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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역사소설]
다대포(多大浦)를 구슬피 떠도는
임란진혼곡(壬亂鎭魂曲)
[제4회]
세 영웅의 조우(遭遇)
1
산천이 마냥 푸릇하기로 옷깃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금방 녹색물감이 묻어날 것 같은 화창한 날이다. 파란색으로 곱게 물든 청명한 하늘엔 하얀 조각구름들이 둥둥 떠 있고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다대포 앞바다 수평선도 점점이 박힌 섬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날씨가 쾌청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지난밤의 잔혹한 꿈마저 잊고 기분은 날아갈듯 가벼워졌다. 문득 ‘사람의 마음이 이렇듯 간사할 수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대포진에서 동래부까지의 거리는 대략 50리 길이다. 가까운 거리라 할 수는 없지만 부지런히 말을 달리면 한 시진이면 너끈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꾀만 부리려드는 약아빠진 늙은 말을 독촉하여 다대포구를 벗어나자 꼬불꼬불 좁은 오솔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자연히 말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길 양쪽으로는 취나물 상추 시금치 쑥갓 등 갖가지 푸성귀를 심은 손바닥만 한 밭들이 빈틈없이 촘촘히 들어섰고 그들 밭고랑엔 듬성듬성 엎디어 정신없이 돌멩이를 걷어내고 잡초를 뽑아내는 등 농부들의 부지런한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잠깐 동안이지만 억척같이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늘 굶주리기만 하는 가엾은 백성들을 떠올렸다.
오솔길을 거의 벗어나 장림리 초입에 다다를 즈음 잠시 말을 멈추었다. 좌측으로는 보덕포가 보이고 그 너머 망후촌에 이르도록 제법 너른 녹색 평야가 시원스레 펼쳐졌다. 시선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허리까지 차오른 흙탕물속에 내외로 보이는 두 늙은 농부가 알몸 상태로 한창 수확을 걷어 들이고 있는 미나리 광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미나리를 채취하여 단으로 묶은 다음 둑에 내다 쌓고 있었다.
“허…, 아직까진 물속이 꽤 차가울 텐데 저들은 춥지도 않은가?”
차가운 물속에서 알몸으로 일하는 그들에게 관심이 쏠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손가락 굵기 만한 시커먼 것들이 몸에 잔뜩 달라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웬 놈의 검불이려니 했다. 그런데 검불도 아니요 물때도 아닌 것이 그들 몸에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징그러운 거머리들이 잔뜩 붙어있는 것이다.
나 딴에는 나 스스로를 매사에 대범하다 여겨왔다. 첩첩산중에서 멧돼지나 호랑이를 만났을 때에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북방 오랑캐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에도 전혀 두려움을 몰랐다. 그런데 의외로 흉측하거나 징그럽게 생긴 벌레들은 무섭기도 하고 싫었다. 지네나 노래기는 물론 굼벵이도 혐오했고 지렁이나 거머리도 싫어했다. 어렸을 땐 힘으로는 나에게 늘 당했으면서도 내가 벌레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안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다대포진으로 부임한 이래 주민들이 가져오는 괴불이나 멍게 해삼 등 어찌 보면 괴상망측해 뵈는 해산물들에 친숙해지지 못함도 그러하다. 그런 얄궂게 생긴 거머리들이 몸에 잔뜩 붙어있음에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거머리가 정녕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문득 호기심이 일어 말에서 뛰어내려 농부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시게. 잠시 물에서 나와 보시게.”
농부 내외는 황망히 허리까지 차오른 흙탕물을 헤엄치듯 텀벙대며 물 밖으로 나왔다. 쉰이 넘어 육순 가까이 되어 뵈는 늙은이들로 오돌 오돌 떨면서 그의 앞에 엎드렸다. 치부만 겨우 가린 알몸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이었다.
“둘 다 일어나 보시게.”
농부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시선을 떨어뜨린 채 말을 더듬거렸다.
“나으리, 지들이 뭔 잘못이라도….”
“아니야. 벌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겁부터 내지 마시게.”
“그럼, 뭔 일로….”
“자네들 몸에 붙어있는 거머리를 보고자함일세.”
“아, 예….”
“둘 다 이리 가까이….”
내 손짓에 따라 농부가 다가서고 그의 마누라도 수줍다는 듯 농부 뒤로 몸을 숨겼다. 거머리들은 그들 내외의 어깨며 등짝이며 허벅지며 사타구니 등 온몸 곳곳에 흡사 검은 혹처럼 달라붙어있었다.
나는 길섶에서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그들 몸에 붙어있는 거머리들을 한 마리씩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의외로 거머리는 그 주둥이의 강한 흡착력 때문인지 쉽사리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농부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 악착스런 거머리들을 시원스레 뚝뚝 떼어냈다. 거머리를 떼어낸 자리는 불그스레한 반점이 남아있었다. 나뭇가지로 떼어낸 거머리들을 하나하나 한 곳으로 모으고 그 수효를 일일이 세어보았다. 그들 두 사람으로부터 떼어낸 거머리는 모두 마흔아홉 마리나 되었다. 땅위에 모여진 거머리들은 공처럼 부풀려졌고 그들 몸에서 빨아먹은 피로 통통하게 살쪄보였다.
“거머리가 물면 아프지는 않던가?”
“물론입죠. 갬객이 전혀 엄씸니다요.”
“그래? 흠….”
내 시선은 사타귀를 살짝 가린 낡은 천 조각을 비집고 드러난 농부의 양물(陽物)로 쏠렸다. 뼈만 남은 주인의 몸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굵고 기다란 양물이라 말의 것을 연상케 했다.
“쩝, 가리려면 제대로나 가릴 것이지….”
내가 나뭇가지로 양물을 툭 건드리자 농부는 겸연쩍다는 듯 ‘헤헤’ 거렸다. 아낙네도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구분이 안 가기론 마찬가지였다. 말라서 가죽만 축 늘어진 젖가슴은 굵고 시커먼 대추알만한 유두의 무게로 더 늘어진 듯 보였다.
“고간(股間)도 살펴보시게.”
“고간이랍쇼?”
“고간도 모르나? 샅 말일세.”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농부에게 아낙네를 가리켰다. 어디든 달라붙는 거머리가 여자의 질(膣)속인들 들어가지 말란 법이 없다 여겨 살펴보란 얘긴데, 과연 아낙네의 질속을 살피던 농부가 거머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떼어내어 내게 자랑스레 보였다.
“엔간하구먼. 자네 두 사람한테서 떼어낸 거머리가 모두 쉰 마리나 되는구먼. 그렇게 거머리들한테 피를 다 빨리면…, 아무리 잘 먹으면 뭘 하나?”
“떼어내 봤자 소용 엄씨요. 죙일 진흙 꽝에서 일하려면 어쩔 수 엄구만요. 한두 매리도 아니고…. 아마 이 꽝에만 수천 매리도 넘을 끼구먼요.”
농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말이 곧이곧대로 믿기지 않아 흙탕물속을 들여다보니, 과연 물 반 거머리 반일정도로 물속은 꿈틀거리며 헤집고 다니는 거머리들 일색이었다. 하긴 그 더러운 흙탕물속에서 텀벙거리며 거머리한테 피를 빨리든 간에 미나리 수확을 하는 것만이 당장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2
장림리를 벗어나자 어느 길을 택해 가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망후촌을 지나 배오개를 넘고 목장리로 해서 솔티[松峙]재를 넘어 닥밭골을 거쳐 대치리(大峙里)와 임소(任所)를 통해가는 길이 조금은 지름길이나 고갯길이 워낙 가파르고 험해 굳이 말머리를 돌려 서평재를 넘고 감천 다내리(多內里)를 거쳐 송도(松島)로 빠진 다음 연대청(宴大廳)을 경유하여 가는 길을 택했다.
다내리 포구는 천마산성(天馬山城)과 서평포진(西平浦鎭)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깊숙이 들어간 감천만의 요지로 인근바다에 출입하는 배와 사람들을 검문하는 수문(守門)과 공청(公廳)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8십여 호에 6백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으나 왜구 떼가 포구 바로 앞 용두섬에 운거(暈居)하고 잦은 노략질을 일삼자 결국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케 하여 당장은 폐촌이 되다시피 했기에 간혹 눈에 띄는 민가들도 폐가로 방치되어 잡초만이 무성했다.
다내리 골박골을 지나치려는데 길섶에서 제법 덩치가 크고 살이 오른 삵 한 마리가 ‘크르르…’ 거리며 번득이는 안광으로 잠시 위협을 하더니 후다닥 도망치는 것이 눈에 띠었다. 그리고 삵이 도망친 자리에서 썩은 시체에서나 날법한 역겨운 냄새가 풍겨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치려다 보니 짚으로 대충 엮은 거적사이로 드러난 형체가 사람의 다리로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거적을 들추자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의 사체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만큼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크기나 겉 차림새로 보아 하나는 열 두엇쯤으로 보이는 계집아이였고 또 하나는 여덟쯤 보이는 사내아이였다. 두 사체 모두 들짐승들한테 대부분의 살점을 다 뜯어 먹혔고 온 몸은 개미와 구더기 떼로 바글거렸다.
“쩝… 대체 이게 뭔 까닭인가?”
그 처참한 사체를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고 사체를 이리 방치한 인간이 누굴까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춘궁기가 닥치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에서는 아이들을 내다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굶어죽은 아이들은 인근 야산에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듣기로는 다대포진영 내에서는 먹을 양식이 떨어져도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 해산물인지라 굶어죽는 일은 없다했다. 그리고 다대포진으로 부임해온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굶어죽은 이들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바 없다.
죽은 이들이 나이가 아직 어린 것으로 보아 매맞아죽었던지 병들어죽었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죽은 지 이틀은 족히 되었을 사체는 살점이라곤 어디 한구석 남아나지 않아 매 맞아 죽은 것인지 굶어죽은 것인지 병들어 죽은 것인지 식별하기란 불가능해보였다. 하물며 뉘 집 자식들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을 성 싶었다.
“제대로 묻어나 줄 것이지….”
나는 근처의 흙을 퍼다 사체들을 대충 가려주었다. 상놈들은 어린 자식들이 죽으면 매장을 하지 않고 볏짚으로 짠 멍석에 대충 감싼 다음 인근 야산에 갖다버렸다. 그렇게 버려진 사체들은 들짐승들에게 뜯어 먹히고 나머지 사체의 잔해들은 구더기들한테 먹힌다. 자식의 사체를 갖다버린 부모들은 그렇게 해야 이담에 다시 환생하더라도 새 몸을 부여받고 가문 좋은 집안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부모가 어떤 생각으로 어린 자식의 사체를 갖다버리든 간에 들짐승들이 파먹고 구더기들이 들끓는 그런 험한 꼴의 사체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 보기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내가 부임한 고을 백성들에게는 사체를 함부로 내다버리지 못하게 했었다.
3
제법 시간을 지체한데다 마음마저 조급해져 속력이라도 낼까하여 말을 다그쳤다. 그런데 늙은 말이 때론 제 주제를 망각하고 느닷없이 곤조[根性]를 부리기 예사이다. 더불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생각에 ‘옹냐, 옹냐.’ 딴엔 떠받들어주었기로 제 주인을 너무 몰랑하게 보는 까닭이다.
비룡은 내가 진천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이미 오래전부터 궁궐로 진출해있던 절친한 죽마고우 예조정랑(禮曹正郞) 조판현(趙判賢)이 모처럼 큰 선심 쓰듯 내게 보내온 말이다. 분명 잘 길들여졌을 뿐더러 체격도 우람하고 생긴 모습도 흠 잡을 데 없었다. 해서 반 농담 삼아 관운장(關雲長)의 ‘하루 천리 길을 너끈히 내닫는다’는 준마(駿馬) 이름을 본 따 적토마(赤ꟙ馬)라 명명했는데 녀석의 털 색깔은 붉은 빛이 아닌 짙은 회색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늘 적토마 같은 명마이길 바라며 그리 붙여줬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 빠르다 할 수없는 녀석이 그 이름 때문에 꽤나 조롱당하는 것이 마치 나 자신이 조롱당하는 양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비룡(飛龍)이란 이름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인데 그게 그거인 것이 비룡 또한 날아다니는 용으로서 쏜살같이 빠름을 의미하는 이름이 아니겠는가.
녀석은 적토마든 비룡이든 딴엔 제 이름값을 하려는지 지난 10년간 내게 있어 명마(名馬)와 다를 바 없었다. 속력에 있어 그다지 빠른 편이라 할 수 없어 적토마나 비룡이란 이름이 걸맞다할 수 없겠지만 변방을 떠돌 때도 말달릴 일이 크게 없는지라 느리다하여 크게 문제될게 없었다. 그러나 우람한 덩치로나 힘에 있어 녀석을 따라올 말이 없었고 게다가 주인인 내 눈치만큼은 워낙 빠삭한지라 어느 땐 녀석이 동물인지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이랴, 이랴!”
초량을 지나 부산포진을 잇는 가도(街道)로 들어서면서 너른 길이 나타났다. 너른 길로 들어서자 비룡은 마냥 신이 났던지 우레와 같은 말발굽소리와 뽀얗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뒤로 남기며 그 육중한 몸을 내닫기 시작했다.
길가 논밭에서 파종을 하던 농부들이며 질빵을 걸머지고 가던 부보상(負褓商)들이며 영문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반씩 섞인 기색으로 흙먼지가 아스라이 사라질 때까지 나와 내 말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나는 말을 달리면서 식전(食前)부터 사람을 보내어 재촉하듯 나를 급히 찾은 송상현을 떠올렸다. 침착하기론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조급함을 전혀 드러낼 것 같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본건(本件)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동래부로 급히 와달라는 전갈만 보내온 것이다. ‘웬만큼 다급하지 않고서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일까?’ 공연한 걱정에 휩싸이며 마음 또한 조급해졌다.
내가 느낀 송상현의 인물 됨됨이는 예기곡례편(禮記曲禮編)에서 ‘모름지기 군자(君子)란 많은 학식(學識)을 갖췄으면서도 늘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또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다’라 군자를 풀이한 바와 한 치도 다름없었다. 나는 송상현을 만날 때마다 그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군자로 손꼽게 되었고 더불어 존경해 마지않았다. 뿐만 아니라 생긴 모습 또한 달덩이처럼 훤한 귀골(貴骨)인데다 무예까지 익혔고 게다가 활달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문무(文武)를 겸한 인물인지라 그 누구인들 감히 범접(犯接)할 수 없는 위인이라 여겼다.
그런 그가 직계(職階)로는 정3품 당상관으로 동급이요 나이는 오히려 자신보다 여덟이나 위인 나를 버릇없이 50리길의 동래부로 불러들인 것은 송상현이 예의를 갖출 줄 모르는 방자함을 지닌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요 나름의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나는 다대포진으로 부임해온 뒤로 지금까지 두 달여 동안을 전임첨사로부터 업무인수나 현지 상황을 파악하기보다 왜군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왜군의 동향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기 위해 동래부나 부산진영,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 등을 번갈아가며 드나들어야했다. 특히 동래부를 더 자주 들렀던 것은 송상현과 의기투합(意氣投合)으로 더 각별해진 때문이며 사실 내가 동래부를 오간 것 못지않게 송상현도 다대포진을 다녀갔던 것이다.
4
나는 진천현감 직(職)에서 파직당한 이래 한직으로만 내몰려 내내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의 변방만 떠돌았다. 그러다 얼마 전 종삼품(從三品)의 도호부사(都護府使)로 회령(會寧)에 발령(發令)난지 얼마 되지 않아 올해 초 조정에서 다시 교지(敎旨)를 통해 나를 정3품 당상관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로 올려 다대포진의 첨사로 발령한 것이다. 나로서는 전혀 예기치 않았던 승진으로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다.
첨사로 부임하고 며칠 후 나보다 보름여 앞서 부산포진첨절제사(釜山浦鎭僉節制使)로 부임해온 정발을 통해 내 승진이 송상현의 강력한 천거(薦擧)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생면부지의 그가 나를 천거해준 사실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 나를 천거해준 이유가 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송상현이 다대포진을 찾았을 때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물었다.
“송 부사영감, 일면식(一面識)도 없던 나를 다대포진첨사로 천거해주심은 어쩐 일이오니까?”
“물론 윤 첨사영감을 직접 뵌 적은 없사오나 인물 됨됨이는 전부터 익히 전해 들어 알고 있었소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가 출중하며 용맹한데다 성품이 대쪽처럼 강직하기까지 하니 이에 더 바랄게 뭐가 있겠소이까.”
“지나친 과찬의 말씀이외다. 허나 그보다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만….”
“물론 다른 뜻도 있었소이다. 왜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다 부산지역 특히 다대포는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전략지역이옵니다. 다대포지역은 평소에도 왜구의 출몰이 잦은데다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섬이 바로 코앞에 놓여있지 않소이까. 왜구가 언제 도발할지 모를 긴박한 상황에서 믿을만한 사람을 추천해달라며 여기저기 알아보았더니 마침 윤 첨사영감을 거론하는 분들이 제법 있더이다.”
“부산포진첨사나 다대포진첨사라면 통상적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인 박홍(朴泓) 수사영감께서 천거하는 것으로 아옵니다만….”
“물론 박 수사영감이 직책상 좌수영 총책임자인데 응당 그리해야 원칙인줄 아옵니다. 허나….”
주위에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사람이 없음에도 송상현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이어갔다.
“제 입으로 굳이 이런 말을 꺼내게 되어 유감이오나 제 판단으로는 박 수사영감을 믿을 바가 못 된다 여겼소이다. 윤 첨사영감께서도 그동안 여러 차례 박 수사영감을 뵈어온지라 그분의 인물 됨됨이가 어떠하다고 대략은 눈치를 채신 줄로 아옵니다만, 그래서… 그 분에 대해 참으로 불충한 말씀이라 할지라도 부산지역의 해성(海城)이나 수군을 총 지휘할만한 마땅한 인물이 못되옵니다.”
나 또한 박홍을 몇 번밖에는 만나보지 못했으나 그의 인상이나 행동거지가 맘에 들지 않았다. 오만무례한데다 잘난 척을 많이 하는 속물로 비쳐졌다.
“박홍 수사께선 어떤 능력이 있을지 모르오나 제 눈으로 뵙기에도 참으로 거만하기 짝이 없더이다.”
“잘 보셨사옵니다. 다행히 조정에서는 저에게 유사시에 경상좌도의 수군마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이면적으로 부여한지라 유성룡 대감 등 조정 원로대신들께 부산포진첨사로는 정공을 다대포진첨사로는 윤공을 천거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본관도 사직을 불사하겠노라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제가 원하던 바대로 이루어졌소이다. 두 분을 뜻대로 곁에 모시게 되었으니 우리 셋이서 힘을 합친다면 그깟 왜구인들 못 막아내겠소이까.”
나는 그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송상현에게 읍하여 예를 갖췄다. 나를 천거해준 것도 고맙지만 그보다 그와 같은 인물이 나를 인정해 준 것에 대해 고맙기 짝이 없는 것이다.
“변변찮은 사람을 그리 생각해주셨다니 고맙소이다. 저 역시 송 부사영감을 뵙고 문무를 고루 겸비한데다 고매한 인품까지 지닌 것을 알게 되어 대단히 감읍(感泣)하였소이다.”
“원…, 그야말로 과찬의 말씀을 하시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저로서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을 뿐이지 송 부사영감께 아첨하려거나 듣기 좋으라고 빈말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외다. 저 역시 송 부사 영감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외다.”
나는 그때 송상현에게서 느낀 감화(感化)를 솔직히 드러내어 말했다.
송상현은 나에게 저간(這間)의 경황을 설명했다. 그는 나보다 10개월여 먼저 동래부사로 부임하였는데 동래부사청은 원래 동래도호부(東萊都護府)로서 부산지역을 관할하는 행정의 중심역할만 담당할 뿐이다. 그리고 동해를 포함한 부산일대의 해안방어와 부산인근의 해성들은 수영에 자리한 경상좌수영의 관할이다.
조정은 ‘왜국이 100년에 걸친 내전을 종식하고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뤘으며 족벌(族閥)들의 넘쳐나는 욕구불만을 해외로 돌리려한다. 그 때문인지 군사를 모으고 전함을 건조하는 등 그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라는 보고를 자주 접하다보니 은근히 부산 쪽이 걱정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데 경상좌도수군절도사 박홍의 인물 됨됨이를 보아하니 유사시 부산권 총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이 충분치 못하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때문에 그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유성룡이 천거한 송상현을 택한 것이다.
조정이 굳이 문민우위(文民優位)의 정책을 내세워 문무를 겸한 송상현을 동래부사로 발령한 것은 그로 하여금 행정 외에 유사시 경상좌수영 군사지휘를 겸하도록하기 위함인 것이다. 물론 송상현도 처음부터 동래부사 자리가 크게 내키지 않았다. 이유는 왜군이 쳐들어온다면 당연히 관문인 부산지역부터 공략해올 것이 자명한 터라 자칫 최초의 사지(死地)로 바뀔 수 있음을 간파(看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 특히 유성룡의 설득에 의해 어쩔 수없이 동래부사직을 수락했다.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래 송상현은 박홍으로부터 적잖은 실망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박홍은 그릇이 작은 소인배가 어울리지 않게 큰 감투를 얻어 썼을 때 흔히 드러내는 인격적 결함을 고루 다 갖춘듯했다. 무식함에도 제 자랑이 유별났고 지나치게 의심이 많고 소심한데다 방자하기 이를 데 없어 도무지 정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다. 거기에 더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주색잡기에 파묻혀 지내는 위인이다. 윤두수(尹斗壽)같은 막강한 서인 실력자들이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필경 그런 직책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송상현은 처음엔 그런 그에게 몇 번인가 왜구의 침략조짐을 피력(披瀝)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논했다. 그런데 그는 마냥 태평했다.
“그깟 왜놈들이 뭘 어찌하겠소? 날뛰어봐야 우물 안 개구리밖엔 더 되겠소?”
“그렇다고 방만하게 대처하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송 부사께서 그리 걱정 안하셔도 아무 일 없을 테니 너무 심려 마시오.”
“아니…, 아무 일도 없을 거라니요? 수사영감께서는 지금 왜구의 동태(動態)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도 모른 체하는 것이옵니까?”
“나도 송 부사만큼이나 왜구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소이다. 오히려 왜구의 생리(生理)에 대해서라면 내가 송 부사보다 더 잘 알 것이요. 지깟놈들이 뭘 어찌하겠다는 말이요? 우리 경상좌수영에만 병선이 일흔다섯 척에다 수군도 천이백이 넘소이다. 그 정도면 왜구도 결코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외다. 그러니 송 부사께서도 남자답게 당당히 처신하시오. 괜히 쫄아서 겁부터 자시지 말고….”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외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만일에 있을지 모를 왜환을 대비하자는 겝니다.”
“그리고 우리 뒤에는 백만 대군을 거느린 명나라가 있지 않소이까. 섬나라 쥐새끼들이 뭘 믿고 설친답디까. 다 소심함에서 나오는 기우(杞憂)올씨다.”
송상현은 박홍이 자신을 노골적으로 깔보는 처사도 그렇거니와 도무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하지 않아 더 이상 그와 담론(談論)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과 박홍은 직급이 정3품으로 엄연히 동급이요 뿐만 아니라 다대포진첨사 또한 정3품으로 동급이다. 그러나 지휘계통에 있어 다대포진이나 부산포진 등 두 진영이 경상좌수영의 지휘를 받는 수군(水軍)소속인데 반해 동래부는 전혀 별개인 행정도호부(行政都護府)로서 육군(陸軍)소속이다. 그럼에도 박홍은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즉 두 첨사는 물론이고 동래부 또한 자신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송상현에 대해서도 아랫사람 대하듯이 대하려드는 것이다. 어처구니없지만 그의 성정이 원래부터 치졸하여 그러려니 하고 괘념치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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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은 머잖아 왜구에 의한 대규모공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나름대로 군사전략요지로서의 부산포진성과 다대포진성을 지킬 수 있는 적임자를 물색해왔다. 그래서 찾아낸 인물이 나와 정발로, 우리 둘을 조정에 적극적으로 천거했던 것이다.
내가 다대포진첨사로 부임해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먼저 정발이 그리고 그 다음날엔 송상현이 다대포진영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후로 우리 셋은 서로의 진영을 오가며 수시로 어울렸다. 만나서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 셋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감이 쌓여갔다. 우리 셋 모두가 하나같이 간교하지 않은 반면에 대범한 기상을 지녔으며 꾸밀 줄 모르는 솔직한 성정도 그대로 닮았다. 거기에 왜국의 침략을 누구보다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의견을 같이 했다.
(200자 원고지 69매 분량)
- 제5회에 계속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