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성적 증명서 폐지는 모두가 공정한 문화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 없음)
체육특기자가 팀 성적대신 개인의 역량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가 열린다. KFA는 2월 초 보도자료를 내고 체육특기자의 대학입시 개선을 위한 팀 성적증명서 발급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개인 기량이 좋음에도 팀 성적에 따라 진학 기회가 갈리는 불평등을 없애고 조금 더 투명한 대학입시 제도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이 같은 조치가 한국 유소년 축구, 특히 고등리그와 대학축구 U리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ONSIDE가 짚어봤다.
팀 성적 위주의 현 체육특기자 입시제도가 체질 개선에 나선다. KFA는 올해부터 고등리그의 팀 성적증명서 발급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개인실적증명서만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2022년부터는 모든 전국대회의 팀 성적증명서 발급이 폐지된다.
KFA는 팀 성적증명서를 폐지하는 대신 개인의 축구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개인실적증명서에 기재할 계획이다. 현행 개인실적증명서에는 경기 수, 출전시간, 입상내역만 표기되는데 바뀌는 개인실적증명서에는 선수 기량을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자세하고 정확한 데이터가 들어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영상분석시스템도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올해는 시범운영 기간으로 고등리그 일부 경기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이동거리, 패스성공률, 볼 차단 및 크로스 횟수 등 경기별 선수 데이터를 측정하고 관리한다. 2021년에는 고등리그가 펼쳐지는 경기장 중 90%의 경기장에, 2022년에는 고등리그 전 경기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모든 경기를 분석할 예정이다.
개인의 기량과 가능성보다 팀 성적이 우선시되던 기존의 문화를 뒤집는 의미 있는 시도다. 이 같은 시도가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KFA를 비롯한 고등축구와 대학축구의 구성원들이 가감 없이 의견을 공유하고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건 물론이다. 팀 성적증명서 단계적 폐지가 불러올 나비효과는 어떤 모습일까?
팀 성적 위주의 입시제도, 모순은?
팀 성적증명서 단계적 폐지가 나온 배경은 결국 모순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기량을 더 발전시키고 강한 경쟁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 고등학교 축구선수들이 입시를 위한 팀 성적에 매몰돼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현상을 방지하는 것이다. 건전한 경쟁문화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현장지도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선수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행 체육특기자 입시제도는 감독이 아닌 교수가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기량 대신 팀 성적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김종윤 KFA 대회운영실장은 “2014년부터 체육특기자의 선수 선발 주체가 지도자가 아닌 교수 위주로 바뀌었다. 교수들은 축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팀 성적 위주로 선수 선발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좋은 가치라면 계속 유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현장 지도자들은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 성적이 입시에 주된 체크 포인트가 될 경우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강팀과 맞붙는 환경을 피하려는 문제가 생긴다. 김종윤 실장은 “고등학교 연령대는 강하게 경쟁하고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입시 때문에 ‘강 대 강(강한 팀 대 강한 팀)’으로 붙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 그 환경을 탈피해보자는 게 이번 팀 성적증명서 단계적 폐지의 출발점이다. 축구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축구는 결국 감독과 선수가 만들어내는 팀 스포츠다. 팀 스포츠는 단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며 오랜 기간 동안 호흡을 맞추고 기량을 끌어올려야 가능하다. 물론 개인의 발전도 여기서 비롯된다. 팀을 위해 강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으면 개인의 기량은 저절로 상승된다. 김종윤 실장은 “지도자는 선수를 뽑을 때 자신의 축구 철학과 맞는 선수를 뽑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 부분이 빠져있다. 공정성만 담보되어 있는 상황이다. 팀 스포츠를 위한 선수 선발에는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팀 성적을 통째로 무시한다는 건 아니다. 김종윤 실장은 “대학입시를 위한 팀 성적을 빼는 것이지 고등학교 팀이 각종 대회에서 거둔 성적을 전부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 실적증명서에는 이전과 다르게 선수 기량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가 들어간다. (*사진은 내용과 관련 없음)
기회의 불평등 해소
명문 팀의 선수는 무조건 진학이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깔리면 자연스레 기회의 불평등이 생긴다. 이 같은 불평등으로 인해 진학을 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축구를 그만두는 사례도 발생한다. 명문 팀으로 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건 물론이다. 축구의 본질을 벗어난, 이래저래 악순환인 셈이다.
이낙영 서울중앙고 감독은 팀 성적증명서 단계적 폐지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우수한 팀에서는 많은 선수가 대학도 진학하고 프로에도 간다. 하지만 중하위권의 팀에도 가능성 있는 선수는 많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다음 과정으로 가기 위한 기회를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상위권 팀 선수가 기량이 부족해도 대학 진학을 할 수 있고, 중하위권 팀 선수는 기량이 우수해도 대학 진학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보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할 때 자신에게 맞는 팀에 가서 뛰는 것보다 경기를 뛰든 안 뛰든 무조건 성적이 좋은 팀에 가서 실적만 채우려는 현상이 생긴다.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역량을 키우는 것에 목적이 맞춰져야 하는데 오로지 입시에만 기준이 맞춰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때 성장이 늦더라도 고등학교에 올라와 빛을 발하는 경우는 충분하다. 모든 선수들이 고른 기회를 얻어야 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선수 선발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현장의 생각이다. 정재권 한양대 감독은 “현재로서는 선수 선발에 있어 감독이 관여나 개입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선수의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뽑아달라고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과거 통진고 감독을 역임했던 김정찬 성균관대 감독도 “감독이 선수 선발하는 데 있어 100%의 권한을 가진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은 갖춰져야 한다. 팀의 색깔을 만드는 건 지도자이기에 이 점을 분명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종윤 실장은 “고등학교, 대학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을 때 예전처럼 선수 선발권을 달라고 하는 의견도 있었고, 그게 안 되면 주된 포지션은 지도자들이 뽑을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과거에 불거진 입시비리 문제 때문에) 정부나 대학 당국에서 지도자에게 선수 선발권을 주려는 움직임은 없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정량적인 지표와 정성적인 지표를 만들고 여기에 전문가의 자문을 필요로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량적인 지표는 숫자로 볼 수 있는 것들을 뜻한다. 출전 횟수, 득점 수, 우승 횟수 등은 교수들도 볼 수 있는 데이터들이다. 하지만 정성적인 지표는 계량이 힘든 것들을 이야기한다. 선수의 패스 질, 슈팅 정확도 등 전문가, 즉 감독이 봐야만 판단 가능한 지표들을 뜻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KFA는 고등리그 경기장에 단계적으로 카메라를 설치해 정량적인 지표와 정성적인 지표를 모두 수집하고 이를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김종윤 실장은 “올해 제일 핵심적인 것은 다양한 지표를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와 KUSF(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정부와 연계된 전문가 등이 모여 그룹을 형성하고 좋은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2년간은 시범운영 기간이라 팀 성적 위주로 적용되겠지만 점차 선수별 데이터를 비교하고 가중치를 주며 자신들이 원하는 선수를 뽑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공정한 문화
KFA가 단계적으로 팀 성적증명서 발급을 폐지함에 따라 KUSF는 각 대학이 대입 사전예고제 일정에 맞춰 대입 전형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권고하기로 했다. 또 KFA와 KUSF는 대학별 체육특기자 선발 과정에서 개인 경기 실적이 반영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 김종윤 실장은 “팀 성적으로만 진학이 결정될 경우 여러 가지 폐단이 있을 수 있으니 개인 지표를 포지션별로 구체화시켜 많은 영상 데이터를 양산하는 것이 현 정부의 방향성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기대와 당부의 분위기가 섞여 있다.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모두가 조금씩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다. 정재권 감독은 “앞으로 선수의 영상 데이터를 대학교와 개인이 모두 제공받을 수 있게 됐는데 이를 더 세분화해 추후에 KFA가 입시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했으면 좋겠다. 지표를 활용하는 기준 등을 모두가 수긍해야 앞으로 입시제도에 잘 반영이 될 수 있다. 서로 데이터를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이낙영 감독은 “개인의 실적이 많이 누적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프로 산하 유스팀이 아닌 일반 학교 팀에서도 연령별 대표팀 선수가 나올 수 있다. 팀의 이름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 기량으로, 해당 선수가 1학년 때부터 자기 포지션에서 높은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제대로 체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축구 꿈나무들이 불평등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어른들에게 주어진 분명한 숙제다. 과거의 모순을 되풀이하지 않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의미가 있다. 김종윤 실장은 “현 입시제도가 40점이라면 앞으로 75~80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개선을 거듭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이야기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3월호 ‘YOUTH FOOTBALL‘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ONSIDE 3월호 보기(클릭)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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