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584]이백(李白) 〈산중문답(山中問答)
〈산중문답(山中問答)〉
- 이백(李白)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 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 심자한)
挑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 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 비인간)
무슨 연유로 푸른 산에 기거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기만 하고 답을 하지 않겠지만, 마음은 한가롭네.
복숭아 꽃은 흐르는 물에 떨어져 아득히 흘러가니
다른 세상이로되, 인간 사는 곳이 아니로구나.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별천지에 인간 세상이 아닐세
중국 성당기(盛唐期) 낭만주의 시인 이백(李白)의 한시.
당(唐) 시인 이백의 한시로, 《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에 실려 있다.
시제가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으로 되어 있는 판본과
제1구가 ‘問余何意棲碧山’으로 되어 있는 판본이 있다.
보통 칠언절구로 분류되며, 1,2,4구의 마지막 글자,
즉 山(산)·閑(한)·間(간)이 운자(韻字)들이며,
4 ·3으로 끊어 읽는다. 이 시를 근체시(近體詩)의 율격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칠언고시로 분류하기도 한다.
도교가 유행하던 중국 진(晉) 때 도연명(陶淵明)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소재를 취했다.
속세를 벗어나 자연 속에 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낭만주의적 경향의 시이다.
제3,4구는 《도화원기》 중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도화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별천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인
도원경을 그린 것으로서,
제1구의 물음,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는 속인의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기도 하다. ‘別有天地非人間’이 단순히 경치가
아름다운 것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높은 경지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는 세속을 벗어나 자연 속에 은둔하는 한가로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2구 ‘笑而不答心自閑’에 잘 나타나 있다.
‘笑而不答’과 ‘心自閑’은 각기 별개의 의미를 지닌 두 말이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시적 분위기를 고취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에 대한 동경과 낭만주의적 경향은
젊어서 도교에 심취했던 작가의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
이백의 시에서 자주 보이는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山中)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가 되고 있다.
이백은 중국 성당기의 시인으로 자(字) 태백(太白),
호(號)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불리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고도 한다. 당대 낭만파 시인의 제1인자로서
안사의 난 이전의 당대 시정신을 집대성한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천재적인 시인 이백은 원래 정계에 투신하여
자신의 포부를 일거에 크게 펼쳐 보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25세부터 42세까지 호남, 강소 등을 유람하는 생활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황제에게 연결시켜 줄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742년(천보 2년) 당현종(唐玄宗)의 여동생 옥진(玉眞)공주를 통해 당현종에게 발탁되었다.
당현종은 그를 중용하긴 하였으되, 이백의 야망과는 달리 정치적인 동반자가 아닌
오락의 동반자로 중용했다. 아마도 이백에게서 정치적인 재능이나
그릇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백의 직책은 한림대조(翰林待詔) 중의 시문대조(詩文待詔),
즉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다가 부름이 있으면 달려가 황제와 시문으로써 오락을 함께하는
일종의 어용문인(御用文人)이었다. 이는 황제의 조서를 기초하는 한림학사(翰林學士)와는
천양지차가 있는 직책이었다. 정치적 포부를 펼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이백은
마음에 가득한 불평과 불만을 술로 풀었는데, 황제의 부름을 받을 때마다
술에 취해 제정신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도
거침없이 시문을 지어 내는 그의 문학 재능을 아끼고 사랑했던 현종은
이백에 대해 아주 관대했다. 이백은 햇수로 3년 후인 744년(천보 4년) 당현종의 곁을 떠났다.
〈산중문답〉은 이백이 당현종을 떠난 후에 지은 시로,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소박하면서도 도가적인 풍류가 스며 있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