에 포획된 무지의 존재나 다를 바 없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나’라는 마음을 보니까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조건 좋아, 좋아, 좋은 거라 해서 욕망만 키워내게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상에 대한 마음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간절하고 실감나게 봐야 합니다. 아무런 이치도 알지 못한 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의 보는 마음에 의한 보이는 세계가 마라가 좋아하는 세상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보이는 대상만 보게 되면 그 대상에 이미 깊이 빠져들어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분리해서..떨어져서 보라는 것이 왜 그렇겠습니까?
깊은 땅속에서 나온 매미가 나무 등걸에 빈 허물(껍데기)만 남겨둔 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매미(나/자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빈껍데기, 허물을 뒤집어쓰고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무지개나 신기루와도 같은 게 몸과 마음의 현상입니다.
알지 못하면 그저 빤냐띠 세상(허물/빈껍데기)으로의 조건이 생겼다가 사라질 따름입니다.
~ ~
웨다나를 보면 수카(Sukha)라는 것은 없다. 웨다나를 단지 둑카와 우뻬카로만 알 것 같으면 거기에는 지혜가 들어있다.
모든 것이 둑카라는 지혜로서 봐야 하고 모든 것이 우뻬카라는 지혜로서 봐야만 한다. 수카라고 하면 벌써 잘못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수카(즐겁다/좋다), 둑카(괴롭다/싫다), 우뻬카(무덤덤/좋지도 싫지도 않은)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다 빤냐띠이다.
알아야 할 것은 웨다나의 특성, 느낄 줄 아는 특성을 알아야만 한다. 느낄 줄 아는 성질을 알면 둑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때는 우뻬카의 지혜로서 보게 된다.
위빠사나의 지혜가 자주 생겨야만 한다. 이렇게 생긴 지혜가 나중에 저절로 도와 과의 지혜로 가게 된다.
보는 마음이 지혜로 바뀌면 대상도 바뀌게 된다. 물질과 정신의 빠라마따가 닙바나의 빠라마타로 바뀌어진다..(사야도 법문자료 중에서)
사두사두사두~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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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사두ㅡ사두ㅡ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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