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아주 중요해요.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해요.”
휠체어에 앉은 한혜경 씨가 힘주어 말했다.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든 어눌한 발음. 그는 지체장애 1급의 중증 장애인이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6년 간 근무 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런 그의 입에서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장내는 숙연해졌다.
지난 12월 5일 저녁, 합정동 국민TV 지하 까페에서 열린 북콘서트 풍경이다. 지난달에 출간한 책 「위기의 삼성과 한국사회의 선택(후마니타스)」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영하를 밑도는 추운 날씨였지만 까페 안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채워졌다. 훈훈한 송년회 분위기가 감돌았다. 함께 노래도 하고 근황을 주고받으며 행사가 이어지던 중, 황상기 씨가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다.
“삼성에 노조가 없으니까요 노동자는 화학 약품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아요. 수많은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되는 거예요. 만약 삼성에 노조가 있었으면 조합원이 병에 걸려 죽게 놔두었을까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 책 「위기의 삼성과 한국사회의 선택」 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면서 북콘서트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렸다. 곧이어 초대 손님으로 온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 박주성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노조 설립 후 무엇이 달라졌냐는 질문을 받자마자 얼굴이 밝아졌다. 직원들은 참으로 많은 변화를 체감한다고 했다. 기본급이 생겼고, 점심시간을 보장 받았고, 업무 차량과 차량지원비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인격이 생겼다고 했다. 관리자의 ‘쌍욕’과 ‘개무시’에 항의할 권리가 생겼으며 그 항의를 함께해줄 동지들이 생겼다. 아직 곳곳에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고 삼성은 사업장 폐쇄를 서슴지 않는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노조 설립이 가져다 준 희망을 보아서였을까. 그의 얼굴은 금방 세수라도 하고 온 듯 산뜻하니 환했다.
삼성에 노조가 생긴다면. 결코 헛된 꿈이 아니었다. 그날 행사장에 참가한 사람들은 박주성 부지회장의 환한 얼굴을 보며 황유미 씨의 왜소한 어깨와 한혜경 씨의 어눌한 말투가 내내 눈에 밟혔을 것이다. 노조가 있었다면.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노조가 있었다면. 독약보다 더 독하다는 약품들을 맨손으로 만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노조가 있었다면. 기약 없이 이어지는 맞교대 근무는 없었을 것이다. 삼성서비스지회에 기본급과 점심시간이 생긴 것처럼.
“건강.. 아주 중요해요.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해요.”
다시 한혜경 씨의 말이 떠오른다.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문장이다. 건강은 중요하고,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제 몸 망가지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별 다른 게 없다. 함께하는 것. 내 몸을 망가뜨릴지 모를 도구와 약품들에 대해 함께 알아 나가는 것. 내 건강을 내가 돌볼 수 있게 함께 요구하는 것. 내가 내 몸을 지키는 참으로 ‘당연한’ 권리가 다시금 묵직하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 이 글은 반올림 뉴스레터팀 유지향 님이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