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올해는 모든 삼성의
임원들이 ‘진심으로’ 삼성에 의해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사죄할 것을 바랍니다. 반올림의 요구사항을 ‘온전히’ 들어줄 것을 바랍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문득 반올림 농성장에서 처음 이어말하기 손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옷차림이 강남역 8번 출구에 농성장을 차린 뒤 이어말하기 손님으로 초대되어 갔던 바로 그날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대로인데, 시간은 훌쩍 흘러간 것 같습니다.
처음 농성장이 생기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 때,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잎 들이 저마다 예쁜 옷으로 갈아입었었죠! 낙엽이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하얀 눈꽃이 피었다가 청계천의 얼음이 녹고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봄이 왔습니다. 버들강아지의 눈잎이 살며시 나오는 완연한 봄에, 모든 생명들이 활기차게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 농성장을 지키며 그렇게 반올림은 긴 기간 삼성과 싸워왔습니다. 계절이 3번 바뀌어 다시 봄이 왔지만 여기 있는 희생된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어쩌면 제가 알지 못하는, 과거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춰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멈춰 계실 것 같습니다.
삼성의 태도는 한 번도 변화된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 광고하며, 여전히 살인공장을 운영하고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이윤만을 쫓고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 왜 제가 편지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편지를 쓰지 않아서 엄청 어색하고 쭈뼛 쭈뼛하게 되네요. 사실 오늘 같은 날 편지를 써오고 그 오랜 시간 동안 힘들고 아팠을 시간들을 보낸 유족과 당사자분들께 머리를 숙여 진심으로 사죄해야할 사람은 제가 아닌 삼성의 책임권한을 지닌 임원일 것입니다.
거대한 삼성을 상대로 삼성본관 한 귀퉁이에서 이렇게 자리하고 있는 우리가 초라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몸집은 작지만 정당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자랑스러울 때가 더 많습니다. 저는 지금의 반올림 투쟁이 훗날 삼성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삼성의 희생자들이 죽어서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길임을 알고 있습니다. 돈으로 진실을 숨기려하는 삼성이 반올림 투쟁에, 진실 앞에 무릎 꿇을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반올림의 투쟁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언제까지나 반올림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반올림 곁에 함께 하겠습니다.
2016년 3월 31일, 반올림 농성장에서
박성주